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파란빛을 얼굴과 손으로 받아 내가슴 가득히 담고 싶다. 교정에 넘쳐흐르는 푸르름이 눈물이 날만큼 찬란하다. 오늘 내 몸뚱아리는 녹빛 눈물이 되어 오월의 푸르름 곁으로 날아간다.」


  며칠전 고등학교 때의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온 글귀이다. 고등학교 2학년 오월을 맞아 적은 이 글귀들은 내 생각을 한참동안이나 잡아두었다. 오월 자연의 싱그러움과 푸르름에 그저 막연히 그리움을 느끼던 고등학교때의 나로부터 그저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만은 없는 지금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연에 흠뻑 취하여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볼 줄 몰랐던 나로부터 오월 자연의 찬란함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힘든 것이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나의 모습을 오늘 오월 하늘 아래서 발견하게 된다.


  부서지는 햇살이 교정의 녹음을 짙푸르게 하는 오월. 강한 생명감을 발산하는 오월 어느날, 또다시 많은 생명이 죽어갔다. 너무나 어이없게도. 학교 곳곳에서 많은 대자보들이 붙어 있었다. 경찰과 동의대학교 학우들의 죽음과 부상을 알리는 대자보들은 더 이상 내 가슴에 푸른 오월을 남겨 두지 않았다 .


  눈부신 오월 하늘이 아니라 최루가스에 질식할 것같은 오월의 호흡이고, 흐드러진 나무의 녹색 빛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대치상태에 있는 전경들의 군복만이 답답한 녹빛으로 서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우리 청년이 살고 있는 현재의 오월 하늘, 오월 향내다. 무수하게 많은 생명들이 무심하기마저 한 오월 하늘아래서 쓰러져갔지만, 우리의 가슴 벅차오르는 날은 요원하기만 한 듯하다.


  씁쓸함을 안고 교문을 향해 걸으면서 멀리 학생과 전경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대체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위하여서 학생은 처절한 울부짖음을 하고 있고, 전경들은 왜 저렇게도 차디차게 굳은 얼굴로 방패에 의지한 채 막고 서있는 것일까.


  서로는 서로에게 분개할 이유 없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의 청년들인 것ㅇ르. 우리는 서로에게 적이 아니라 서로 꼬옥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한반도의 청년들인 것을.


  생명의 존엄성이 타살당하고, 죽음에까지 구구한 이유가 붙어 다녀, 따지고 캐야하는 이 시대 이 오월의 빛이 녹색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막연하게 가슴이 아려울 뿐이다. 그것이 사람의 죽음이였기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들 한다. 오월의 나무들은 새 생명체의 푸르름으로 완숙에 이르는데, 청년의 염원, 민족의 염원인 민주라는 큰 나무는 아직도 앙상하기만 한것 같다.


  때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심어낸 민주라는 나무가 정말 큰 나무가 되었을 때 땅속에 튼튼히 뿌리내려 지상의 큰 기둥을 지탱할 수 있도록 견고한 뿌리를 준비해 나가야 함에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진정 핏빛이 되어버린 나의 오월, 한반도 청년들의 오월. 오월의 햇살은 강한 생명력으로 쏟아지는데, 오월 햇살 가득한 교정을 걷고 있는 나는, 오늘 왜 이리도 허허로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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