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 연극반의「나뽈레옹 꼬낙」을 보고

 지난 1,2일 학관 414호에서 간호대 연극반의 제14회 정기공연으로 김지하 원작의「나뽈레옹 꼬낙」이 올려졌다.

 우선 두 달이라는 제한된 짧은 시간, 제한된 무대, 작품선정의 어려움, 제작역량의 부족, 극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안고 땀흘린 간호대 연극반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번에 올려진 이 작품은 70년대의 시대상황과 나뽈레옹 꼬낙과 카이젤 수염으로 상징되는 가진자들의 부패한 모습을 고관부인, 공무원부인, 사장부인 등을 통해 풍자하는 내용이다. 사치와 퇴폐속에서 남편이 나뽈레옹이 되기를 바라는 고관부인에게 서로 잘 보이려고 온갖 아첨을 다하던 친구들이,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위력을 지녔던 고관이 하루사이에 정인숙 사건에 연루되어 망해버리자 고관부인을 향해 한마디씩 욕을 하면서 퇴장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을 통해서 남편들의 권력욕, 재산욕을 각각의 부인들에게 투영함으로써 나타나는 그들의 아부와 질시와 분열을 통해 시대의 병폐를 파헤치고,「올바른 삶은 어떠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관객들에게 주고자 했다고 기획자는 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쓰여진 70년과 지금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적인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광주항쟁을 통해서, 그리고 87년 7,8월 노동자 재투쟁을 거쳐서 투쟁의 선두에 서고 있는 노동자 계급의 모습 속에서, 이제는 단순하게 가진 자들의, 자본가의 그리고 독재정권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극 속에서 월남파병 군인의 얘기나 정인숙 사건 등이 지금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품의 전반적인 배경이 70년대 상황이면서도 원작에서의 텔레비전이 콤팩트디스크라는 낱말로, 그리고 당시 배우들의 이름이 지금의 배우들의 이름으로 바뀐 것들은 명확하게 현시기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의 연극은 이제 카타르시스나 지나가는 시장기로서의 웃음을 주어서는 안된다.

 극을 통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 사회의 모순을 고민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올바른 전망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연극은 해방의 무기로써 쓰여질 수 있다.

 내용에 있어서 이 사회의 모순의 본질을 올바르게 형상화시키지 못하면서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과 극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장면들이 무대 자체가 관객과 떨어져 높이 있는 탓으로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극을 통해서 한 가지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자본가 계급과 그들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무대에 올라와도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죽어가는 모습이라는 것과, 건강함과 살아있음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바로 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삶을 고민하지 않을 때 자신의 미래의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수정(철학과,2)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