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사의 재조명<6>

머릿말
 문학이 정치, 철학, 종교 등과 같이 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의식이며 더욱이 여타의 사회의식과는 달리 역사의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합법칙적 발전과정을 논리나 이론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형상화의 과정으로 반영해낸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저 고루한 50~60년대 순수문학논자들의 논리는 한낱 신비한 관념론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위에서 언급한 문학의 반영론적 인식의 과정도 지난한 것이어서, 거기에는 전체민족 민주운동의 역량성숙과 70년대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된 민족문학논의, 외국의 진보적 문학이론의 주체적 수용, 그리고 과거 우리문학내에서 이루어진 진보적 문인들의 업적들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문학의 이러한 반영론적 성격-이것은 바로 리얼리즘의 다른 이름이다-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면서 그러한 입장 속에서 지나간 과거의 우리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주목을 기울이게 되었다. 과거의 문학을 현재의 관점에서 올바로 이해하고 전통을 새롭게 확립한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문학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일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더우기 기존의 문학사에 대한 연구들은 냉전이데올로기에 빠져 과거 우리문학을 한쪽의 편향된 시각으로 왜곡, 재단하여 우리 민족문학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작가들을 월북작가라는 이름으로 그 연구자체도 불온시하였으며, 혹은 몰주체적 실증주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사실나열이나 자료복원에만 급급해하기도 하였다.
시리즈 평가
 우리는 이런 제 경향을 극복, 단절하면서 그간의 진보적 연구성과들을 지면의 한계로 간략하게나마 여기에 소개해보는 기회를 갖었었다.
 첫 번째의 연재물인「근대문학사의 시작」에서는 반제 반봉건이라는 당시의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문학속에서 구현하고 해결하려 했는가를 크게 애국계몽문학과 항일의병문학으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당대문학의 주축으로 여겨졌던 신소설을 애국계몽문학 하위범주로 재조정하면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하고 나아가 애국계몽문학 전체의 가능성과 한계를 지적하였다. 또한 이것과 더불어 그동안 거의 도외시되었던 항일의병문학을 그 반제성(反帝性)의 측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1930년대의 항일무장투쟁문학과의 관련선상에서 살펴보았다.
 두 번째 연재물인「계몽주의·순수문학」에서는 부르조아 계몽주의의 실체가 무엇이고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속에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는 무엇이며 그런 부르조아 계몽주의를 문제삼을 때 우리가 현재와 관련 속에서 어떤 실천적 이론틀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하여 이광수와 최남선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문학가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결국 식민지하에서의 부르조아 계몽주의의 자기실현이란 본질적으로는 일본제국주의 및 그 대행기구로서의 총독부 권력 그리고 그에 기생하는 매판 부르조아 집단의 이해관계에 긴밀하게 조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한 부르조아 계몽주의가 일관되게 내세운 탈정치화의 논리가 문학부문에서 철저하게 관철된 것은 이른바「순수문학」,「예술지상주의」등으로 표상되는 정치와 문학의 단호한 절연의 논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연재로 우리는「카프문학」을 살펴본다. 카프문학이야말로 지금까지 우리문학사에서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이었고 당시 카프에서 활동했던 문학가들이 카프가 해소된 1935년 이후에도 문단의 중진으로 참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한쪽으로 제쳐두고 우리문학사를 논의했던 것이 그간의 실정이었다. 그런 문학사의 풍경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빈약한 몰골이었겠는가!
 연재물에서 우리는 카프문학을 현단계의 민족문학논의에서 계승하여야 할 전통으로 상정하면서 그것을 계급문학을 매개로 하는 민족문학운동으로 평가하였다. 왜냐하면 카프는 당시의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한 계급적 민족운동을 문학적으로 반영한 조직적 민족문학운동이었기 떄문이다. 이와 아울러 카프문학의 또 다른 문학사적 성과로는 계급적 당파성과 리얼리즘 미학에 입각한 창작실천과 과학적 문예이론을 정립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네 번째 연제로는「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을 다루었다. 이 시기는 주로 카프가 해산되고 일제가 군국주의적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어 사회의 파쇼적 재편이 이루어지던 1930년대 중반 이후를 가리킨다. 특히나 이 시기는 많은 진보적 문인조차도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친일로 전향하는 때이어서 더욱 문제적인 시기이다.
