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이나 식당에서 혼자 앉아 간단하게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는 학생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친구 없이 혼자 먹고 있다는 민망함? 의도하지 않아도 옆에 앉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야하는 괴로운 상황? 사실 별로 할 것이 없는데도 별 수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게 되는 떨떠름한 상황? 물론 이런 개인적인 문제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좀 더 두렵게 다가오는 ‘그들’이 있으니 바로 혼자 있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이다.

물론, 선교나 전도의 그 의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종교에 대한 열정과 감동을 다른 이들도 알길 바란다는 것은 오히려 순수한 마음에 가깝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이 느낀 감동을 열정을 다해 말하고자 한다면,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 감동에 대해 듣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설득하고 전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와 말의 내용에 있다. 우선, 다른 이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저 불교 믿는데요.’라고 말해도, 괜찮으니 성경 한 구절만 전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성경 구절을 듣고 싶지 않아 불교나 다른 종교를 핑계로 자리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그러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정말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듣기에 그것은 불쾌하게 느껴진다. 물론 실제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도 성경에 대한 깊은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간단하게 끝내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말씀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의 타이르는 듯한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그들의 설득 속에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자주 섞여 나오는데, 이는 ‘당신은 지금 모르고 있다’라는 투의 말로 들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자신이 아는 기독교의 위대함과 경건함을 전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듣기에 불쾌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생소하고 낯선 것에 대해 ‘모르니까 알라’라는 타이름을 받게 되면 반발심부터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의 지구력(?) 역시 불쾌함을 더하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정말로 성경 구절을 전해 듣고 싶지 않거나 혹은 급하게 나가봐야 하거나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대화를 거절하더라도, ‘성경 구절 딱 한 구절만 읽어주고 가겠다.’라는 식으로 2~3여 분을 더 붙잡는다. 사람 사이에는 어느 정도 대화의 예의가 있기 때문에,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면 적어도 5분 이상은 성경에 대해 ‘예’ ‘아니요’ 입씨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비판은 철저히 기독교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불만을 가지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또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전하고자하는 사람이 정말 불교인인지, 정말 바쁜지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대화를 통해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있어서 그런 정도의 배려가 결여된다면, 일단 그것은 효과적인 화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따뜻하고 순수한 의도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성경 전파가, 불쾌한 시각에서 비춰지지 않도록 깊은 생각을 바란다.


임혜지(인과·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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