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가장 뜨거운 목소리로 시대의 양심을 대변해왔던 종교계가 다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해인사의 정문을 봉쇄하고 단식농성을 벌이는「성난 불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동국대의 부정입학과 관련하여 이 학교 총장인 이지관씨(승려)를 정권의 희생양으로 구속한 것에 대한 불교계의 항의였다.

 이와 관련해 불교계의 조계종에서는 조계종 산하 승려 및 신도 35개단체로 구성된「6공법란 동국대사태범불교도 대책위원회」를 구성, 지난 6일「6공법란 동국대사태규탄 범불교대회」를 갖고 정부탄압에 맞서 불교자주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불교가 지금까지 호국불교라는 미명하에 정권의 시녀노릇을 해왔다는 오명을 벗고 침묵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고문과 압제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여기며 중단되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목요기도회」와「인권소식」도 부활하였다.

 이러한 때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역시 정권에 대한 정면도전을 선언하고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러한 사제단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의 첫 신호탄은 문규현 신부의 파북이었다. 이것은 전대협 대표로「평양축전」에 참가한 가톨릭 신자인 임수경양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목적 배려와 공안정국에의 저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사제단의 이같은 행동은 지금까지 사제단이 해온 반독재 투쟁에 비해 통일문제를 그 주요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우리의 기본자세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결국엔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데에도 의견일치를 보았지요. 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엄청난 고통과 이를 빌미로 자행되는 온갖 폭압이 극에 달한 지금 사제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라며 배은하씨(사제단 임시 상임위원장)는 사제단 운동의 배경을 설명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민족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이 시대의 사명이라고 결의를 밝힌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사제단 활동은 민족을 적으로 삼는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공안정국의 분쇄에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문신부가 북한에 도착한 후, 남국현 신부, 구일모 신부, 박병준 신부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에 이르자 7월 31일 사제단은 비상총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에는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규모인 2백20명의 신부가 참석해 현정국의 심각성과 함께, 사제단이 전국 사제들의 뜻을 수렴하는 전체성과 통일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해 주었다. 비상총회에서는 상임위원회의 문신부 파북결정을 만장일치로 추인하고 4개항의 결의사항을 채택, 발표하였다.

 사제단의 결의한 4개항은 정례시국기도회의 개최, 노태우정권에 대한 7·7선언관련 공개 질의서 발송, 국가보안법철폐 범국민서명운동 전개, 구국단식기도 실시 등이다. 이에 따라 사제단은 8월 17일부터 전국적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번 서명운동은 전국 14개 교구에서 일제히 시작되었으며, 사제단과 뜻을 같이하는 사회단체 및 가톨릭 평신도 26개 단체로 구성된「국가보안법 철폐와 구속사제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연계, 서명운동을 벌여가고 있다.

 또한 8월 7일 구속중인 남국현씨(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던 서울청량리성당의 기도회를 시작으로 전국의 각 교구를 순회하는 정례시국기도회가 계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지난 8월 29일 제3차 시국기도회에 앞서 열린 상임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사제단은 공안정국의 타개를 위한 단식기도회를 오는 18일부터 열기로 잠정결정하였다. 이와 함께 8월 20일을 전후로 전국 각 성당에서는「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주관하는「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간구하는 9일 기도회」가 열렸다.

 사제단의 활발한 활동은 통일 논의 및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임수경양의 방북을 비롯한 일련의 공안사건의 진상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정권의 입장에서는 사제단 운동이 눈에 가시와 같지만 엄청난 교세를 가진 세계적인 가톨릭의 권위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세계성체대회때문에 노골적인 탄압에 나서진 못하고 있다. 한편 8일, 사제단은 성체대회를 맞아 정부의 사전승인을 얻은 뒤 사제단 대표를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언론을 이용, 가톨릭 내부의 주교단과 사제단의 분열을 조장하고 선전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나 가톨릭계는 근본적인 면에서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고 있음을 거듭 천명하였다.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묶어 평화의 계약을 맺게 하라」(에제가엘37)는 사명은 이제 사제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 과제이다. 사제단의 박종철 열사 고문진상 폭로가 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듯, 지금 사제단의 분연한 일어섬도 반드시「제2의 6월항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의 성취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서명운동이나 기도회에의 참여와 같은 작은 것에서부터 통일의 물꼬를 트고 단결된 힘과 분노를 모아내는 일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