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운동의 현황과 전망(하)-본교 학문연구풍토의 점검


참석자
이승희(아현여성연구실 실장)
김점숙(대학원 사학과 4학기, 대학원 총학생회 학술부장)
오종환(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2학기)
이선주(사회학과 4)
사회 : 조규미(국어국문학과 3)
정리 : 김윤덕기자
일시 : 1989년 9월 1일(목) 오후 4시
장소 : 이대학보사 회의실

사회 :「학술운동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지난 호에서는「대학원 운동론에 관한 일시론」이라는 주제로 이론적인 검토를 해보았습니다. 이번에는「본교 학문연구풍토의 점검」이라는 주제로 관심있는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80년대 한국사회변혁운동이 발전하면서 80년대 중반 이후 진보적인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맞는, 주체적인 학문연구를 꾀하는 학술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요. 먼저 학술운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승희 : 학술운동이란 학술연구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학문이 현실과 분리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부정하고, 현실자체에서 출발하고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고통을 극복하고자하는 움직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학문에 대한 반성이 70년대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물렀다면 80년대에는 이것이 집단적 움직임으로 발전해왔고, 현재는 각 학문분야마다 학술단체가 생겨나고 이 단체들이 모여 연합체를 형성하는 조직적 틀까지 만들어낸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학술운동이 변혁운동상에서 어떤 기능을 하느냐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는데,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적전선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대중들의 힘의 결집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인식하여 변혁운동의 전략적·전술적 지침을 내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사항은 여성학술운동으로, 이는 학술운동의 일반적 임무와 더불어 고통당하고 차별·착취당하는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무기가 되는 이론을 계발해야 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회 : 그렇다면 학술운동의 이러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집단화,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학술운동과 대학원운동과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김점숙 : 본래 초창기 학술운동은 재야학술연구단체를 중심으로 학술운동에 복무할 것을 승인한 인자들의 목적의식적 활동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학술운동의 대중성 확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학원이 학술운동의 또 하나의 장으로 대두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 대학원 운동은 개별연구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과는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원생 일반이 모두 학술운동에 복무할 것을 승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또한 어느 정도 한시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학원운동은 원우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하여, 그들의 수준에 맞는 조직틀과 내용을 갖고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개별학술연구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과 대학원운동의 위상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별학술연구단체를 중심으로 한 학술운동이 자기의 위상을 명확히 하고, 그러한 위상에 걸맞는 실천을 담보해 낼 것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봅니다.
사회 : 그렇다면 대학원운동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오종환 : 지난 4월 2일 전국대학원대표자협의회라는 조직이 꾸려져 대학원운동이 이제 첫 시작의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학원운동이 어떠한 위상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얼마 전 고려대에서「대학원운동론」이 제기되었고, 연세대에서는「학술운동론」이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대학원운동론」의 골자는 대학원운동이 전체변혁운동의 하나의 보편적 맥락으로써 실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학술운동론」의 골자는 전체변혁운동에 참가하되 대학원운동이 가지는 부분운동의 차별성을 견지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것이 먼저냐는 것은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지만, 적어도 대학원운동이 앞으로 나아갈 지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점숙 : 이러한 대학원운동의 현황을 볼때 조직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각 대학원 학생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학생회의 역할은 원우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하여 그들을 조직화 해내고, 올바른 학문연구 풍토를 조성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교의 경우, 이제까지의 학생회는 위의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87년도 이전까지는 학생회 간부들이 원우대중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매우 비민주적식으로 선출됨으로써 진정한 대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로는 학생회 활동의 물적토대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현 회칙에 의하면 회원에 대한 회비징수가 규정되어 있으나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따라서 전적으로 학교측 보조금에만 의존함으로써 활동에 제약성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객관적 상황하에서 학생회는 대학원생을 위한 연구실 마련과 특강개최, 그리고 몇 개 과 공동연구를 유도하고 연구성과를 발표할 장을 마련하는 등 명실상부한 학생회로서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과학생회 조직이 매우 취약한 상태 (현재 4개과만 조직)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각 과학생회 조직화의 움직임을 적극 지원, 추동해내고자 합니다. 이를위해 정기적인 대의원 간담회 개최와, 학생회조직 건설의 경험을 정리하여 자료집 형태로 발간한 예정입니다.
사회 : 과학생회조직이 미약하다고 하셨는데요, 대학원운동의 조직적 동력은 과학생회가 튼튼히 꾸려져 여기서 대중들을 확보해내는 것일텐데, 왜 과학셍회조직이 어려운지를 해명하면 본교의 대학원운동이 취약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점숙 :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학생회 조직의 필요성을 대다수의 성원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취약성은 첫째, 원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의 부족 둘째, 지식인의 조직에 대한 기피현상 셋째, 그러한 조직화움직임을 지도하고 추동해낼 힘의 부재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승희 : 대학원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학문에 대한 새로운 자기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나디. 따라서 학문연구의 보수성, 그리고 그 연구방식에 있어서의 고립·분산성을 극복하려는 집단적인 노력들이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진보적 학술운동단체와의 연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 태어나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종환 : 앞서 지적하신 문제와 함께 제가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대학원내 교육형태가 한분의 요수를 중심으로 한「도제식교육」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교수의 연구방법, 세계관을 닮아가버리는 것이 대학원내에서 학문활동의 진보성을 견지해 나가는데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라도 학부와는 다르게 대학원의 특성이랄 수 있는 학술활동을 매개로 조직체계를 튼튼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외부에서 볼 때 우리학교 대학원은 기존의 연구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시도가 활발하지 못하다고 보여지고, 또 이를 외화하는 작업도 부족한 것 같은데요.
