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폰사 설립을 앞둔 울산과 여천지역을 찾아서

 공해문제는 더 이상 관심 있는 특정인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나아가 한반도 전역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해산업체 듀폰사가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확정이 되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공해문제를 경시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허울 좋은 경제발전 보다는 우리의 국토를 지키고 아름다운 산천을 보존해야 할 때다. 듀폰사가 상록할 울산 ․ 여천지역 실태를 통해 공해추방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해야 할 것이다. <편집자>

 

1962년부터 시행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우리나라 곳곳에 우람한 공장들이 들어서게 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장굴뚝이 뿜어대는 힘찬 연기를 보며 「하늘이 좀 더러워지면 어때. 우선 공장부터 세워서 잘살고 봐야지」라는 신념을 키워갔고, 그 신념은 우리나라를 신생공업국이라는 위치로 크게 변모(?)시켜놓았다.

 

그러나 이렇게 자랑스럽던 경제발전의 표상은 한반도 전역에 오염된 강, 오염된 산을 만들었으며 이제 그 공해의 침투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엔 공해산업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다. 특히 올해에는 듀폰사라는 새로운 공해산업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예정에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연일 신문광고를 통해「루소에서 듀폰까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듀폰의 마음입니다」라는 식으로 우리에게 마치 자연보호를 위해 세계적으로 모범을 보이는 단체라도 되는 양 다가서고 있는 듀폰.

 이에 본사 취재팀은 듀폰사가 상륙을 하게 될 울산과 여천지방을 찾아보았다.

「동해라 울산은 공해병 산천

 살길은 막히고 인생은 조지네

 이주민 인생은 만갈래 찢겨

 빚더미 안고서 떠나라하네」

 우리가 어릴 적 불렀던 노래「울산아가씨」의 가사는 더 이상 예쁘고 인심 좋은 아가씨로 불리워지지 않는다. 공해에 찌들어 더 이상 살기 어렵다는 울산시민의 저항을 그들은 이러한 개사곡을 통해 나타내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울산공단하면 거대한 「산업기지」로써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몫을 담당해 왔다고 배워왔다. 단지 기존의 우리 기준대로라면 기자가 찾아본 울산의 높은 굴뚝들이야 말로「선진국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62년 울산공단이 건립된 이후 우리경제의 편향적 발전에 미친 울산공단의 업적은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70만 울산시민들은 곳곳에 들어선 공장들이 배출하는 공해 때문에 골치를 앓아야한다. 더 이상 선진국 등수를 매기는 표준이 될 수 없는 2백여 개의 공장. 이 공장들이 뿜어대는 유독가스로 인해 주민과 공단측은 거의 매년 피해보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공해 피해로 인한 공해시비는 아예「연중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상화에서 이번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해업체 듀폰사가 들어오려는 것이다.

 

경상남도 울산시 남구 용잠동.

앞으로 듀폰사가 들어오기로 되어있는 이곳은 86년 5월초부터 공장설립을 위한 기초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새로운 공장을 설립할 경우 환경청의 설립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듀폰사의 경우는 허가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부지를 사들이고 땅을 고르는 작업을 하는 등 불법적 행위를 해왔다.

이렇듯 순조롭게 건설작업을 착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서동우씨(울산공해추방운동연합 (이하 공추연) 간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원래 듀폰사가 들어설 용잠동 땅은 특수 화학물을 저장 ․ 운송하는 울산탱크터미널이라는 회사의 땅입니더.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울산탱크터미널의 땅으로 되었심더. 그러나 실제는 그 땅을 듀폰사가 88년 2월에 사들여 용도변경신청을 함으로서 공장건립허가는 울산탱크터미널로 그러나 용도는 듀폰회사 자의로 쓸 수 있도록 법적인 문제를 교묘히 피해왔심더』

 

이러한 비합법적 방법으로 해서 듀폰사는 울산에 무사히(?)상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더더욱 큰 문제는 용잠동엔 주민들이 살지 않아 강력한 반대투쟁이 없었다는 것입니더. 어데 공해가 발생하면 용잠동 하늘위에만 떠있겠습니꺼? 결국 울산시 전체의 문제인데도 주민들은 직접적으로 자가와 관계없다해서 그대로 설립하게 내버려 두니 매우 안타깝심더. 울산을 지킬 사람은 울산시만 뿐 아닙니꺼?』라는 서씨의 말이다. 

