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을지구 재선거를 평가한다

8월의 무더위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올라 온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영등포 을지구(이하 영을구)의 재선거가 모두 끝났다.

이번 선거는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공안정국의 향배를 가늠하고 곧 있을 정계개편의 규모와 속도를 규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전국적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이와 아울러 민족민주운동진영의 적극적 참여는 이러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면서 이번선거의 영향이 단순히 정치권의 변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운동세력의 앞으로의 향방과 전술을 결정하는 기점으로 작용 할 것임을 시사해 주었다.

전민련을 포함한 민족민주운동진영은 지난 7월15일「1노3김 청산을 위한 영등포 재선거 범민주대책위원회 」(이하 대책위)준비모임의 공동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고영구씨(변호사)를 단일후보로 내세우면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민족민주운동세력의 움직임은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한 불만과 함께 5공청산, 민주화 추진 및 참신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긴 했으나, 그 시작과 선거의 과정 속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오류는 선거운동 과정엣 전민련 등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주도적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책위가 전민련, 진보정치연합,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협의회, 서명파의원의 주도하에 구성되기는 했으나, 대책위의 모든 요직을 서명파 의원이 맡게 되면서 선거운동의 방향마저 민족민주운동세력의 주장이 거의 관철될 수 없는 쪽으로 설정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전민련이 처음 어려운 논의를 거쳐 영을구 선거에 참가하려했던 목적은 대략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속화되는 공안정국의 부당성과 전교조문제 등을 합법공간을 통해 정치 쟁점화 시켜 수세국면을 벗어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합법영역에서의 기층민중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에 대한 실험장으로써 선거를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1노3감청산」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현 정치적사안과는 동떨어진 주제가 슬로건으로 등장, 선거운동의 전반적 성격을 규정짓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임무영씨(전민련 선전국 간사)는 『전민련이 선거참여여부의 결정에는 매우 신중했으나 상대적으로 그 방법에 있어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구도를 잡지 못해 심도 깊은 전술을 펴지 못하고 서명파의 주장에 이끌려 들어갔기 때문입니다』라고 그 원인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오류의 노정은 마침내 기층 민중이 고후보의 중심지지 세력으로 들어서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간지식인층을 그 중심에 둠으로써 범민주후보로서의 입지와 명분을 일정하게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계는 이렇듯 기본원칙에 대한 입장 차이와 최근의 공안정국에 의한 역량약화에 의해서 영을구 재선에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영을구 선거에의 범민주후보 출마는 나름대로의 성과와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이번 선거전은 계급적 기반이 다른 제 민주세력간의 최초의 연대 사업이었다. 물론 각 단체의 강령과 목표의 차이로 인한 불협화음과 시행착오가 나타났지만, 이런 문제점의 노출을 기회삼아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경험을 축전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성과는 앞으로 쟁점으로 떠오를 혁신정당의 위상과 기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논의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혁신정당에 대한 찬반양론은 주로 개인적 차원에서 주장되어 왔으나 영을구 선거의 결과와 경험을 토대로 논의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한편, 지난 18일 실시된 영을구 선거의 결과에서 민정당이 예상 이외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에 따른 정국의 기본적 구도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을 사실상의 중간 평가에서의 승리로 규정한 민정당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한층 강화될 것은 확실하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는 4당 동향에 대해서 이장수씨(전국 노동운동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이번 재선을 통해 평민당은 자신의 부동표를 재확인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고 민주당은 선명한 야당성 부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공화당의 경우엔 보수대연합을 향한 방안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겁니다』라고 전망하였다.

 

영을구 선거는 득표량의 다소에 관계없이 민족민주운동세력에게 분명한 적과 연대 가능한 세력 및 명확한 기반에 대해 고민하고 재확인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더욱 거세질 노정권의 탄압에 맞서 좀 더 치밀하고 노련한 전술을 구사해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 지금, 민주대연합을 위한 노력과 방향모색은 계속되어져야 한다. 또한 그 연합의 성격은 오직 철저한 민족성과 민중성의 원칙에 입각한 전 민주진영의 대의적 결합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영을구 재선거는 증명하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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