이선주 : 저도 그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대학원이 학부보다는 상대적으로 학문의 질적인 면에서 뛰어난데, 그것을 학부에게 전파시킬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있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학부에서는 대부분의 과가 1년단위로 심포지움을 여는데 이런 부분에서 대학원생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령 심포지움의 커리큘럼 제공이나, 간사역할, 뿐만아니라 전체학습 커리큘럼도 원활하게 제공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대학원 학생회가 새롭게 자기위상을 정립하려고 한다면, 아직은 적지만 지금까지의 학문성과물들을 외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공개적 심포지움을 통해 대중적 수준에서 학부학생까지 포함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사회 : 본교의 전반적으로 침체된 학문풍토를 바꿔나가는데 있어서 대학원학생회의 역할이 학부와의 연계에서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아직까지 학부와의 연계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김점숙 :  그것은 대학원 학생회의 역량 부족으로 인한 학부학생회와의 조직적 연계부재에 기인합니다. 학부와의 연계는 두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우선 대학원운동이 학술운동의 정당성을 전파해내는 역할을 하는데 있어 학부학생도 분명히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학원 진출을 하고자 하는 학부생들을 적극적으로 묶어내어 자신의 재생산기반을 확충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학부와의 조직적 연계는 현실에 있어서는 수행되고 있지 못하지만 차후 매우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선주 : 학내 학문풍토 쇄신을 위해서 꼭 지적하고 싶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대다수 이화인이 동감하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는 전반적인 학사행정에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과 효율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과목개설이 너무 적다는 점과 대단위 수업의 폐단을 들 수 있습니다. 수업이라는 것이 보고 듣고, 서로 토론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강사의 요약전달식 수업방식에 학생들은 그저 받아쓰기로만 일관할 뿐입니다.
학교당국에서 재정의 확보로 강사충원문제에 적극적이었으면 하고, 강사선생님 역시 보다 효율적인 대단위 수업방식의 창출을 위해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전체 이화의 학문적 질을 높이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학교 학문연구풍토가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인데, 특히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이 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거의 없이 제한적이며 폐쇄적입니다.
 조선대의 경우 총학생회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들을 조사·분석하고 자체적으로 커리큘럼을 짠 후에 학교측과의 협상을 통해 과목의 폐강 또는 개강을 결정하는 식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학술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과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은 학생들이 수동적 자세로 포기해버리니까 그냥 관습화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승희 : 이러한 문제들은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는데요, 사소한 부분 같지만 이것 또한 학술운동의 발전상에서 반드시 극복해내야할 문제입니다.
사회 : 그렇다면 대학원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선 어떤 과제가 제기될까요?
오종환 : 저는 대학원운동의 재생산구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반적으로 계급분석에서 대학생들을 비생산적 프롤레타리아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대학원생에 대한 계급분석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가 지배층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계급분석에 있어서의 이러한 차별성은 학부와의 연계를 힘들게 하고 학부생들이 대학원생을 불신하는 원인이 됩니다.
 여기에서 대학원운동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고, 하루빨리 조직결성을 통해 불신을 씻고 보수적 학계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이데올로기를 체계화시켜 학부생에게까지 전파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승희 : 저는 대학원운동이 강화되고 학술운동역량이 점차 커지면서 기존의 안일하고 보수적인 체제에 안주하는 학문풍토를 바꾸어나가고 연구자들의 인식을 변화시켜 나가는 작업이 이루어질 때 재생산의 기반마련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종환 : 저도 그 부분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제도권 학계와의 관계가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도권 밖의 학술운동단체들이 활성화되면 제도권내에 일정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여러 제약성과 불이익들을 극복하려하지 않고 좌절하고 안주해버리려는 경향도 투쟁해 나가야 할 우리 스스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승희 :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본교의 경우 여성학술연구자로서의 자기정립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혁운동선상에서 본교가 기존의 학문풍토를 바꿔나가는 시도로서 시급한 것이지요.「자기정립」이라고 하는 것은「학문이 무엇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와「특히 여성으로서 거기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말합니다.
 여성이라는 변수가 중요한 이유는 학술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억압당하는 한 여성으로서 여성지식인은 억압·착취당하는 여성민중을 해방시켜야 하는 임무를 갖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여성해방의식을 갖고 학술연구에 임하는 자세가 곧 지금까지의 본교 학문풍토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그것들을 대학원 학생회가 어떻게 목적의식적으로 추동해낼 것인가, 학부와 어떻게 연계를 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점들이 과제로 남을 수 있겠지요.
오종환 : 오늘 좌담의 주제가 되었던 대학원 학술운동은 이제 기존의 대학원이 수행해 온 개인적 계급상승을 위한 디딤돌의 역할, 그리고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역할을 과감히 비판해내고 진보적 학문체계를 새로이 정립시켜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술운동의 개개인자들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올바로 변혁해나간다는 자기신념을 가져야 할 것이고, 전체변혁운동상에서 학술운동이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개인적이고 고립분산적인 연구자세를 지양하고 그래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단연구의 공간 속에 들어와서 변혁의 과제와 방향들을 함께 고민해나갈 때 대학원운동은 틀림없이 올바른 위상을 정립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앞에서 전체학술운동 특히 대학원운동과 이대 내에 남겨진 과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대학원 학생회를 중심으로 해서 기존의 풍토를 쇄신해나가는 적극적 움직임으로 해결해가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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