이렇듯 울산시민들이 소극적 반응을 보이는 데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울산시민들은 오래전부터 자생적으로 조직을 꾸려 그동안 끊임없이 공해 패해 보상요구투쟁을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해왔다. 그렇기에「공해보상투쟁은 해봤자다」라는 식의 체념의식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공해로 인한 피해를 몸으로 느껴왔고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공해추방에 대한 인식은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공해에 대한 인식정도는 듀폰사가 들어설 용잠동과 인접한 부곡동주민의 이야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푯말로 시작되는 마을입구는 메케한 매연에 쌓여있어 푯말과 묘한 대조를 이루게 한다.

 『한 10년을 여기서 살다보니 이지는 냄새나는지도 모릅니더. 아마 세계 어느 도시를 찾아봐도 우리 부곡동처럼 사방이 공장인 도시는 없을꺼라예. 이런 상황에 우찌 몸이 건강하겠십니꺼? 그래 두통도 심하고 피부병도 생겨 병원이라도 갈라치면 병명이 없다는기라. 뭐, 낮에는 몰라도 새벽1시쯤 되면 부곡동하늘이 아예 새까맣다 아입니꺼. 낮에는 남들 이목이 있어 연기를 못내 보내다가 밤만 되면 그때부터 다 뽑아 내는기라요. 듀폰이꼬 뭐꼬 이제 공해산업은 절대로 안됩니더.』라는 부곡동 주민 정종술씨(32세)의 말이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울산지역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어떠한 공해산업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에 공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지역 내에서의 반대 움직임은 활발하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공해추방을 그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울산공추연은 지난 7월3일에야 발기대회를 가져 아직은 조직기반도 약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이 단체는 아직까지 지역주민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공추연을 비롯한 지역운동단체들은 주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 주민운동을 촉발시켜내야 한다. 또한 이번을 계기로 공해산업에 대한 전국민적, 전시민적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듀폰사의 울산상륙을 반대하는 것은 울산에 공장을 세움으로써 계속해서 계열회사인 이산화티타늄공장을 세울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산화티타늄이 공해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산화티타늄이란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생활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페인트 ․ 치약 ․ 화장품등 우리 일상용품에 두루 쓰이는 백색광택을 내는 안료이다. 이와 같이 실효성이 높은 이산화티타늄이 사용량은 세계적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반해 자국 내에서는 80년 이후 공해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산화티타늄공장의 증설이나 신설을 금지하고 있다. 이산화티타늄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제품제조과정에서 공해물질이 발생하고 또한 그 폐기물이 환경오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해오염 뿐만 아니라 안정성 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즉, 이산화티타늄 제조공정 중 생성되는 염화티타늄(Ticl4)의 빈번한 누출사고가 그것이다. 이산화티타늄은 폐 깊숙이 흡수되어 석연과 같은 발암물질로 작용하는데 듀폰 에드무어(Edge Moor)공장의 경우는 75 ․ 79년 다량누출사고로 주민들 22명이 응급치료를 받아야 했고, 또 80년 이후로도 빈번한 누출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영국의 경우는 공장주위 2㎞내 지역주민들에게 정기적으로 비상연습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자국이나 선진 국내에 공장건립이 어려워진 듀폰사는 대만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지역을 이산화티타늄공장의 전력기자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공장건립신청서를 내 정부의 인가를 받았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대투쟁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따라서 듀폰사가 울산에 이산화티타늄공장을 세우려는 저의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듀폰사가 울산에 다른 공장을 세운 후 계열회사로 이산화티타늄공장을 세우려는 우회적 방법을 택했다면 여천지역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노골적인 의사를 밝혔다.

즉 86년 2월 정부에 공장건립신청서를 내면서부터 이산화티타늄공장을 짓겠다고 공표를 한 것이다. 

