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가 지완(본명 정진) 인터뷰

지완(본명 정진·환경공학·97년졸)인터뷰

“만화요? 제가 무당이라면, 살풀이 같은 거죠. 그리지 않고는 못 살 것 같아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정문 앞 ‘황제 만화방’에서 하루를 다 보내던 스무 살의 정진(환경공학·97년졸)씨. 그는 어느덧 11년차 베테랑 만화가가 됐다. 1997년도 데뷔 이후 <행복하고 싶어?!>, <FIRST>, <앤 더 러버>, <눈의 여왕> 등 그가 낸 단행본만도 여덟 개다. 이제는 필명 ‘지완’이 오히려 더 익숙하다는 그를 잉크 냄새 자욱한 그의 화실에서 만났다.

지완씨의 화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만화책이 빼곡한 책장이었다. <소년탐정 김전일>, <아르미안의 네 딸들>, <베르세르크>, <명탐정 코난> 방을 둘러싼 서고 한 편에 그의 연재작 <100%의 그녀>도 꽂혀있었다. 지완씨의 만화는 청춘남녀의 사랑을 다룬 전형적인 로맨스물이다.
“여대생을 겨냥한 만화인데 오히려 아줌마 팬이 많더라구요” 실제로 미국에 사는 아줌마 팬 ‘사라’에게서 아기 옷도 선물 받았다. 한국 정통 순정만화가 아줌마 감성을 자극한 모양이다.
“제 작품 스타일이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재미있게 그리는 편이라서 그런가봐요” 실제로 그가 그리는 만화의 목표도 ‘참신한 착상’보다는 ‘고전’이란다.

출판사에서 마감 잘 지키기로 유명한 지완씨가 만화가 일에만 몰두하는 것도 아니다. 지완씨는 6개월 된 아이의 엄마이자 강사, 대학원생으로 맹활약 중이다. 그는 “그 중에서 엄마 역할이 가장 힘들어요”라며 인터뷰 도중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집안에 화실이 없던 시절,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3시간 간격으로 왔다갔다하며 원고를 마감했죠” 만화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일도 많았다. 바로 이삿날과 마감이 겹쳤을 때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밖에 세워두고 ‘한 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빌어가며 원고를 완성했어요”

만화가로 데뷔하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부모가 그림 그리는 일을 반대했던 것. 부모 등쌀에 공대생이 된 그는 전공 공부가 버거웠다. “평균이 B 정도였어요. 전공 점수는 C, 문학이나 예술 영역으로만 들었던 교양 점수는 늘 A만 받았었죠”

‘엄마 아빠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하고싶은 것 못하고 불행하다’고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다. 그때 지완씨의 부모는 “고작 부모 반대 정도로 꿈을 포기했다면 넌 정말 재능있는 게 아니다”라며 되려 그를 나무랐다. 그날 이후 그는 휴학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전부 취업 준비를 하던 4학년 2학기였다. “부모님께는 공무원준비 한다고 거짓말하고서 집에서 그림만 그린 거예요” 그 후 약 1년 만에 문하생 시절도 없이 독학만으로 만화잡지 <ISSUE>에 단편 <stupid>로 데뷔했다.

지완씨는 학교가 그립다고 했다. “먼지 쌓인 화판, 햇살 좋은 큰 창…, 아직도 학관 8층에 있는 동아리방이 눈에 선해요. 창고에 제가 두고 온 그림도 있을 텐데…" 미술 동아리 ‘그림탑’의 회원이었던 그는 ‘동아리에 충성을 다 바쳤다’고. “하루는 공학 실험용 가운을 입은 채 동아리 전시회 준비를 하다가 파란 유화가 묻었어요. 교수님이 그걸 공학용 시약으로 오해해 실험을 참 열심히 한다며 칭찬해주셨던 일이 기억나네요”

스물 네 살에 데뷔해 올해로 만화인생 11년째를 맞는 그는 “이젠 부모님께서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내 뜻대로 어려움 없이 미대에 진학했다면 만화가가 못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완씨가 이화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만화는 ‘원수연’의 <엘리오와 이베트>. 그는‘만화가’를 꿈꾸게 만들어준 소중한 만화라고 소개했다. “수연씨 집은 홍대 근처고 여기는 당산이라 가깝게 지내요” 이제 그가 존경하던 만화가 ‘원수연’과는 “서로 친해져서 육아 문제 상담하는 사이”가 됐다.

지완씨는 “동아리 하나를 정해 4년 내내 활동하니까 두고두고 재산이 됐다”고 말한 뒤 “후배라면 언제든지 환영하니까 술 한 번 사달라고 오세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의 필명 ‘지완’의 뜻은 ‘알 지(知)에 완전할 완(完)’, ‘완성의 경지를 알자’는 의미란다. 만화가 ‘지완’은 지금도 ‘완성의 경지’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이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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