지난주 중앙일보의 <2007 전국 대학평가>에서 우리학교가 국제화 부문 종합 5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이화인 모두에게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같은 뉴스에 대해 학교 홈페이지의 이화소식은 “본교 글로벌 경쟁력 대약진”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일년동안 우리학교가 추진 중인 “글로벌 이화 2010 프로젝트”가 실효를 거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이대학보>의 사설은 “국제화, 제도 따로 학생 따로” 라는 제목으로 교양영어 수강 학년 제한과 영어강의 의무 수강 등으로 인한 학생들의 고통과 소외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번 평가에서 우리학교가 해외파견 교환학생 비율과 국내 방문 외국인 교환학생 비율에서 각각 1위를 차지 한 것은 우리학교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교류 중심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번 평가는 평가항목이나 기준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여 자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겸허한 자세로 우리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해 신중하게 자체 평가 해 보는 것이 성숙한 대학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학생들의 볼멘소리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영어강의에 관한한 그들의 입장과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 교수들도 “연내 영어강의 비율 20% 달성” 이라는 당찬 목표 설정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과 현실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한국의 대학들이 영어강의에 관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영어강의인지 철저한 성찰과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어강의가 강의수준을 높인다고? 오히려 반대가 맞다 는 증언을 학생들이나 교수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다. 영어강의가 대학을 세계화 시킨다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면 대학이 세계화가 된다는 발상은 세계화에 대한 몰이해로 비롯된 것이며 그런 사이비 세계화에 대학이 편승할 이유가 없다. 영어 강의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높일 것이라고? 시간과 노력(학생들에게는 고통)에 비해 효율성이 매우 낮으니 대학들은 별도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해외 인턴십,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에 인적,재정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강의는 대학의 생명 샘이나 다름없다. 대학의 강의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강의의 질은 학생들의 학습욕구를 높여 주어 잠재력을 개발시켜 주는데 있다.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하고 키워주고, 창의성과 논리를 펼치도록 하는 강의는 학생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사유 능력을 요구한다. 모국어로도 힘든 이런 고차원의 인지과정을 영어로 사고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영어강의는 강의주제 자체나 교육의 목표가 영어로 진행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전공 교수의 확신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시행되어야 한다. 영어는 외국어이며, 외국어로서의 영어는 영어를 전공하는 소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지식의 소통 수단에 불과할 뿐 본질이 될 수 없다. 20% 목표 달성을 위한 무분별한 영어강의의 확대는 수단이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와 대학의 지적 역량 자체를 크게 손상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외부기관의 대학 평가에 대한 압박과 교육부의 행정남용에 시달려 어쩔 수 없이 무리한 목표를 설정할 수밖에 없는 학교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시행중인 제도를 갑자기 변경하기 어렵다면 몇 가지 보완책이라도 만들어 학생들의 고통이나 교수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어야 한다. 우선 학생들이 영어강의 수강 전 미리 영어강의를 체험할 수 있는 사이버 영어수업 체험교실을 개발하여 다양한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통해 단계적으로 영어수업을 익히도록 하고 영어리포트, 영어토론, 영어메일 등 영어강의 수강에 필요한 실용 영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완전 영어강의의 전 단계인 국어/영어 혼용 중간단계 영어강의를 실험적으로 개설했으면 한다.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영어의 난이도를 단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중간단계 영어강의는 강의의 질이나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완전영어강의에 비해 더 현실적인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선열 교수(언론홍보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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