이에 상공부는 공장이 들어섬으로써 얻게 될 기술도입이나 고용인구증가등의 경제적 이득만을 생각해서 인가를 내주려했다. 그러나 환경청은 듀폰사가 건립할 이산화티타늄공장이 발생시킬 공해와 폐기물문제를 이유로 들어 반대를 표시했다. 이에 거부를 당한 듀폰사는 87년 11월 환경청이 이유로든 폐기물문제를 말끔히 해결했으니 다시 인가를 내 줄 것을 요구했다. 즉, 폐기물전량을 무해한 방법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청은 듀폰사가 주장하는 재활용의 실례가 없고 실험실안의 실험만으로는 2차적 오염의 가능성을 미리 알 수 없다하여 다시 듀폰사 국내 진출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듀폰사는 미대사관에까지 압력을 가하고 우리정부에 수퍼301조를 동원한 통상압력을 가해 폐기물활용실험이 끝나는 8월 이후 인가를 내주겠다는 조건부승인을 받아내었다. 결국 미국의 끈질긴 압력에 못 이겨 정부는 8월18일 듀폰사 여천상륙을 허가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천지역은 현재는 공해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한 상태이다.

여천공단에 들어선 공장은 대개 고용효과가 크지 않은 석유화학공장들이다. 따라서 필요한 전무인력은 타지나 본사에서 충원돼 지역주민은 공단조성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거의 얻지 못하고 삶의 터전인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여천공단지역엔 반수이상이 외지인이다. 또한 이들의 생활수진은 원주민보다 매우 높아 두 집단의 위화감은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호남정유근로자 황연홍씨(31세)는『주민과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대표적 예로는 여도국민학교를 들 수 있습니다. 그 학교는 공단근로자 자녀에게만 입학자격이 주어질뿐더러, 학교 내 시설도 인접한 타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 주민들은  늘 불만에 차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거대한 여천공단 숲을 지나 들어선 상암리는 여천지역의 공해문제를 대표적으로 안고 사는 곳이다. 처음 마을에 들어서면 뒤로는 산을 두고 논에는 벼가 쑥쑥 자라는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훑어보면 산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고 벼는 알곡이 맺지 않는 웃자람뿐이다.

 특히 마을 앞 비료공장이 그대로 쌓아 두어 산을 이룬 폐기물과 황가루는 대기 중에 입자들이 날아다녀 지나는 행인조차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에 대해 주민 정창훈씨(58세)는『이제는 면역이 돼뿌러서 머리 아픈지도 잘모르지라. 근디 어디 피해가 사람한테만 있것소? 소들은 설사를 자주 혀싸지 살도 안찌지, 유산만 한당께』라고 그 피해 정도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관심한 상태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어 주민들의 감정은 악화 되어있다.

이러한 주민들의 상황에 대해 김유석씨(전남일보 기자)는 『공해피해로 인해 주민들의 감정이 몹시 안 좋은 상황에서 또 다른 공해산업이 들어온다면 주민들의 누적된 감정은 일시에 폭발하게 될 것 입니다』라고 경고 한다.

공해산업체건설로 인한 주민 생존권의 위기, 악화된 주민감정, 오염으로 알곡을 맺지 못하는 곡식, 그 위에 또 다른 공해산업의 가중,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간과하고 단지「아름다운 강산」이나 「푸른 산천」이니 하고 말로만 부르짖는 것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자연에 대한 무책임한 방기이다.

 이제 정부는 몇 푼의 달러에 푸른 조국의 하늘을 팔아먹는 작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또한 환경청의 권한을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이제까지 환경청은 조사나 감독의 기능을 발휘했을 뿐 아직까지도 공해산업체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조사는 조사고 정책은 정책대로」라는 이중구조 정책을 취해왔다.

더불어 자국의 국민들은 공해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고, 그 대신 그 피해를 제3국에 옮겨 심어 놓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만을 챙기겠다는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속 보이는  비도덕성을 우리는 인지해야할 것이다. 결국 단순한 반공해투쟁이 아닌 반제국주의투쟁으로까지 이어져 나갈 때만이 더 이상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의 더러운 쓰레기산업유치장에서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공해는 인류의 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공해투쟁은 그저 「먹고 살만한」사람들만의 투쟁이라는 기존의 잘못된 관념을 깨뜨리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히 필요하다.

이젠 반공해투쟁을 전국적 ․ 전국민적 차원으로 확대시켜 나가야한다. 또한 주민들은 직접 생활에 이해관계가 있을 때만 반응을 보이는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해단지 피해보상투쟁이 아닌 전면적 반공해투쟁으로 일보 진전해야 한다.

대만의 경우 정부의 허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관심과 계속된 반대투쟁을 국제적 공해기업인 듀폰사를 몰아냈듯이 울도 이젠 전국적으로 조직적이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더 이상 순결한 조국에 제국주의의 더러운 공해산업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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