 여기에서는 카프의 중진 소설가인 한설야, 이기영, 김남천의 소설양상이 카프해산이후 어떻게 펼쳐졌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들의 주관적 열망이 현실과 매개하지 않고 현실속에서 검증받지 못했다는 점, 즉 주관적인 것으로서의 경향성에 머무르고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당파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작품을「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명명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의 지적이 그들의 노력을 모두 무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그 노력의 결과는 당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었음도 지적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항일 무장투쟁 문학」이 우리 논의의 대상이다. 항일 무장투쟁기의 문학은 특히 앞서 살펴본「비판적 사실주의 문학」과 그 시기면에서 일치하고 있어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즉 국내의 문학이 일제치하라는 특수성으로 그 형상화에 있어서 반제의 문제를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었던데 반해 항일무장투쟁문학은 어느 작품이건 일제와 조선민중간의 화해할 수 없는 싸움을 기본갈등으로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우리는 항일 무장투쟁 문학이 유격근거지 문학, 일종의 해방구 문학으로 창작, 향수된 사실에 주목하면서 식민지 시대에 승리한 사회의 문학이라는 모순성을 언급하였다.
 이렇게해서 우리는 지금까지「근대문학사의 재조명」이라는 기획으로 근대문학의 시작으로부터 해방직전의 항일무장투쟁문학까지를 주마간산격으로나마 살펴보았다.
문제점 및 앞으로의 과제
 이제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몇 가지 크고 작은 문제점을 점검, 확인하고 동시에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하기로 한다.
 우선 소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친일문학과 30년대 순수문학이 제외되고 있다. 물론 그외에도 여러 문학 경향을 다룰 수 있겠으나 특히 위 두 항목은 부르조아 계몽주의, 개량주의가 어떤 길을 가는가에 대한 탐색으로 진보적 문학경향 못지않게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역사의 잘못된 진로를 확인하는 작업도 그 반대의 경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논의의 주체성을 위해 작품에 대한 언급이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학을 문제삼을 때에는 그것이 어떤 계급의 이념을 대변하는 것이든간에 그것은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비판되어져야 하고, 계승되어야 한다. 즉 예를 들어 이광수, 최남선의 계몽주의적 성격은 그 작품을 통해 드러날 것이며, 신소설 혹은 의병문학에 대한 평가도 그들의 작품에 대한 꼼꼼한 분석에 의해 튼튼히 뒷받침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간 우리가 살펴본 논의는-물론 지면의 한계나, 기획의 의도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부분적으로 작품에 대한 배려가 소홀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전체적인 문학사적 관점을 확립하고 난 후 구체적으로 작품에 대한 검증을 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 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배제된다면 그것은 도식적 추상성에 빠진 논의로 전체 민족문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민족문학논쟁의 가장 치명적 약점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우리의 문학사적 전통수립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 논의를 시작하는 첫부분에서 문학이란 사회의식의 일종으로 역사의 객관적이고 합법칙적 발전과정을 형상화 과정을 통해 반영해내고 있음을 지적한 바가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두 항목은 객관적이고 합법칙적인 역사의 발전이란 것과 형상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문학이 역사의 객관적 발전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역사발전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더구나 그 역사발전이 변혁기에 처한 상황에서 문학은 운동성을 담보해낼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나 중국, 독일에서도 그랬고 우리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문학일 때는 항상 그런 역사과정을「형상화 과정」을 통해 반영해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특수성이다. 문학이 형상화되지 않은 관념과 이론의 나열이라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형상화 과정은 바로 예술성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우리문학의 전통을 수립하고 계승해 나가는 데 있어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운동성과 예술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교호관계에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하나의 편향으로 과거문학을 주관적 선입견 속에서 왜곡, 재단해서는 안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항일의병 문학이나 항일 무장투쟁 문학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자료와 작품분석을 통해 정당한 평가를 내려야 하며, 국내 민족개량주의 문학에 대해서는 이광수로부터 친일문학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관점에서 정확한 비판을 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끝말
 지금까지 우리는 근대문학이 시작되면서 해방이 되기까지 당대의 역사적 과제였던 반제, 반봉건이 문학 속에서 어떻게 관철되어 나갔는가를 항일의병문학에서 항일무장투쟁문학으로 이어지는 반제(反帝)문학과, 애국계몽기 문학에서 시작되어 이광수, 최남선 류로 이어지는 부르조아 계몽주의 문학, 그리고 애국계몽기 문학의 진보성을 이어받은 카프 문학과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을 통해 살펴보았다.
 더불어 부르조아 계몽주의에서 개량주의 순수문학과 친일문학으로 이어지는 부르조아 문학을 올바른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항일의병문학, 항일무장투쟁문학에 대한 실증적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으며, 전체적으로 작품을 통한 검증과 올바른 전통의 기준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항상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앞을 내다보는 망원경이다.

 이현식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 3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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