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우리에게「일용노동자」라는 말보다는「노가다」라는 속칭으로 더욱 잘 알려진 노동자들.
 이들은 전국각지 모든 건설현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이들의 수는 3백50만~4백만으로 추정된다. 모든 건설에 있어 이들의 노동이 없으면 사실상 어떠한 사업도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사회로부터의 천시와 소외였다.
 노동경시의 사회풍조가 만들어 낸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이들 스스로 자신을 당당한 노동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날품팔이 인생」「노가다 팔자」라는 식으로 불러 자기비하로까지 이어졌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자기가 하는 노동에 대해 애착은 물론 책임감 또한 매우 낮아 더 높은 보수만을 위해 작업현장을 쉽게 옮기기도 한다.
 또한 이들에게는 고정적으로 늘 작업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눈·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공사를 거의 하지 않아 이들의 생활은 불안정하며, 임금 또한 계절에 따라 변동이 심하다.
 결국 일용노동자들에게「임금협상」이란 있을수도 없는 말이었다. 단지 사업자측에서 일방적으로 고시한 가격에 자기의 노동을 파는 것이다. 이들은 일용노동자라는 말 그대로 그날의 일당을 받게 되는데 이들이 받는 일당은 정식직원보다 훨씬 높다.
 정식직원의 경우 하루 평균 7~8천원의 임금을 받는데 비해 일용직노동자의 경우는 하루 1만5천원~2만5천원을 받고 있다.
 이렇듯 훨씬 높은 보수를 주면서도 사용자측에서는 일용직원을 고용하려 하는 까닭은 사용자측에게 더욱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일용노동자는 하루 10~12시간, 잔업이 있을 경우에는 14시간까지 노동을 하는데 그들에게 배당되는 이익은 노동시간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다.
 즉 일용노동자들은 단지 일당만을 받을 뿐, 정식직원이 받는 퇴직금·상여금의 지급이나 복지후생시설의 이용 등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혜택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본다해도 정식직원은 근무경력이 쌓일수록 임금이 올라가나, 일용직은 언제나 임금이 일정하고, 일을 쉬어야하는 비수기에는 임금이 지불되지 않아 이들의 일당은 사실상 결코 많은 액수도 아니다.
 이러한 최장노동시간, 저임금이라는 노동악조건에 대해서 일용노동자들은 그저 그것을 관슴으로 여겼고 작업 중 산업재해라도 당하면 그건 하늘의 탓으로 돌릴 뿐이었다. 그러나 87년 6월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선도적 학생들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외쳤던「노동해방」이나「8시간 노동쟁취」라는 말은 이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즉 일용노동자야말로 가장 기초가 되는 노동자라는 자각의식이 싹트게 되었고 고된 막일을 행야하는 것은 팔자소관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정책구조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각성 속에서 작년 3월 이들은 정부나 노동관계부처가 어떤 혜택을 베풀어줄 것인가를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 나가야겠다는 의지로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서울에 세워진「일용노동조합」(이하 일용노조)이다.
 일용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함으로써 그동안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용자측이나 중개업자에게 돌아간 그들의 권리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
 즉, 근로기준법에 명백히 제시되어있는 8시간 노동, 주차(일주일 중 6일을 일하면 일요일은 유급휴가 받음), 월차(한달간 일하면 주휴일 이외에 1일 유급휴가 받음) 지급, 공사완료시까지 계약유효 등의 권리를 쟁취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일용노조가 되찾고자 하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나마 조직으로써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한다. 그러나 일용노조는 조직으로써 모든 구비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들의 단결된 힘을 두려워하여 노조로써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 일용노조는 합법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용노조조합원들은 우선적으로 합법성쟁취라는 목표를 가지고 계속 투쟁하고 있다.
 이러한 일용노조의 현재 가입원수는 아직까지는 일용노동자들의 노동자의식이 미약해 2만여명에 불과하며, 전국에 여천·전주·포항 등 17개의 지역조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일용노조는 회원들이 매달 내는 회비 2천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사실상 회비가 제대로 걷히지 않아 일부 헌신적·적극적 노조원들의 기부금이나 특별기금으로 운영되는 예가 허다하다. 이렇듯 아직은 미약한 물적 토대를 가진 조직이나 이들이 벌이는 사업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특히 일용노조는 기능·훈련부를 설치해 무기능자나 기술이 떨어지는 자에게 기술을 가르쳐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노조는 사실상 공간과 자본을 갖추지 못해 현장에서 직접 기술을 보여주고 실습을 시키는 현장교육이 위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노조가입 무기능자들은 사설기술학원의 경우와는 달리 산교육으로서 더욱 빨리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용노조가 벌이고 있는 사업으로는 의료사업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처리사업이 있다.
