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사의 재조명<3> 카프는 계급문학을 매개로 한 민족문학운동
근대문학사의 재조명<3> 카프는 계급문학을 매개로 한 민족문학운동
  • 이대학보
  • 승인 198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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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80년대의 민족문학은 그 질적 성격에 있어서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던 70년대의 민족문학과 현격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마디로 「소시민적 민족문학」과 「민중적 민족문학」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한 이러한 질적 차별화는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한 계급․민족모순의 심화와 그에 대응한 기층민중운동세력의 급속한 역량 강화의 문학상에서의 반영이다.

 특히 박노해를 필두로 속속 문단에 진출하고 있는 노동자․농민 등 기층 출신 작가들의 활발한 창작활동은 「지식인 문학」의 틀 속에 안주하고 있던 기존의 민족 문학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문학에 있어서 민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하는 근본적 반성과 문제제기를 불러 일으켰고, 그러한 반성과 자기각성의 결과, 민중적 당파성에 입각한 민중주체의 민족문학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 제기되는 문제가 그렇다면 70년대와는 「질적으로 다른」80년대 민중적 민족문학의 전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80년대 민중적 민족문학을 70년대 소시민적 민족문학의 비판적 계승으로 볼 경우 80년대 문학과 70년대의 문학의 관계는 둘 간의 근본적인 「질적 차별성」 때문에 「발전적 계승」보다는 「비판적 단절」의 측면이 보다 강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70년대 민족문학의 「소시민성」은 반드시 극복되어야할 한계이며, 이러한 한계의 극복은 70년대 민족문학의 「비판적 단절」과 함께 우리의 민족문학에 있어서 무언가 진보적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노력이 병행될 때 보다 바람직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때에만 우리의 민족문학사가 「비판적 단절」의 역사가 아니라 「발전적 계승」의 역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학사의 발전을 이식의 결과나 외적 변화의 수동적 반영이 아니라 「내재적 진보」의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총체적 문학사의 관점에서 우리의 민족문학사를 볼 때 우뚝 솟아오르는 존재 중의 하나가 바로 식민지시대의 카프문학이다. 카프문학은 80년대 민중적 민족문학의 출현을 70년대의 「비판적 단절」뿐 아니라 「발전적 계승」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된 근거이다.

 따라서 카프문학을 단순히 「문학사의 복원」이라는 호사가적 차원에서만 바라보려는 태도는 불식되어야 한다. 식민지시대 카프문학은 「잃어버린 문학사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80년대 민중적 민족문학의 출현을 가능케 해준 내재적 원천인 것이다.

  

카프의 문학운동

 카프(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는 1925년 8월에 결성되어 1935년 5월 해체될 때까지 약 10여년간 식민지 조선의 진보적 프로문학운동을 이끈 문학운동단체이다.

 물론 카프 이전에도 염군사나 파스큘라를 중심으로 한 프로문예운동이 있었지만, 그것은 과학적 세계관과 계급적 당파성에 입각한 본격적 프로문학이라기보다는 자연발생적 성향이 지배적인 일종의 「경향문학」에 불과했다. 또한 카프해체 이후에도 진보적인 문예활동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조직적 실천력과 강고한 지도력을 결여한 고립분산적인, 그야말로 「운동」이 아닌 「활동」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국내적 차원에서는, 카프는 과학적 세계관과 계급적 당파성에 입각하여 조직적 실천력과 지도력을 행사한 유일의 문예운동조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카프의 위상을 규정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카프의 문학사적 의의와 성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한계는 어떤 것인가」

 우선, 카프문학을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흐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민족해방운동의 주도권은 민족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 계급에서 노동자․농민을 중심으로 한 기층민중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는 민족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계급과 일제와의 야합에 따른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개량화와 기층민중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고양에 따른 민중적 민족운동의 대두에서 기인한 결과였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1920년대 중반 이후 보다 급격해지는데, 카프의 결성은 바로 당시 민족해방운동의 그러한 흐름에 대한 문학적 대응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카프문학은 단순히 계급문학운동이었다기 보다는 「계급문학을 매개로한 민족문학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족해방운동의 주도세력인 기층민중의 입장에서 당시 조선의 주요 모순인 일본제국주의대 조선민중간의 모순을 해결하려 한 조직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실천의 산물이 카프문학이었던 것이다.

 문학내적으로 보더라도 소위 「민족주의문학」은 1920년대로 들어오면서 이전까지의 반제․반봉건적 진보성을 상실한 채 역사허무주의적인 자연주의 문학과 현실도피적인 낭만주의 문학으로 변질된다.

