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주의의 이해<1>

「공산주의의 조용한 죽음」. 이는 최근에 일고 있는 공산권의 개혁·개방 움직임에 대한 서방측 평가의 하나이다. 과연 공산주의는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대변화에 맞는 「평화적」혁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본 시리즈「현대사회주의의 이해」는 최근 일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 개방 논의에 대해 왜곡되지 않은 올바른 인식을 도모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정리해보고자 기획되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편집자>

 페레스트로이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등장 이후 소련 사회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된지도 이미 4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시기동안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사회운동의 고양과정 속에서 사회주의권의 동향은 우리에게 적잖은 당혹함을 던져주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대해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한반도 주변의 국제세력 관계의 변화와 그의 효과하에서 진행되는 남북한관계의 변화는 현재 사회주의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개혁·개방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불완전하게 분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이러한 사회주의권의「변화」의 상징이며 나아가 현존 사회주의권의 흐름에 대한 주요한 추동력으로서의 그 의의를 지닐 것이다.
 이렇듯 현상이 강요하는 강력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위한 공통의 문제들은 아직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아직 진행중에 있어서 일정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산출된 실제적 결과가 충분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이론적(나아가 실천적) 역량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노선(이른바「신사고외교」-그 골자는 주지하듯이 전인류적 이해의 계급적 이해에 대한 우위이다-에 기초한「신데탕트 노선」)에 대한 각국좌파세력의 비판에 따른 국제운동세력 사이의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정세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한 예비적 요소에 대해 검토를 행하는 것은 적절할 듯 하다.
 이하에서는 소련에서의 경제개혁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그 세부적인 정책보다는 그를 지지하기 위한 이론적 시도들의 검토를 통해 향후 현실에 대한 보다 구체적 분석을 위한 기초적 문제들을 형성해 보고자 한다.

「정치경제학의 페레스트로이카」와「페레스트로이카의 정치경제학」
 현재 소련 학계에서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은 지난 시대에 대한 자기반성에서 현재 개혁의 불가피성을 구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브레즈네프 시대(특히 1979년「재집권화」조치 이후의 그의 사망때까지의 시기)에 대한 자기부정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거슬러 올라가 스탈린 시대와의「철저한 단절」을 주창하고 있다. 30년대~50년대 스탈린의 이론적 기여에 대한 평가절하와 그 당시 스탈린에 대항했던 논자들에 대한 재평가작업, 특히 NEP(신경제정책)와 공업화에 대한 재평가 작업 속에서 부하린의 복권 등이 이루어지고 레닌과 스탈린 사이의 차별성이 오히려 무관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사회과학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주도하는 논자들은 과학아카데미경제부문의 학술서기이자 고르바초프의 경제고문인 A.아간베기언, 모스크바대학 경제학부 교수 G.포포프, 레닌그라드 대학 출신의 경제학자이며 89년 초 당직개편에서 정치국원 겸 이데올로기 담당서기로 발탁된 V.메드베데프, 사회주의세계체제 연구소의 A.부텐코 그리고 논쟁의 전반적 지휘를 담당하고 있는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소장인 L.아발낀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비판의 표적은 모스크바대학 경제학부의 N.쨔골로프, 사회과학 아카데미 경제부의 I. 쿠즈미노프, 당이론지「코미니스트」의 전 편집장 R.코솔라포프 등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소련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은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가 편찬한「정치경제학교과서」(1판 1954년, 최종판 1962년)와 모스크바대학 정치경제학부의「정치경제학교정」(1판 1963년, 최종판 1974년)으로 대표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과 더불어 이들의 이론은 실생활의 요구로부터 유리된 스콜라주의, 스테레오타입의 사고, 교조주의라는 명목으로 비판 혹은 자기비판되면서 새로운 정치경제학교과서가 L.아발낀과 V.메드베데프 등의 주도하에 작년에 간행되기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주된 공격방향은 지금까지의 사회주의론의 전통적 해석인 전인민적 소유=국유의 절대화, 계획적 발전의 법칙과 가치법칙 사이의 관계에서 전자의 우위, 노동의 직접 사회적 성격, 생산의 목적=사회주의의 기본경제법칙에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다양한 파생적 주제에 대한 이견은 결국 사회주의관(및 그의 기본모순)과 인간관에 대한 이견에 근거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사회주의의 기본 모순은「낡은 사회의 모반과 새로운 사회의 맹아 사이의 모순」으로 정식화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개혁파의 이론가들은 사회주의를 (독자적)생산양식으로 재정의하여 그 기본모순은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구체적으로는「과학기술혁명(STR)과 생산관계의 구체적 형태 사이의 모순」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개략적이나마 현재의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소련 정치경제학계의 논쟁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해서 절을 ㅡ바꾸어 요약·정리해보고자 한다.

