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초기 입법기구, 민주적 질서에 정면도전
5공초기 입법기구, 민주적 질서에 정면도전
  • 이수진=정리
  • 승인 198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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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움「1980년대 법질서와 입법정책」, 민주주의법학연구소

 지난 8·9일 연세대에서는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제2회 연합심포지움이 열려, 13개 회원단체들이「1980년대 한국사회와 지배구조」라는 전체 주제 아래 각 분야의 다양한 연구들을 발표하였다.
 이번 심포지움 중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발표한(9일, 장기원기념관)「1980년대 법질서와 입법정책-민주성을 중심으로」를 요약·정리해 소개한다.
 특히 이번 연구는 토대에 조응하는 법질서에 대한 최초의 분석시도로 사회변혁에서 법이 갖는 실천적 의미를 분석하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편집자>

 1980년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도 여러 각도로 진전되었다. 특히, 한국사회의 법질서를 대상으로 하는 법학에 있어서는 사회현실과 이론적 설명의 상호진화적 관계에 대한 실증적 검증과 이를 통한 논의가 실천의 근거로 제공되어지는 노력이 더욱 시급하다. 이제까지의 법학이 화석으로 되어버린 법을 대상으로 한「화석해석학」으로 전재하면서, 남한사회 법학의 기초는 식민법학과, 서구의 자유주의적 법이론을 맹목적으로 수용한 국적없는 법학이었다.

 법은 사회적 힘관계에 의한 제약된 의지의 표현, 즉 사회적 제세력간의 산물(투쟁의 성과)이자 하나의 힘(투쟁의 기초)으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법학은 가능적인 면과 함께 법으로서 표현되는 사회관계의 본질적인 부분을 설명하고, 변화의 실천적 동력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국가권력과 국가기구의 양측면을 지닌 한국에서 법질서와 입법정책은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사회관계, 또는 권력관계의 재생산에 물리적·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볼 때, 해방이후 한국의 법질서와 입법정책과정은 한국사회 성격을 규명하는데 필수적인 분석대상이다.

 또한, 자기완결적 재생산구조를 가진 사회에 적용되는 원칙인 토대-상부구조의 조응성이라는 개념 속에서 한국사회의 법질서가 적절하게 한국사회의 토대에 조응하고 있는지, 또는 토대에 적절하게 조응하고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국가에 의한 사회의 재생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어떤 변형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인지는 실증적인 검증을 통해 명확히 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법질서의 기본적인 성격은 해방 후 큰 변화없이 지속되어 왔으므로 특히 1980년 이후 제5공화국의 형성과정에서 법제도의 편의적 양상과 그것들을 바탕으로 행해졌던 폭압적 법현실을 살펴볼 것이다.

 1980년대의 한국사회의 법질서와 입법정책의 기틀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군부의 유혈진압으로 끝난 직후 5월 27일 가결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이하 국보위)와 그해 10월 5공헌법이 발효되고 국회해산 후 국회기능을 대행하기 위해 발족한 국가보위입법회의(이하 입법회의)에서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비정상적인 입법을 대량으로 수행하면서 마련되었다. 군부쿠테타로 실세를 장악한 군부강경파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초헌법적기구인 국보위를 설치」, 제5공화국의 성립을 위한 국정개혁을 실시하였다.

 국보위 구성원 26명 중 현직군인 14명, 전직 군출신이 3명, 나머지 7명(부총리 등)은 꼭 포함되어야하는 당연직이나, 상임위원회에 포함되지도 않는 명목상의 위원으로, 국보위와 상임위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세력의 소위「최고군사회의」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국보위는 명백히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즉, 당시 국회내의 헌법개정특위와 같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으로 행정·사법을 통제하는 기구구성은 위헌이며, 국민주권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또, 계엄법 등을 국보위 설치 근거로 두고 있으나, 계엄상태에서도 국회의 본질적인 기능은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이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의 파괴인 것이다.

 한편, 80년 10월 27일 5공화국 헌법 발효로 기존 정당과 국회가 해산되면서, 이의 기능을 대신할 입법기구설치에 대한 법이 제정되어,「대통령이 임명」한 81명의 의원으로 입법회의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입법기구와 입법자는 민의 대변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며,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것이라면 민주주의 이념에도 반하는 것이다.

 또한 입법회의가 비록 헌법과 법률에 의해 구성·활동하였다고 해도 입법기구로서의 정당성은 부여받지 못한다. 나아가 국민의 최소한의 권리인 입법기구의 구성원을 선출할 권리를 차단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소수(많아야 100명)에게 모든 입법권한을 맡겨야 하는 부당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불가피하게 비상입법기구가 필요한 경우라면 그 입법기구는 시급하게 국회의원 선거법을 마련하여 즉시, 국회의원 선거에 의한 국회가 구성되도록 노력하는데 그 역할을 한정시켰어야 했다.

 입법회의는 166일간 총 189건의 법률안을 처리해 모두 가결시켜 실질적인 제5공화국의 법적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입법회의 존속기간동안은 거의 1년동안 매일 1건 이상의 법률안이 처리·통과된 셈이었고, 특히「제5공화국의 입법작용에 헌신할 결의를 보인」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그와 같은 대량의 법률안을 처리·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법질서의 분석은 입법과정에서 진보적 법의 제정과 악법철폐노력, 재판과정에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새로운 법질서 건설의 노력 등이 사회현실의 객관적 근거하에 과학적으로 제시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