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인터넷 쇼핑몰 설립한 김해련(경영,84년졸)씨

흰색 롱 블라우스에 검은색 롱 조끼, 올여름 유행인 단발 커트와 체인 목걸이까지. 세련된 느낌의 ‘젊은 사장님’이 시원한 목소리로 명함을 건넨다. 그의 젊은 감각과 테이블 위에 쌓인 패션 잡지들만 봐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패션계와 트렌드 컨설팅에서의 거물. 현재 브랜드 패션 전문 쇼핑몰인 ‘패션플러스’와 트렌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패션플래닝’을 운영하는 아이에프네트워크 대표이사 김해련(경영ㆍ84년 졸)씨를 만났다.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인 ‘패션플러스’는 연간 400억 원의 매출을 자랑한다. 현재 회원 수는 90만 명 정도이며 일 년에 17만 명씩 계속 느는 추세다. 7년 전부터 시작한 트렌드 컨설팅 분야에서도 승승장구하며 LG 전자의 ‘초콜릿 폰’과 ‘PRADA 폰’ 등을 탄생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첫 번째 인생의 전환점은 유학이었다. “대학 졸업 때까지만 해도 패션계 쪽에서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김씨는 경영학 석사 공부를 위해 뉴욕에 갔다가 패션계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진로를 바꾸었다. 그 후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패션스쿨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패션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세례명인 ‘아드리안느’란 여성의류 브랜드로 신세계·롯데·현대 백화점까지 입점했다.

그는 갑자기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로 매장의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을 때도 ‘홈쇼핑 판매’라는 묘책으로 사업의 위기를 극복했다. 1990년대만 해도 케이블 TV가 대중화돼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2시간 동안 1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으니 ‘아~이거다!’싶었죠.” 김씨는 또 다른 매체를 찾아 옷을 팔아보기로 결심했다. 미국에서 ‘Internet Communication'을 전공한 절친한 친구들의 영향으로 ‘인터넷’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김씨는 인터넷으로 한정적인 TV 홈쇼핑 채널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인터넷이 발전할 것이라는 야무진 전망 하나로 그는 1999년도에 한국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게 된다.

그는 ‘최초’라는 수식어에 맞게 외로운 선구자였다. “다들 손가락질했죠. 특히 패션업계 쪽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며 혀를 내둘렀어요.” 하지만 그의 의지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꺾일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약 10년 동안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알아왔던 브랜드 거래처들을 끊임없이 설득해 ‘패션플러스’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탄생시켰다. 그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도에 트렌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패션플래닝을 인수했다. 현재 기업체를 상대로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제공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끊임없이 분석하고 공부합니다. 연구를 위한 자료 구입비만 3억 원 정도를 사용하니까요.” 직감만으로는 절대 트렌드의 흐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회의실과 사무실에 쌓여 있는 신문과 잡지들, 책꽂이에 빼곡하게 꽂혀있던 책들은 지금의 김씨를 만든 땀방울이었다. 그는 “대학생들이 직업을 구하거나 앞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도 선견지명이 필요하다”며 “대학생들이 많은 매체를 접하며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를 수 있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전반적인 트렌드를 물었다. “우선 소비자도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나의 소비로 인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social marketing’, 마지막으로 예술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명품족 욕구’, 이 세 가지가 앞으로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네요.” 김씨는 소비자의 참여적인 자세와 예술적인 감성이 미래의 트렌드가 되리라 전망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고,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사람.’ 김씨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평한 말이다. “전 대학교 다닐 때 학점이 좋지도 않았고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지도 않아요. 하지만 제 삶에 대한 추진력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한국을 넘어 이제는 아시아의 TOP이 돼보고 싶다고 조심스레 포부를 밝힌 김해련 사장. 그를 이 시대 최고의 ‘미래 설계사’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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