 페레스트로이카 논쟁의 전시-1960~70년대 사회주의정치경제학 논쟁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의 이른바「경제학의 르네상스」의 도래이후 소련에서는 앞서 언급한「정치경제학교과서」-이는 스탈린의「사회주의적 생산양식론(이하 SMP론)」에 대한 대중적 개설서이다-의 개정을 둘러싸고 정치경제학의 체계 및 방법론을 둘러싸고 장기적이고도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 논쟁의 양대중추세력은 각각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와 모스크바 대학 경제학부였는데 각 세력의 중심논자는 당시 경제연구소 정치경제학부 부장이었던 Ya.크론로드와 모스크바대학의 교수였던 N.쨔골로프, V.체르코베츠 등이었다.
 이 논쟁은 스탈린시대 이후 공식견해(=SMP론)에 대한 모스크바대학측의 방법론적 문제제기에서 출발하여 정치경제학의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전개되었다. 스탈린 이래 전통적 방식은 (법률적)소유관계를 사회주의의 단서적 및 기본권 관계로 파악하여 기타 파생적 범주들을 그에 기초하여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쨔골로프 등은 계획성을 단서적 범주로 파악(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의 경우「상품」과 유비된다)하여 공산주의 일반과 특수 사회주의적인 경제범주 사이의 위계적 의존관계의 유기적 구성을 통해 소유관계의「경제적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 논쟁의 의의는 방금 서술한 서술방식의 차이 이상의 것인데 그것은 스탈린의 이론적 편향-그것은 위에서 보듯 법률적 형태에 의한 객관적 생산관계의 규정이라는 주의주의를 매개로 한 경제주의적 편향일 것이다-에 대한 사회주의 정치경제학 분야에서의 문제제기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극복은 흐루시초프의 개인숭배 비난에도 불구하고 극히 불충분한 것이었는데 쨔골로프의 시도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논쟁은 60년대 후반까지도 평행선을 그렸는데 그것이「어쨌든」정리된 것은 브레즈네프의 소위「선진사회주의론」을 전기로 해서였다. 제24차 전당대회(1971)에서 흐루시초프의「공산주의 건설」노선이「선진사회주의론」(혹은「발달한 사회주의론」)으로 대체되고 그 후 이에 대한 크론로드의 도전이 기각된 이후 대체적으로 논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크론로드는 현재 소련사회의 발전단계는 생산력 발전 수준의 불충분함, 농업의 공업에 대한 상대적 낙후, 두 계급의 잔존 등으로 인해 고도로 선진적인 단계로 볼 수 없다는 논지를 폈는데,(초기사회주의-선진사회주의-고도의 선진사회주의의 이른바「3단계설」) 이에 대해 Yu.파시코프, A.루미안초프 그리고 최근「전향한」A.부텐코 등 경제연구소의 주도적 경제학자들은「공산주의 형성의 합리적 단계」,「선진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어떠한 중간단계도 없다」라는 역사적 지위론을 매개로 논쟁을 절충하게 된다.
 (이의 이론적 성과가 G.코즐로프 감수의 새로운 아카데미판 교과서(초판:1969, 최종판:1977, 국역은 녹두:1989)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오해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크론로드 논쟁의 경과 중에서「선진사회주의론」을 둘러싼 모스크바 대학측과 경제연구소측과의 현상적 동맹관계에서 파생된다. 현실정책적 의의는 달리하면서도 쨔골로프는「경제학 교정」제3판(74)의 서문에서 선진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체르코베츠도 주로 생산관계의 개선을 주제로 하여 선진사회주의에 관한 몇 편의 글을 발표하는데, 따라서 1960년대의 논쟁의 합리적 핵심은 다소 은폐되는 양상을 띤다.
 (이런 사정으로 인하여 쨔골로프 등은 최근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론가들에 의해「광신적 교조주의」라는 비판은 모면하지만「근대화된 사회주의 정치경제학」,「네오스탈린주의」라는 명목으로「부당하게」단죄되고 있다.)
 이후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는「경제메카니즘 논쟁」과「사회주의 국가론 논쟁」및 철학계에서의「사회주의의 기본 모순」논쟁을 경유하면서도 진정한 쟁점은 잠복하게 되는데 그것이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전혀 새로운 구도하에서 현재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앞절에서 필자가 아무 설명없이 서술한 현재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론가들의 주장은 전술한 맥락에서 그 개요가 추출될 것이다. 60~70년대 논쟁에서 스탈린적 유산에 대한 비판과 그것의 합리적 재구성을 거친 후 그것이 선진사회주의론으로 절충되는 과정에서의 이합집산 속에서 스탈린적 편향의 극복은「아직」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즉 선진사회주의의 안정적 재생산을 통한 공산주의로의 점차적 성장전화(그의 추동력은 현대 과학기술혁명, 즉「생산력」이다)라는 경제주의적 해석이 그에 대한 비판을 명목으로 부활한 인간주의적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흐름
 그러면 페레스츠로이카는 갑자기 출현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주도적 이론가인 V.메드베데프의 이론적 경력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전술한 크론로드/쨔골로프 논쟁의 와중에서 또 다른 하나의 세력으로서 논쟁에 개입한 N.콜레소프, P.쨔오스트로브쵸프 등의 레닌그라드대학 계열 논자들의 일원이었다.
