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입추가 지나도 반바지 벗기가 두렵더니 어느 사이 새벽녘 언니와 이불뺏기 쟁탈전이 치열해진다.
이제 가을인가? 개강 준비로 바빠 쉬는 시간 10분을 특강신청이며 교재구입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녀도 콧잔등에 땀방울을 찾아볼 수 없다.
3학년 2학기라는 초조감에 몸이 닳아 땅만 보며 걸어다녔는데 후드득 빗소리에 하늘을 본다.
고등학교 1,2학년을 놀며 보낸 나는 고3이 되어 몹시 초조했다. 기숙사에서 친구와 서로 깨워주기도 하며 여름 졸음을 쫓아내면서 영어단어며 수학공식을 머리속에 채워 넣었었다. 길었던 여름을 힘든 줄 모르고 지냈는데 그제서야 늦더위를 먹었는지 몸도 마음도 젖은 손이었다.
입추가 지나 이렇게 몹시 비가 오던 날, 빗소리에 공연히 흥분이 되어 서로 눈치보며「좀 더 오래」경쟁을 하던 친구와 함씬 비를 맞고 돌아다녔다.
대학 입학 후, 학교와 학교 담장에 붙어있는 하숙방을 자동인형처럼 왕복하다가는 주말이 되면 하숙방 네귀퉁이를 뒹굴며 보냈고 그 많던 꿈은 여전히 꿈인채로 남아있었다. 학교도 친구도 어느 한 곳 마음주지 못한 채 그렇게 긴 시간 아름답게 채색했던 대학의 낭만은 내겐 너무 멀리 있었다.
3월을 그렇게 보내고 비가 몹시 내리던 4월 어느 일요일, 눅눅한 하숙방에 있긴 너무 청승맞아 집을 나섰는데 마땅히 갈데도 없어 텅빈 교정에 올랐다.
아, 목련이 피었구나. 도서관 오르는 길 양옆으로 함박함박 피어있는 목련이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길 옆 숲속엔 아직도 낙엽이 촉촉히 젖어 있었고, 나뭇잎 밑에선 텁텁한 흙냄새가 배어났다. 미대 뒤 초가정자를 돌아 도서관에 닿으니 눈에 익은 몇몇 얼굴들. 내가 하숙방에 웅크리고 앉아 엄살부리며 지낸 동안 저들은 이미 도서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있었구나.
우산을 접어들고 돌아내려오는 길에 여전히 목련잎은 비에 젖어갔고 나의 몸은 빗물에 씻기우고 있었다.
도서관 젖은 길을 따라 올라가며 목련 파란 잎사귀에서 내년 봄에 필 하얀 꽃잎을 본다. 도서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비에 젖어 아름답다. 이제 남은 3학기, 부지런히 나의 꿈에 색을 칠해야겠다.
신유진(신문방송학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