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뜨 가작)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
(꽁뜨 가작)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
  • 이대학보
  • 승인 1989.0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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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모처럼의 늦잠을 깨운 것은 S의 전화였다.

『너, 아직도 자고 있었니? 여기 저번 그 카페야. 너두 빨리 나와라. 드디어 찾았어!!』『뭐어? 아니 뭘 찾았다는 거야?』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내가 묻자, S는 『뭐긴 뭐야?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이지. 빨리나와. H도 오는 중이야. 전화 끊을께. 빨리 와야 해!』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그때서야 슬슬, 나는 며칠 전 우리들의 만남과 H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밤도 난데없는 S의 전화-「얘, 여기 너희 하숙집 근처야. 좀 나와봐. H가 난리야. 술이 취해서…」-에, 나는 S,H와 만났었다. 어디서 어떻게 마셨는지 H는 평소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공부를 비롯한 모든 일에 말없이 최선을 다해서 야무지게 살아가던 그애의 날카로움과 자제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장난치기 좋아하고 엉뚱한 S도 여느때와는 달리 진지한 모습으로, H와 마주앉아 있었다. H는 우리에게 마구 지껄이기 시작했다.

 『애들아, 내게는 말이야. 많은 꿈들이 있었어. 많은 꿈들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게 무척 많았거든. 나는 뭐든지 잘 할 수 있다고 믿었지. 어른들이 나보고, 「너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하고 물으면, 난 이렇게 대답했어. 「저는요,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요, 2년동안은 간호원, 2년동안은 선생님, 그다음 2년은 무용가, 또 여군, 피아니스트, 그리고요, 탤런트도 할거에요」라고 말이야. 이렇게 손가락까지 꼽아가면서.』

 H는 어린애처럼 손가락을 둘씩둘씩 꼽아 보였다. 그애의 너무나 다른 모습에 나와 S는 적잖이 놀라면서도 H의 말을 무조건 술주정으로 단순하게 들을 수만은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은,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어. 아니, 내가 뭘하고 싶어하는 지조차 모르겠어. 아냐, 아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같아. 아무것도….』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우리는 모두 졸업 후의 진로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자문해 보았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며, 과연 그것을 할 수 있을까? 교수님과의 면담, 친구들과의 대화, 부모님의 물음등 모두 진로문제가 주제였다. 모든 일을, 유난히 많은 욕심을 갖고 다부지게 잘 해내던 H. 진로문제 역시 멋지게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뭐든지 일등, 최고만을 좋아하는 그애니까. 일찍부터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을 것이다. H의 말은 계속되었다.

 『너희들은 뭐할꺼니? 응? 나는, 아니 우리들은 어렸을 때의 그 꿈들을 잘 간직할 수가 없었어. 넌 그렇게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했잖아? 넌 의사가 되고 싶어 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넌 피아노를 더 이상 칠 수 없게 된지 오래고, 너도 의대가 아닌 약대에 들어왔잖아? 내가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하려면, 공부․점수․등수․사회적 평판․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이런 것들이 항상 방해를 했어. 꿈도․희망도, 고민도, 사색도 없는 점수․학점따기 공부만 하질 않았느냐 말이야! 으-! 도대체 언제 어디서 그 꿈들을 잃어 버렸을까? 난 찾고 싶어 내가 잃어버린 꿈을, 우리가 잃어버린 꿈들을!!』

 H의 마지막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H를 집에 데려가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졌었던, 그리고 지금은 잃어버린 꿈들과, 우리의 너무도 변해버린 모습들을 생각했었다.


내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우린 곧, S의 재촉에 못이겨 그 카페를 나왔고, S가 이끄는 대로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었어, 어디더라? 여기서 이렇게 가면….』

 S는 열심히 찾고 있었다. H도 나도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S를 따라서, 화창한 봄날 오후의 부산한 시내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더욱이 우릴 당황하게 한 것은, S가 찾기에 자신이 없었던지 어느 행상인에게 했던 물음이었다.

 『아저씨, 이 근처에서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을 못보셨어요? 어디쯤 있는지 모르세요?』

 나와 H는 아예 할말을 잊었다. 「아니, 얘가 어떻게 된거 아냐?」H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야, 야! 너 지금 뭐 하는거야? 창피해 죽겠다. 장난치는거야?』

 우리의 투정은 들은 척도 않고 S는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장난치곤 너무 심한거 아니야?」H와 내가 이런생각에 슬며시 화를 내려던 순간, 『야호! 드디어 찾았다. 여기 있어, 여기!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

 S가 소리치며 그것을 가리켰다.

『어머!』

 H와 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우뚝 설 수 밖에 없었다.

 S가 가리킨 것은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이라는 글이 새겨진 자그마한 카페간판이었다.

 그래, 그것은 정말 H가 아니 우리가 잃어버린 꿈과 같은, 땀을 닦으며 빙그레 웃는 S의 모습뒤에 숨은 사랑스럽고 엉뚱한 우정과 같은, 그리고 우리의 미래와 새로운 희망과 같은, 작고 아담한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까페였다.



◇꽁뜨 가작 소감◇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 마냥 가슴 속에 품었던 꿈, 그리고 이웃을 알게된 후에 간직하게된 좀더 정의로운 사회,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이뤄보자는 꿈과 몸짓, 억눌린 자, 힘 없는 자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겠다는 포부…이러한 꿈들과 지금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한없는 실망과 좌절에 빠지게 되고, 쉽사리 체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뭔가 더 찾을 수 있는 기회와 용기가 있기에 새로운 꿈, 혹은 잃어버렸던 꿈들은 다시 소유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기뻤고, 이제 그러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 주셨다니 더욱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꿈을 주셨고, 우리가 그 꿈으로 인해 아파할 때 위로해 주셨으며,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은실(사학과 4)

 


 

◇꽁뜨 심사평◇

삶에 대한 예리함․유우머 지녀야

 최종심으로 올라온 4편의 꽁뜨를 보면서 응모자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관심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꽁뜨가 짧고 재치있게 쓴 인생의 작은 에피소드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편의 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삶의 본질과 관련되는 예리함과 사물에 대한 넓은 포용력을 갖춘 유우머 감각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독자로 하여금 읽게하기 위해 씌여진 글은 그러한 경우에만 감동과 설득력을 가져온다. 초점이 하나로 집중되지 못한 「웃느냐 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쌍꺼풀 수술에 얽힌 에피소드인 「그녀의 아름다운 눈」, 자취하는여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동상동몽」은 착상 자체의 수준을 보다 상향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꿈들」은 꽁뜨적인 요소가 비교적 강한 편이지만 내용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빈약하다고 판단되어 격려하는 의미에서 가작으로 뽑는다. 글쓰는 일에 보다 정진하기 바란다.


김치수(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