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으로 서기 위하여

 이른 아침엔 제법 찬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들고 비가 한두번씩 내리면서 급격하게 가을이 다가온 듯 하다. 이 가을이 대학생활의 마지막 학기가 될 친구들의 얼굴을 대책없는 초조감으로 덮고 있다. 이른바 취업문제 등 졸업 후 진로문제에 관해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현실감과 그 무게감으로 인한 것이리라.

 몇 년 전, 취직준비 한다는 선배에게『공부보다 미모나 가꿔. 면접에서 떨어진다』는 말을 듣고 농담처럼 웃고 넘겼지만, 그 말은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금에까지 유효한 말인 듯 싶다. 능력보다 성에 의한 구별의 불평등과 불합리는 고용에서뿐 아니라 취업 후의 보수, 대우, 승진 그리고 여직원에 대한 태도에서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가정내에서의 여성의 열등한 지위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에서 기인한다든지, 여성차별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자본의 논리의 관철이라는 말들을 굳이 하지 않아도 우리는 무수히도 부딪히는 성차별과 성상품화와 그 불합리에 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예 여사원을 모집하지 않는 포스터나 모 대학원에서는 교수가 아예 여자를 뽑지 않는다는 말 앞에 이제는 분노하기보다 성차별의 거대한 벽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포기하게 되는 친구들을 본다. 더불어, 여성운동의 산실이랄 수 있는 이화의 학우들이 이러한 모순을 타개해보려는 움직임보다는 그야말로 미모나 가꾸며 4년을 보내고 졸업에 맞닥뜨려서는 그냥 안주하고 포기하며 배부른 고양이처럼 살게 되진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단지 기우일까.

 아무런 운동경험이 없는 여사원들이 회사내에서의 성차별의 불합리를 느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자발적으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여성이 올바로 서기 위한 몸짓은 어느 공간, 어떤 만남에서도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순된 제도 앞에서 나 개인만 어렵게라도 뚫고 들어가 취직이 되고 나면 안심하고 문제를 외면한다든지, 벽 앞에서 단지 속만 끓이고 있을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이러한 성차별이 왜 존재하고 계속해서 재생산되는가, 그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냉철한 과학적 인식과 더불어 그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힘을 합쳐 작은 몸짓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 인간으로 온전히 서지 못한다는 냉혹한 현실 위에 곧추서기 위한 몸짓이다.

 하나의 인간으로 온전히 서기 위하여,「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이성미 (법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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