 민족주의문학은 그에 따라 민족해방운동 선상에서 완전히 탈락하게 되는데, 카프문학은 민족주의 문학의 그러한 반(反)민족적이고 반(反)민중적인 반동성을 비판하면서 무산계급적 당파성에 입각하여 민족해방운동에 복무하기 위한 이론적․창작적․조직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이렇게 볼 때 카프문학은 1910년대의 반제․반봉건적 진보성을 상실한 민족주의문학을 대신하여, 당시의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한 민중적 민족운동을 문학적으로 반영한 조직적 민족문학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카프 제1차 방향전환이 반제민족통전인 신간회운동을 문학운동상에서 관철시키기 위한 이론적․조직적 노력이었던 점이라든가, 카프 볼셰비키화가 신간회의 우경화를 비판하면서 비타협적 반제투쟁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점 등을 보더라도 카프문학의 이러한 민족해방운동적 성격은 잘 드러난다.

 카프문학의 또 다른 문학사적 성과로는 계급적 당파성과 리얼리즘 미학에 입각한 창작실천과 과학적 문예이론을 정립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카프이전과 이후의 무산계급문학을 구분할 때 우리는 흔히 이전의 것을 「신경향파문학」이라고 하고 이후의 것을 「프로문학」이라고 한다. 이 둘 간의 질적인 차이는 바로 당파성의 유무에 있다. 전자가 「민중지향적 경향성」에 입각한 자연발생적 계급문학이었던데 반해 후자는 「계급적 당파성」에 입각한 목적의식적 계급문학이었다. 전자의 대표적 작가로는 최서해․김기진․박영희를 들 수 있으며, 송영․이기영․한설야 등은 후자의 대표적 예이다.

 이러한 변화는 문예이론분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카프의 문학사적 업적은 특히 이 분야에로만 그림으로써 반민족적․반민중적인 성향이 지배적이었다. 반면에 조명회의「낙동강」에서 본격화되어 이기영의 「고향」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카프의 농민문학은 당시 조선농촌의 지주․소작간의 계급모순과 일제․조선농민간의 민족모순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면서, 그러한 계급․민족모순의 극복 전망을 변혁 주체로서의 농민이란 관점에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계열의 농민문학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카프문학의 진수가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분야는 바로 노동자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동자문학은 민족주의문학 측에서는 전혀 다루지 못했던 분야로서 카프작가와 동반자작가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이러한 카프주도 노동자문학의 출현과 발전은 20년대 후반 노동운동의 폭발적 고양에 대한 진보적 민족문학 측의 대응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는데(이는 농민문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카프는 노동자문학을 통해 노동자계급 당파성과 리얼리즘의 통일을 창작상에서 실천하려 하였다.

 즉 카프의 노동자 문학은 계급․민족모순의 궁극적 담지자인 노동자계급의 전위로의 일어섬과 비타협적투쟁을 통해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운동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지도성과 주도성 및 궁극적 승리에의 전망을 형상화했던 것이다. 이러한 카프의 노동자 문학은 송영의「용광로」에서 시작하여 한설야의「과도기」와 이북명의 「오전3시」를 거쳐 한설야의 「황혼」에 이르기까지 카프문학운동의 창작실천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이고 전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맺음말 

 이상으로 카프문학의 역사적․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식민지시대 카프문학이 우리의 진보적인 민족문학의 전통에서 매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금의 시각에서 볼 때 카프문학의 제반 성과는 80년대 민중적 민족문학이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귀중한 문학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제민족통전에 대한 계급적 교조성, 문예대중화나 문학의 민중성에 대한 전위주의적 관념성, 구체적 현실에서 괴리된 외국의 문예이론이나 전략에 대한 과도한 추수성, 그리고 조직적 실천에 있어서의 비대중성과 관념성 등은 카프문학이 갖고 있는 중요한 한계이며, 따라서 이의 극복은 현 단계 민중적 민족문학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카프문학의 이러한 한계가 바로 당시 조선의 민중적 민족해방운동의 한계에서 기인된 지역적․역사적 산물이란 점을 이해하는 자세 역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그러한 한계에만 주목하여 카프문학의 지역적․역사적 특수성을 몰락한 채 현 단계 민중적 민족문학의 전통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는 태도-예컨대 항일혁명문예의 전통에만 집착하는 것은 그 대표적 예이다-는 또 다른 관념적 극좌성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민족문학의 진보적 유산들을 정확히 가려내어 우리의 민중적 민족문학의 전통 속에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것-그것이 우리가 과거의 민족문학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이며, 카프문학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정일(연세대 국문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