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 사회가 빚은 파문
학벌주의 사회가 빚은 파문
  • 이지은 기자
  • 승인 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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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신정아 교수를 시작으로 한 ‘학력위조’ 폭풍이 거세다. 교육계를 넘어 문화·예술계와 종교, 연예계까지 유명 인사들의 ‘학력’에 대한 의혹제기와 ‘커밍아웃’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학력을 위조한 당사자들의 도덕성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안에 곪아있던 ‘학벌만능주의’ 라는 상처가 터져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학력위조’를 밝힌 사람들은 각 분야에서 ‘이름’ 날리던 사람들이다. 동숭아아트홀 김옥랑씨는 공연계의 대모로 불려왔고 연극인 윤석화씨는 순수 문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됐다. 작품이나 연기로 꾸준히 인정받아오던 이들에게도 ‘학력’위조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학벌’에서 자유롭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이 자원’인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배운 것’이 가장 큰 재산이고 인생 역전의 가장 쉬운 길로 여겨진다. 좋은 대학의 ‘학벌’은 높은 임금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준다고 믿는다. 실제 경제학에서는 학력에 비해 능력 차이가 크지 않는데도 임금이 크게 오르는 현상을 가리켜 ‘학위효과’라고 정의해 놓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학벌’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신분제도’가 됐다. 대졸이라도 어느 대학교를 졸업했느냐가 그 사람의 평가 기준이 된다. 8월20일자 해럴드 신문에는 사법고시생 사이에 떠도는 말이 기사화됐다. '서울대 법대는 성골·고대 법대는 진골'이라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씁쓸한 내용의 기사였다. ‘사법고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능력을 인정받아도 결국에는 '학벌'에 따른 암묵적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2005년 기준으로 대법관이나 법원장 중 서울대 출신 비율이 85%가 넘었다고 한다.

대학생들에게도 ‘학벌중심사회’의 모순은 깨고 싶지만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 이전에도 우리는 입시경쟁·사교육 속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대학생이 돼서는 더 좋은 ‘학벌’을 위해 재수나 편입으로 20대 초반의 힘과 열정을 쏟아 붓기도 한다.

최근 정부는 298개의 공공기관에 지방대출신을 우대하고 연령제한을 철폐하는 ‘열린채용’을 권고했다.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한국지역난방공사 등 8개의 공기업이 열린채용을 실시했다. 앞으로 이런 움직임은 금융권으로도 확대된다고 한다. 하지만 능력을 검증할만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지금, 여전히 ‘학벌’은 그 사람의 능력과 인간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존재하고 있다. 더 좋은 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학력세탁’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짝퉁학위’는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이후 한국대학교육협회는 전국 201개의 대학들과 연합해 ‘학력검증서비스’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인 미봉책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력의 진위를 가리는 일이 아니다. 더욱 절실한 것은 ‘학벌’에만 집착해 온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극복하는 일이다.

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