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혁명문학의 구분

「항일혁명문학」혹은「항일무장투쟁문학」이란 용어는 남한 문학사와 남한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내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살펴보면 첫째, 1920~30년대 항일빨치산부대의 혁명 활동 중에 창작되었던 혁명가요, 연극, 가극 등의 문학, 즉「항일혁명투쟁기의 문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북한문학사 서술에서의 보편적인 규정이다. 둘째로는 우리가 농민문학 ․ 분단문학을 규정하듯 소재와 주제에 의거한 규정을 할 수가 있다. 이럴 경우는 대 다수의 북한현대문학작품들도 포함되게 된다. 셋째는「항일무장투쟁」의 또 다른 무대였고 지금은 「동포문학」의 한 장을 개척하고 있는 연변문학 (김학철의 「격정시대」나 이근전이 「고난의 년대」가 대표적)까지도 포함한다.

「항일혁명문학」의 문학사적 가치평가를 위해서는 위의 세 가지 차원이 모두 문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기획물이「근대문학사」를 범위로 하고 있는 만큼, 또한 북한문학사의 규정에 근거하여 순수하게「혁명적 문예전통」아라 불리 우는 작품들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하겠다.


 특징 및 문학사적 의의

 남한문학사는 흔히 개화기를 기점으로 고전문학과 현대(근대)문학을 구분해왔다. 그리고 근대 문학의 주류로서는 다분히 추상적인「민족문학」개념 속에 어떤 이들은 순수문학을, 어떤 이들은 민족주의문학을 또 최근의 진보적 연구자들은 KAPF(카프)의 프로문학을 일제식민지시대의 대표적 성과로 꼽는다.

 북한문학사는 이른바「혁명적 문예전통」을 중심에 놓고 서술되며, 이것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전면적으로 계승해야 할 재부」로서 평가된다. 이는 물론 주체사상의 사회역사원리와 수령관에서 비롯된 독특한 문예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혁명적 문예전통-항일혁명문학은 1930년대 초 민주의 유격근거지에서 창작 ․ 공연되었는데, 이점이 국내의 다른 어떤 문학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낳는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는 전후부대인 동시에 선전선동부대로서 유격근거지는 물론 전투가 승리한 곳이면 어디서나 연예공연을 벌였다고 한다.

 이 공연물은 일제와의 간고한 전투 속에서 사기를 북돋아주는 예리한 무기로서, 일제에 대한 불타는 증오와 함께 승리의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낙천적 기개, 그리고 자기 일신의 희생을 두려워않고 죽음의 위험에 맞서는 비장한 극적 체험을 담고 있다.

 이러한 항일혁명문학의 특징은 같은 시기 국내에서 창작된 진보적 문학예술과 비교해볼 때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식민지사회의 부패한 지배계급을 중심인물로 놓고 그 타락성과 반동성을 폭로 ․ 풍자한 채만식의 비판적 사실주의는 물론이고, 당대 노동계급의 성장을 반영하고 그들에게서 변혁의 전망을 구했던 KAPF계열 소설에 있어서도 혁명적 ․ 낙관주의는 구체적 승리의 경험과 결합도지 못한「역사의 필연적 합법칙성」의 수준이거나 아니면 단순한 구호로 주어져 있을 뿐이다.

 KAPF 농민소설의 빛나는 정점으로 위치 지워지는 이기영의「고향」이 농촌의 비참한 생활과 계급적 갈등을 풍부하게 형상화하고 있으면서도 일제침략자와 조선민중간의 대립을 뚜렷한 갈등선으로 그리고 있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노동계급의 성장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강경애의「인간문제」가 변혁이 진정한 주체를 부각시키는데 있어서 기회주의적 지식인으로부터의 사상적 영향, 차별성의 필연화에 의존하고 있는 점 등은 국내 소설 창작의 제약이 작가의 현실인식과 전형화의 한계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항일혁명문학은 어느 작품이건 일제와 조선민중간의 화해 할 수 없는 싸움을 기본갈등으로 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각계급과 인물의 갈등이 그려진다.「한 자위 단원의 운명」에서 주인공이 비록 그릇된 환상을 가지고 자위단에 끌려가지만, 끝내는 조선유격대를 겨누라고 준 총부리를 일제놈들에게로 돌려세우게 되는 과정이라든지, 「피바다」에서 부분적으로 보이는 민족통일전선의 광범위한 형성과정은 감동적인 예이다. 형식면에서도 일제와 반동주구를 묘사할 때는 적나라한 「풍자」의 방식이나 민중 내부의 무지와 몽매, 그릇된 사상인습을 그릴 때는 애정 어린 설복과 교양이 뒤따른 「해학」이 주로 쓰여 진다.

