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내디딜때마다 부딪쳐오는 일그러진 얼굴의 사람들. 남수는 교문에서 전철역까지의 고생스런 관문을 한심해하며 단짝 상미와 걸어가고 있었다.

『얘, 나 오늘 귀걸이 하나 살건데 좀 봐 줘. 응?』

 짜증나는 기분을 더욱 부채질하는 상미의 말이었지만 3년 사귀어 온 정이란 게 뭔지, 그래도 내가 꼭 봐줘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앞섰다.

 상미의 손에 이끌려 리어커 앞에 섰을 때, 평소 액세서리를 가까이하지 않던 남수의 눈에도 각양각색의 귀걸이들은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상미의 귀에 새 귀걸이가 달려지고 계산이 치뤄진 뒤 돌아서려는데,『학생도 귀걸이 하나 골라봐요. 예쁜 것 많잖아?』하는 아주머니의 애원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 얘, 너도 하나 사라. 내가 너한테 어울리는 것 골라줄께』상미까지 맞장구를 쳤다.

 처음에는『귀걸이는 무슨』하는 생각으로 일축해 버렸지만 아주머니와 상미의 양공작전은 기어이 남수를 굴복시키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사 본 5백원짜리 귀걸이. 보라색 T셔츠와 어울리겠다는 상미의 말에 가슴까지 설레여가며 남수는 귀걸이를 단 자신의 모습을 어렵게 상상해 보았다. 집에 돌아온 남수는 얼른 보라색 T셔츠를 꺼내입고는 처음 산 귀걸이를 달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귀걸이를 처음 만지는 그녀의 서툰 손에 의해 귀걸이의 고리 한 짝은 달려보지도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어머나 이런…』남수는 온몸에 맥이 빠져옴을 느꼈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옛말 하나도 그른 게 없다니까』하고 투덜대면서도 남수의 마음은 못내 아쉬웠다.

 다음날 학교로 향하는 남수의 마음은 조금은 긴장된 상태였다. 엄마처럼 마음씨 좋아보이는 아줌마였긴 했지만 상황이 틀린만큼 화를 내지나 않을까. 혹시 안바꿔주면 어쩌나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남수는 교문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교문에 다다랐을 때 이 무슨 변이란 말인가.

 포크레인까지 동원한 노점 철거 작업반원들에 의해 노점상인들이 하나 둘 짐을 꾸리며 밀려나고 있는 것이었다.

 끝까지 버텨보려하던 몸부림마저도 포크레인이 주는 공포분위기에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완장을 두른 철거반원들의 모습은 여유만만하고 자신감에 찬 살인마의 그것이었다.

 그 속에서 남수는 어제의 그 귀걸이 장수 아줌마를 발견해냈다. 허겁지겁 짐을 꾸리고 있는 아줌마의 얼굴엔 상냥하던 미소 대신 짙은 공포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남수는 귀걸이를 얼른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는, 오던 길을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 갔다. 남수의 얼굴이 점점 달아 오르는 것은 비단 귀걸이를 바꾸려고 걸음을 재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찌의 기습을 받고 도망치던 유태인들의 얼굴이 저랬던가. 계엄군이 점령한 공포의 천안문앞 광장을 자전거로 가로지르던 일가족의 창백했던 얼굴도 바로 저런 것이었던가….

『인간도 아니야. 인간도 아니야. 그들을 그런 얼굴로 만든 저들은….』

 남수는 등 뒤로 느껴오는 차가운 현실을 떨쳐 버리고 싶은 듯 더욱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노점상들이 필요로 했던 작은 공간들은 더 이상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남수는 아줌마가 자신에게 귀걸이를 건네 주던 XX제과점 앞 그 곳을 지나면서 말할 수 없이 착잡한 심정이 되어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아직도 그 귀걸이는 주머니 깊숙이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꺼내 보았다. 연보라빛의 링 달린 귀걸이가 퍽이나 예뻤다.『아줌마… 전 정말 이 귀걸이를 달아보고 싶었어요…』남수의 눈은 어느새 흐려져가고 있었다.

 박효정 (신문방송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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