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엄령」을 보고

제3세계에 살고 있는 한 미국인AID(미국의 국제개발국) 요원의 정치적 납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 영화「계엄령」이 예술마당 금강에서 상영되어 관심을 모았다.

이 영화는 5일~30일 열릴「코스타 가브라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 가운데 한 작품이다.
「고백」「계엄령」「제트」「실종」이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그리스 좌파 지도자의 암살사건을 다룬 코스타 가브라스의 수작「제트」는 외부의 강한 압력으로 취소되었고, 「계엄령」은 문공부의 고발로 필름이 압수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은 관객보다 바닥에 앉거나 서있는 관객이 많아 보일 정도로 상영관 안은 관객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는 주로 권력의 남용과 억압받는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드라마형식으로 동적인 화면, 구성, 빠른 템포로 전개해 나가며 파시즘과 인권유린을 반대하는 휴머니스트적인 신념을 영화 속에 담아낸다.

이런 맥락에서 제작된「계엄령」의 첫 장면은 군인들의 공포(空砲)가 울리면서 우루과이 전 지역에서 시민들에 대한 전면적인 검문․검색이 실시되어 큰 사건이 일어났음을 암시하고 있다.

 

뒤이어 미국인 산토리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의 장례식이 국상으로 치루어 지면서 관객은  영화 속에 몰입한다. 장례식 장면에 산토리가 비행기에서 내려와 우루과이에 첫발을 내딛는 모습이 회상되고, 그가 죽기 일주일전에 납치된 상황이 요일별로 긴박하게 이어진다.

월요일에 산토리가 납치된 이유는 그가 경찰조직에서 고문 및 공작정치를 배후조종해왔다는 사실을 우루과이 민족해방기구 즉 투파마로스가 명백한 증거에 의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요일부터는 투파마로스의 정치적 성명이 이어지면서 산토리의 정체와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그들의 의도가 사회전반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로써 정치권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만 이윽고 금요일, 대통령이 강경대응발표를 하면서 치밀한 수사로 인해 투파마로스의 지도자와 일부요원들이 체포되거나 무차별 사살된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투파마로스는 마지막 정치협상을 재개하려고 하지만 정치권의 강경대응을 미국이 암묵적으로 승인함으로써 협상은 좌절되고 산토리는 민중들의 심판에 의해 처형된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AID요원이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제3세계국민의 눈이 클로즈업되는데, 이는 끊임없는 미국의 제3세계 개입과 국민들의 저항을 암시 한다 .

 

이 작품은 도입부에서부터 흥미를 유발시키며 실제․회상 등 서술상황의 변화가 극적 흥미를 유지시켜주고, 산토리역의 「이브몽땅」의 심리 연기가 매우 돋보였다. 사실주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현실적인 사물의 외형을 객관적으로 재창조하는 기록적 도구로 사용된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해 현장촬영, 자연조명, 롱쇼트(원거리 촬영), 심도촬영 등의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이 사용된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기법이 많이 보이는데 특히 산토리와 투파마로스의 대화사이에 나오는 전기고문 장면은 끔찍할 정도로 리얼하며 고문기술을 수출하는 미국의 비도덕성은 여실히 폭로된다. 또한 대학 내 경찰의 진압장면은 우리의 정치상황과 너무도 흡사하여 관객은 한 나라의 정치상황과 이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미국의 실체가 단지 남의 나라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느낀다.

 

그러나 「계엄령」은 민중의 낙관주의나 전망제시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폭로로 그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70년대 초에 만들어진 이영화의 상영에 제약이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좀 더 열린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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