 이들 학파는 일찌기 소유론과 상품생산론에 대한 독특한 해석에 기초하여 사회주의 기업의 국민경제에서의 지위(=사회주의적 상품생산자)에 대한 파악에 이론적 중심을 두었다.
 콜레소프의「(수정된)상품실체론」에 따르면 사회주의 하에서의 상품생산은 물신성을 지니지 않으며「상품성」의 정도가 서로 차별적인 상품생산으로 정의되고 따라서 가치법칙은 사회주의 전단계에서 작용하게 된다. 즉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계획경제인 동시에 특수한 종류의 상품경제로 정의되어 경제관리의 목표로서「계획과 시장의 기능적 최적 결합」이 추구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1965년 9월의 코시긴 수상 주도하의 경제개혁 조치를 전후하여 신경제관리제도로의 향후 진전을 둘러싸고 정책적 차원의 보다 직접적인 논쟁도 가열된다.(이른바 리베르만 논쟁)
 이는「물질적 인센티브」와「경제계산제」를 기초로 하는 경제관리에서「행정적 방식」의「경제적 방식」으로의 점차적 전환과 그를 제도적으로 담보하기 위한「사회주의 기업의 상대적 자주성」을 초점으로 한 것이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레닌그라드대학 논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다. 리베르만을 위시한 당시 개혁파 경제학자들의 경우 정치경제학자들이라기보다는-소련에서「경제과학」이라고 불리우는-수리경제학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이들 레니니그라드대학 계열의 논자들이었다.
 상품·화폐관계를 사회주의의 내재적인 것, 나아가 사회의 전 역사에 걸쳐 보편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론진의 맹아는 이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이 발견된 정치경제학 교과서의 최대 특징은 서두에「사회의 일반적 기초」편을 독립된 편으로 신설하여 그 말미에 상품생산/가치법칙을 독립된 주제로 놓고 있으며(자본주의 편이 아니다!) 사회주의편에도 상품·화폐관계에 고나한 장 뿐 아니라「사회주의적 시장」을 독립된 장으로 신설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현재의 개혁파 이론가들의 사상이론적 뿌리는 우회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이들(심지어 동구의 시장사회주의론?)에게서 연원하며 현재 수리경제학자들 및「전향한」70년대의 논자들과의 제휴·동맹 속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잠정적 결론
 1970년대 브레즈네프 집권기의 소련 사회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론적 면에서의 현실변호론적인「선진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의 SMP론의 편향의 재생산에 불과했으며 실천적으로도「동맥경화」라는 비유적 표현에서 보듯 특히 1970년대 말 이후 관료제적 병폐의 만연과 과다한 군비지출에 따른 경제의 정체는 사회주의의 기본경제법칙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 대한 타개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제반혁신이 지니는 보편적, 세계사적 지향에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사회주의관에 대한 우리의 파악은 아직 불충분할 수밖에 없고 또한 소련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측면은 인정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특수한 측면이 사회주의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충분히 체현하고 있는가는 의문시된다. 더 나아가서 이 점이 우리에게는 더욱 직접적인데, 그들의 현대 자본주의관이나 발전도상국관에는 심각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일반적 위기론」을 실질적으로 폐기하면서 현대자본주의가 신과학기술혁명을 통한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으며「사멸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시각(일역판「세계경제와 국제관계」중 셰이니스(83집), 메드베데프(84집)를 참조) 또 발전도상국의 내부분화현상에 주목하여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을「중위자본주의」혹은「신공업중심」이라고 파악하는 시각 등이 그것이다. 이는 결국 사회구성체론에서의 종속국독자론의 기각과 변혁론에서의 민중민주주의적 과제의 부정으로 연결된다.
 연초의 보빈(한겨례신문 88.11.4)이나 최근 사브시나(중앙일보89.9.5)의 대한반도관계 발언은 그 현실화 여부와는 무관하게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의 저류에 흐르는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북한의 통일전략의 불모성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으로서 교차승인/UN 동시가입.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는 식반론에 근거한 실천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의 유효성이라는 극히 부수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정도의 혼란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론적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점에서 페레스트로이카는 현재 우리 운동의「현안」이다.

 신현준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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