「혁명적 문예전통」은 그 창작주체와 과정상의 특징에서 계몽적 성격을 뚜렷이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혁명가요가 두드러지는데「조국광복회10대강령가」, 「불평등가」, 「10진가」등은 사회주의 의식과 구체적인 강령까지를 선전교양하기 위해 창작된 것들이다.

 또한 혁명 가요는 전투성과 비장미가 주된 특징으로서, 대표작으로「영진가」의 한 구절-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와 같이 그 표현이 매우 직접적이고 극렬하다.

 북한문학사에 전해지는 혁명연극의 창작 ․ 공연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퍽 흥미롭고 감동적인데, 유격대원들의 집체적 토의와 기억되는 대사로 대본을 만들고, 풀뿌리를 다져 색깔을 내고, 인민들이 보내준 밀가루로 화장을 하고, 나무를 찍어 무대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애써 준비한 배역도 전투에서 부상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꽃 파는 처녀」(1930 ․ 11)와「피바다」「한자위 단원의 운명」(1936 ․8)이 만들어진 것이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꼽히는 이들 세 작품에는 항일혁명문학의 여러 특징적 요소들이 축약되어 있다. 첫째는「통속성」과 통하는 「인민성」의 요소이다. 인민대중의 생활감정에 맞고 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것을 말하는데 항일혁명문학은 천대받고 억압받는 평범한 인민대중이 어떻게 혁명에 떨쳐나서게 되는가를 그림으로써, 그들의 소박하고 건강한 품성, 가족에 대한 절실한 사랑을 그림으로써 인민성을 실현한다.

 외국 혹은 다른 혁명문학과 비교할 때 이들 주인공이 혁명에 이르는 길에서 어떤 추상적인 진리나 정의에 대한 열망과 고민은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들이 떨쳐 일어서는 것은 생활 속의 아주 소박한 꿈마저도 산산히 부서지면서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구체적으로는 가족을 희생당하는데 대한 분노로부터 싹튼다. 따라서 이들 작품의 통속성은「돈에 울고 사랑에 울고」식의 멜로드라마라서가 아니라 눈물겨운 드라마-선은 이기고 악은 끝내 망한다는 옛「심청전」이나「춘향전」과 상통하는 통속성이다.

 모든 것이 일제와 조선민중간의 싸움 속에 명확히 갈라져 있고, 선과 악의 대비가 분명한 점은 우리가 오늘날 항일혁명문학을 읽을 때 소설로서의 결합으로 느껴진다. 원작이 연극 ․ 가극 등의 공연양식이었기 때문에 극적 갈등이 선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항일혁명문학에 나오는 긍정적 인물들, 특히「피바다」의 어머니 일가는 민중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 덕목-소박하고 성실하고 순수하고 용감한-을 골고루 갖추고 가족의 희생까지도 무릅쓰면서 혁명의 한길로 나아간다.

 이것은 북한이「혁명적 문예전통」의 주된 요소로 꼽는「승리의 싸움 속에서 나온 문학」의 특징을 보여준다. 일제식민지시대의 국내문학 혹은 분단시대의 남한문학의 주인공들은 거의 회의하고 번민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기층민중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내리누르는 엄혹한 현실의 무게와 타락의 침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항일혁명문학은 유격근거지 문학-일종의 해방구문학으로서 창작되고 향수되었다. 거기에는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는 식민지 시대 문학이면서 「승리한 사회의 문학」이라는 모순이 들어있다.

 항일혁명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 그리고 본질적인 아쉬움은 모두 여기에서 기인한다. 고도의 정치성이 실현된「당문학」속에 들어있는 일상적 생활은 식민지 국내 민중의 일상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유격근거지의 일상이라는 점, 경제적 생활토대를 압도하는 정치적 싸움의 무게 등이 이들 작품의 리얼리티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것이다.


 결론을 맺으며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근대문학시에서 항일혁명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빛나는 것이다.

 1935년 이후 암담한 전망 속에 침묵하거나 친일의 길로 달려갔던 국내문학의 현상과 비교 할 때 그 대조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와 함께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이 국내에 영향을 미쳤듯이 항일혁명문학이 식민지시대 혹은 해방이후 국내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연변문학의 항일무장투쟁 형상화와의 비교도 함께 이루어질 때 항일혁명문학의 문학사적 가치가 온전히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진영(연세대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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