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통신시장 개방, 경제·정보 종속으로 자주성 저해
전기통신시장 개방, 경제·정보 종속으로 자주성 저해
  • 이대학보
  • 승인 198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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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의 전 영역에 걸쳐 개방 요구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5월의 협상과정에서는 미국 종합무역법의 슈퍼301조에 의한 우선협상대상국(PFC:Priority Foreign Country)지정의 협박에 굴복하여 한국 정부는 외국인투자 전면자유화 및 농산물의 대폭 개방, 국산화정책 포기 등 대폭적인 개방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그 이후 한미통상마찰은 잠시 잠잠해지는 듯 했지만 오는 10월에 있을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시금 경제개방화의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올 한 해의 한미통상협상과정을 보면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5월의 협상이 있기 전에 이미 지난 2월 23일 통신분야에 관한 한 EC와 함께 우선협상대상국(PFC)로 지정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종합무역법의 규정에 따라 90년 2월 23일까지 통신분야에 관한 1차협상을 완료해야하므로 앞으로 있을 한미통상협상에서 전기통신분야개방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개방화 추이를 살펴볼 때 미국의 요구가 거의 그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우리 인체의 신경조직과 같은 전기통신이 고스란히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세계경제에서 전기통신산업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 분야에 관한 미국의 개방요구내용과 개방에 따른 효과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미국이 정보통신분야의 개방을 요구하는 배경으로는 현재의 세계경제구조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증대함에 따른 전기통신산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과 미국이 당면한 쌍둥이적자 등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찾아질 수 있다.
 우선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서비스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아니라 지금까지 재화의 생산을 단순히 보조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비교역재로 기능하던 서비스부분이 점차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국제무역의 중요한 대상이 되기 시작했으므로 전체경제에서 차지하는 서비스부분을 생각할 때 앞으로 서비스무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전망이다.(1979년 세계 총GDP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64%, 서비스 무역규모는 1980년 4,200억달러로 세계 상품총교역량의 25%에 달하고 있다.)
 전기통신서비스의 전략적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서비스의 거래와 교역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항상 전기통신서비스가 함께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도로가 재화의 수송에 기초가 되었듯이 전기통신망은 은행, 보험, 여행, 컨설팅 등의 여타 모든 서비스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의 정보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통신기술과 컴퓨터기술의 결합이 강화됨으로써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한편 전기통신기기는 조립생산수준의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그 대부분이 매우 높은 기술집약도와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아니라 여타 기기산업에의 기술적 파급효과가 대단히 큰 분야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전기통신기기 산업을 첨단산업 내지는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자국의 기술개발과 산업육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부문을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국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를 자국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전기통신분야 등 첨단산업의 시장개방을 통하여 극복하기 위해서 외국의 통신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경제는 최근 엄청난 쌍둥이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세계 최대의 채무국화라는 경제적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이러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대외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0년대 초반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그동안 실추된 미국의 권위를 회복하여 미국지배하의 평화(PAX Americana)를 보다 공고히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구체적인 정책이 바로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군비경쟁을 강화하는 등의 경제재생계획의 시행이었다.
 그 결과 군사관련의 컴퓨터·전기전자·우주항공·생명공학 등 최첨단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업 부분의 급속한 쇠퇴와 다국적기업의 해외 이전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경제위기에 직면해서 미국은 비생산적인 군비지출을 축소하고 자국내 산업 생산력을 높임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자국이 세계경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최첨단산업의 대외개방을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 88년 8월 23일 통과된 종합무역법을 통한 대외시장 개방과 89년 1월부터 시행되는 미-캐나다간의 자유무역지대(FTA)의 다른 지역으로의 확대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전기통신분야에 관해서는 기존의 종합무역법에 특별히 통신조항(1374조)을 신설하고, 올해 2월 23일에 한국과 EC를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함으로써 전기통신문야의 개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기통신사업에서 미국의 우위는 서비스와 기기를 막론하고 확고하다. 전기통신기의 경우 특히 문선기기분야는 미국의 우위가 단연 압도적이다. 다만 유선기기의 경우 일본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기술수준이 비교적 낮은 기기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에 그 시장을 넘겨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85년 이후 상당한 정도의 무역수지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국제분업구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전기통신서비스의 경우에 있어서 미국의 우위는 거의 절대적이다. 부가가치통신망(Value Added Network:VAN)이 미국에서 사업화된 것은 일ㅇ본에 비해 10년 정도 앞서있는 상황이고 그 기술적 우위성도 인정되고 있다.