 즉, 일용노조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연계를 맺어 노조원에게 의료혜택을 주고 있으며, 산업재해문제나 임금체불 등의 문제를 당할 때는 고문변호사에게 협조를 구해 문제를 풀어 나가기도 한다. 또, 노조원에게 경조사가 생겼을 경우는 서로 방문하여 상부상조하는 등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특히 전라도 여천지부의 경우는 일용노조가 가장 잘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여천의 경우는 지난 1월 23일부터 53일간에 걸친 파업투쟁으로 8시간 노동, 주차·월차수당 및 노조의 합법성을 쟁취하였다.
 뿐만아니라 노조의 조직기반도 매우 강고해 노조를 통하지 않고는 취업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결국 여천 일용노조의 경우는 일용노동자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점인 고용구조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타지역에서 일용노동자가 고용되는 통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사업자측과 노동자를 연결하는 친분이 있는 마지막 중계업자(이들은 오야지라 불리운다)를 기준으로 5~6명씩 묶여 작업현장에 투여되거나 새벽 일일시장에서 운좋게(?) 선택되거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직장을 알선받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들은 장시간 노동·저임금에 시달리는 일용노동자들에게는 매우 불합리한 방법들이다. 새벽 일일시장의 경우는 순전히 그날「운수」에 의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뿐이고, 직업소개소나 오야지를 통하는 경우는 이들의 임금에서 일정정도의 돈을 그들에게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한 여천 일용노동자들의 투쟁은 길고도 외로운 투쟁이었다. 즉, 여천 일용노동자들은 파업투쟁기간 중 16명의 노동자가 연행되고 노조원 임상원씨가 12주의 부상을 입는 등 30여명이 부상했다.
 일당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그들에게 투쟁의 장기화는 곧 생존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이 장기화되고 폭력개입에 부상자가 속출해도 투쟁기간 중 모든 일간지는 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이러한 관제언론의 무성의는 전주에서 3월부터 일어난 23일간의 파업투쟁에서도 보여져 조합원들을 분노케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난 4일부터 파업투쟁에 돌입하여 노동자 2명 중상, 70여명 연행이라는 불상사를 낳은 포항일용노조에 대한 기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고립적 투쟁들을 통해 결국「우리를 지킬 것은 우리의 단결된 힘뿐이라는 것」을 절감한 일용노동자들은「전국조직」을 생각해내었다.
 즉, 각 지역의 단결과 통일성을 높이고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전국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자발적 문제제기와 노조원들의 적극적 참여로 지난 4월 23일「전국건설일용노동조합」(이하 전국일용노조)이 탄생되었다.
 전국일용노조의 설립에 대해 일용노동자 김무원씨(32세)는『빗물이 모여 강물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전국 모든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 공장, 빌딩, 고속도로를 우리 손으로 세워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집 한 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입니다. 단결하여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전국조직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국일용노조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산적해 있다. 이에 대해 서울일용노조간사 김철수씨(24세)는『현재로는 양적팽창만 이루어져있는 상태입니다. 교육의 질적 발전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노동자들이 노동자의식을 확고히 가지지 못하고 있고 또 사업장이 분산되어 있어 교육의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라고 문제를 지적한다.
 단순히 사람만 모아 조직을 꾸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끊임없는 의식화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이나 노동시간 단축만이 노동운동으로 인식하는 노조원이 상당수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낮은 의식수준을 철저한 교육으로 극복해 진보적 노동자의식과 노조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부 사이에서도「노동해방」의 개념을 확실히 간파하지 못해 현재로서는 지도부에서도 틀 잡힌 교육체계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어려움은 앞서 말한대로 각자의 사업장이 고립·분산되어 있고, 이들의 현재 노동시간은 거의 12시간으로 교육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한 타운동단체와의 연계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조직 기반을 다져 나가며 주체역량을 키워가는 단계이므로 타노동운동단체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지 조합원들간의 연대수준에서 함께 집회에 참석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모든 노동운동이 결국은 노동운동해방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맥을 가지고 있다고 볼 때 더욱 긴밀한 상호연계가 필요하다. 특히 일용노조의 경우는 노조건설의 전례가 없어 조직결성문제는 타노동운동과의 상호협조가 이루어질 때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이렇듯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는 전국 일용노조는 현재까지 이루어 놓은 양적 확대- 물론 그 양적확대도 매우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를 기반으로 질적수준 향상에도 힘써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청계피복에 노조가 생기기까지는 20년이 걸렸습니다. 군사독재정권과 분단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불평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겪는 것은 바로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성장해 전국 방방곡곡에 지역노조를 결성하고 아직은 요원하게 들리겠지만 결국엔 자주·민주·통일의 선두주자로 설 것입니다』라는 일용노조 이규재씨(전국일용노조 위원장)의 말처럼 이젠 장기적 관점에서 중심세력을 구축해 단단한 조직으로 노동해방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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