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사회주의 개혁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지금 폴란드 사회주의는 새로운 진로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폴란드 내에 공산당의 1당 지배체제가 무너지고 비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게 되리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탄압 당하던 자유노조 세력이 불과 몇 달 사이에 폴란드의 정권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전 세계는 긴장과 놀라움 속에서 나날이 지켜보았던 것이다.

지난 4월 자유노조의 합법화를 협상하기 위해 열린 바웬사와 야루젤스키간의 원탁회담은 예상외로「연대노조」의 인정뿐만 아니라 부분적인 자유선거를 허용하는 정치개혁안까지 타결시킨 획기적인 자리가 되었다. 마침내「연대노조」는 자유선거에 의해 실시된 6월 총선에서 폴란드 국민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 상․하원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강력한 야당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자유노조는 처음에는 의회 내에서 공산당에 통제를 가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개혁세력으로 남아 있겠다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공산당 주도하의 연립정부에 동참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8월에 들어 바웬사는 국민경제의 약화로 인해 사회적 위기가 고조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자유노조 주도하의 비공산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하게 된다. 마침내 자유노조 세력은 주도권 문제로 한동안 공산당과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공산당과 동맹관계에 있는 농민당 및 민주당의 극적인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공산권 역사상 최초로 비공산세력이 주도하는 연립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야루젤스키 대통령과 공산당지도부도 이에 동조, 드디어 8월24일 폴란드 의회는「연대노조」출신의 타데우스 마조비에츠키수상지명자에 대한 인준동의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를 통해 폴란드 사회는 새로운 출발의 꿈에 부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동구에 공산정권이 들어선지 40여년 만에 폴란드에서 이러한 역사적인 대변혁이 일어날 수 있었던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폴란드는 다른 동구 국가들에 비해 훨씬 심각한 경제위기를 안고 있었다. 1970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전개되어온 경제개혁이 실패를 거듭함에 따라 현재 3백9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 1백%에 육박하는 인플레, 만성적인 생산정체,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의 결핍 등 긴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숱한 경제문제가 산적해 있다. 공산당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정치 및 경제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대수술은 공산당의 독자적인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깨닫고 있다.

 

따라서 공산당은 막강한 국민적 기반을 소유하고 있는 자유노조를 정부에 참여시킴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유도하고 서방으로부터의 자본유입을 용이하게 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노조 주도하의 연정수립을 가능케 했던 결정적 요인은 무엇보다도 바웬사가 공산당과 소련에 대해「감행」한 중요한 양보였다. 자유노조측은 공산당이 요구한데로 내무․국방을 비롯한 두 개 이상의 장관직을 공산당에 할당하기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사법부, 행정기구, 경제기관 등에 포진해 있는 공산당 세력을 그대로 유지 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야루젤스키가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총괄하는 한 공산당과 소련이 수차에 걸쳐 요구한 새 연정에서의 공산당의 주요역할은 보장된 셈이다. 따라서 공산당의 「일당독재」는 일단 종식되었지만, 공산당이 경찰과 군대 그리고 대외관계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당의 지도자 역할」은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웬사는 새 연정 출범과 더불어 폴란드가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떠나지 않을 것임과 사회주의권에 계속 머무를 것임을 확실히 하였으며, 마조비에츠키 수상도 의회인준 직전에 이 같은 사실을 재환기 시켰다. 지난주에 고르바초프는 외교정책상의 소련의 이해관계를 침해하기 않는 한 동유럽의 시장경제체제 및 정치적 다원제의 확립시도를 저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폴란드의 새로운 정치발전을 승인하였다.

그러면 국민의 지지속에 출범하는 마조비에츠키 정부는 폴란드를 어디로 이끌어갈 것인가?

우선 폴란드의 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하나의 기초로서 자유노조의 정치적 노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연대노조」는 그 출발시부터 다양한 정치적 성향들-트로츠키스트, 급진좌파 및 우파 등- 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연대노조」의 핵심적 정치노선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야체크 쿠론으로 대표되는 급진마르크스주의와 아담 미슈니크가 주도하는 카톨릭좌파 세력이다.

이들은 공산당 청년운동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 이후의 폴란드 반체제 학생, 지식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그 유명한 KOR(노동자보호위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또한 복수정당제에 기초한 정치적 다원주의, 노동자 자치제,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기반 한 폴란드식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폴란드 국민의 정신적 지주인 가톨릭교와 온건한 마르크스주의적 측면과의 결합을 통해 윤리적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하는 미슈니크의 사회주의는 폴란드 국민으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마조비에츠키도 이와 가까운 노선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웬사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폴란드 국민도 최소한 사회주의적 공유제의 유지, 존속에는 전폭적인 동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다만 폴란드의 공산주의로부터 스탈린주의적 유산을 청산함으로써 폴란드식의 사회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자유노조 주도하의 연립정부가 실행하고자하는 정치․경제적 개혁의 내용과 폴란드 사회주의의 변화전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자유노조 정부는 당면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업의 자율권 확대, 사기업의 장려, 시장기능의 확장, 서방의 기술 및 자본도입 등을 추진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서방으로부터의 자본도입이 과연 성사될 수 있는지가 큰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연대노조」의 경제배서에 의하면 폴란드는 서방의 정부 및 은행차관,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등에서 모두 1백억 달러를 들여와 이를 민간부문에 집중 투입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폴란드는 매년 30억 달러를 외채이자로 물어야 하기 때문에 서방지금이 계획대로 들어오지 않을 경우「연대노조」가 추진 중인 경제재건 구상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서방이 어느 정도「연대노조」의 정치․경제 계획을 신뢰하느냐에 달린 문제로 보여 진다. 

서독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자유노조의 개혁정책을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이나, 무엇보다도 경재원조의 가장 큰 출처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이 폴란드의 변화를 미온적인 태도로 지켜볼 것이 예상됨으로 해서 서방자금이 계획대로 유입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의문스럽다.

 정치면에 있어서도 물론 보다 많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것은 확실시되나, 정국의 안정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지는 현재 예측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공산당의「지도자 역할」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당내 보수파와 공산주의의 완전 철폐와 민주주의의 즉각적 구현을 외치는 성급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자유노조는 개혁에 필요한 정국안정을 요리해야 하는 힘든 과제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노조는 당분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산당과 소련, 그리고 반공산세력 간의 균형을 도모하는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폴란드가 추진하려는 정치․경제 개혁이 장기적으로 볼 때 과연 폴란드에서 사회주의체제를 계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로 떠오른다. 「연대노조」의 개혁안대로 사기업과 시장경제질서가 점차로 확대된다면 폴란드는 결과적으로 혼합경제체제 하에서 사회주의 경제원칙보다는 개인의 이익추구를 통해 국가의 번영을 꾀하는 자본주의 원칙이 우선하는 사회로 변화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현 헝가리의 복지국가가 정책안이 제기하듯이 과연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적 색채의 가미」가 사회주의의 한계선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연대노조」의 정치개혁안이 제대로 이루어져 자유선거, 정치적 다원주의, 언론의 자유, 인권보장 등의 자유민주주의적 요서가 대폭 수용된다. 폴란드식의「민주적 사회주의」는 결국 폴란드식「사회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지는 않을까?

 한마디로 폴란드는, 사회주의체계가 국민의 복지와 번영을 구현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경제원칙과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질서의 요소를 도입하면서도 얼마만큼 그리고 언제까지 사회주의적 본질을 손상함이 없이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역사적 실험장이 되고 있다. 또한 자유노조와 대다수 국민들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가 결국 폴란드사회의 사회주의적 본질을 강화 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윤덕희(동구문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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