 다른 한편 자국내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쇠퇴로 해외로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그 경영전략상 전기통신분야의 대외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국제화의 추세 속에서 세계적 전기통신망의 구축은 처음에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필요하지만 일단 일정정도 규모의 망이 구축되면 이것이 기업의 새로운 이윤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통신시장개방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대응을 보면 일본은 미국의 압력으로 비교적 개방적인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나 경쟁력의 차이로 인하여 외국의 진출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프랑스나 서독과 같은 EC 국가들은 여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나 국가나 공기업이 이를 담당하고 있어 민간의 부가가치통신망(VAN)에 대한 참여가 배제될 뿐 아니라 외국업자에 대해서도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개방논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시장을 보호하려는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전략 산업으로서의 중요성과 함께 근본적으로 일반 상품유통시장과는 달리 정보·통신부문이 공공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사회·문화적 자주성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한국만 특별히 개방요구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85년 이후로 통신기기에서 무역수지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국이 비교우외를 지니는 전화기와 일부 컴퓨터 단말기의 생산에 의한 것일뿐 무선전화기 등 첨단기기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미국이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나서는 이유는 한국의 무역흑자를 빌미로 자국이 이미 확보하고 있는 부문을 확고히 지배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의 전기통신시장의 성장가능성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 전기통신사장은 지난 몇 년간 급속히 팽창하여 현재 전화시설수를 기준으로 볼 때 세계 10위권내에 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시장일뿐아니라 앞으로의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전기통신분야의 시장개방을 달성함으로써 다른 개도국의 개방을 요구할 때 유리한 명분과 기술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현 정권의 예속성에 기초한 비자주적 태도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의 한국경제 개방화 요구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굴복함으로써 거의 모든 것을 다 들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개방을 요구한 내용은 크게 서비스분야와 기기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비스 분야와 관련한 미국의 주장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기통신망에 기초한 모든 서비스를 개방하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세계적인 전기통신망의 형성은 지금까지 쉽게 무역이 될 수 없었던 여러 서비스 무역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미국이 요구하는 전기통신서비스의 개방은 단지 전기통신서비스시장의 개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시장 전반에 걸친 개방을 의미한다. 즉 이 경우 전기통신산업, 컴퓨터산업 이외에 금융, 출판, 여행과 정보산업 등 다른 산업부분이라도 전기통신망을 사용하는 서비스는 모두 포함된다. 이는 곧 미국의 서비스 시장을 국경의 제한없이 우리나라에까지 확장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전기통신서비스 시장의 개방은 국내 서비스시장의 잠식이라는 경제적 측면 이상의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전기통신서비스의 대외개방은 데이타나 정보유통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짐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국제간의 정보유통은 데이타시장의 불균형과 컴퓨터기술의 차이로 인하여 전통적인 국제적 분업구조를 심화시키고 정보종속을 낳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정보의 자유유통이 이루어진다면 그 유통의 실제주체인 다국적기업이 한 나라의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전기통신기기와 관련한 미국의 요구는 대체로 정보조달의 개방, 관세의 대폭적 인하, 표준제정에의 미국 참여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정부조달과 관련해서 미국은 미공급자들에게 한국의 조달시장을 완전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대상 기관으로서는 한국 정부, 한국전기통신공사(FTA) 등이 해당되고, 개방시기는 내년부터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개방 후 파급될 영향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미국간의 현격한 기술력의 차이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전기통신기기시장을 미국이 확고하게 지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에도 미국의 국내시장 지배는 뚜렷하지만 개방 후에는 국내의 자체적인 기술 개방을 더욱 제약하여 미국의 시장 지배가 보다 정착될 가능성이 있다.
 관세 인하의 경우 짧은 기간에 대폭적인 인하가 이루어지게 되면 현재까지 관세 보호하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상당 품목 등이 그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선진각국은 세계 통신장비의 시장점유율을 확대시키기 위하여 자국의 통신장비가 채택한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유도하려 하는데 표준제정이 가지는 여러가지 긍정적인 의미 이외에 일단 제정되어 널리 시행되면 새로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미국이 요구하는 바대로 표준계정에 미국의 참여를 보장한다면 우리의 현실적 여건에 부합하는 독자적인 표준의 제정은 상당히 힘들 것으로 예상되며 외국사업자에 의한 국내시장의 대교모 잠식이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기존의 기술 종속이 제도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있다.
 이상에서 현재와 같은 정보사회에서 전기통신산업이 갖는 첨단산업·전략산업으로써의 중요성 및 미국의 개방요구의 배경 및 그 내용과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통신시장의 개방은 단지 그 분야의 경제적 종속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산업 전반과 다른 첨단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뿐만아니라 전기통신산업의 개방은 한 사회의 정보·문화 등의 종속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국가주권의 침해까지도 가능하게 된다.
 70년대 초 미국계 전기통신분야 다국적기업인 ITT의 공작에 의해서 칠레의 아엔데 민주정부가 무너졌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나라는 현재 VAN 등의 통신서비스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고, 통신기기에서도 국제 경쟁력이 약한 상황이다. 다른 어느 나라도 실질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않는 전기통신시장의 개방에 앞서 우리의 전기통신산업 육성은 시급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장한규(한겨례 사회연구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