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부터 내 뒤를 누군가가 밟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때는 커피숍에서, 또 어떤 때는 집 근처에서 또는 분주한 시내 거리에서 그것은 뻔뻔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당하는 것은 분명히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가는 일도 그만두었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워졌다.

 어제는 집 안에 도청 장치가 되어있지 않나 해서 대청소를 했다. 자취를 시작할 때 친구들이 가져다 준 자그마한 행운목까지 샅샅이 훑어본 다음에야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주인집 TV에서 보여준 첨단과학 소재들의 응용은 또 다시 나를 불안스럽게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주 세밀한 장치가 방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조심조심 작동될 것 같았다.

 저녁 늦게서야 내가 그들을 감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시간 쯤 감시한 끝에 두 명의 남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한 명은 파란 자켓을 입고 대문 주위를 서성거렸고 나머지 한 명은 검은 양복을 입고 대문과는 반대쪽으로 난 창문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갈때 쯤 창문의 두꺼운 커텐을 치고 불을 껐다. 그리고는 좁은 커텐 틈으로 계쏙 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두 사내가 창문쪽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대문 앞에도 남자들이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았다.

 밤새 두 사내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눈을 떴을 때 시계는 10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감을 느끼며 물을 한 사발 들이켰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커텐을 젖히자 햇빛은 폭발하듯이 두 눈을 강타했다. 가벼운 물방울이 눈 앞에 고였다. 그리고, 황급히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는 푸른빛 상의가 보였다.

 전화벨이 울린 건 바로 그 때였다.

『나야, 세린아. 번역일 끝났니?』

『하영씨? 지금 와 줄 수 있어요?』

『무슨 일이라도…』

『빨리 와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에도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일 저녁까지 번역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고, 요 며칠 사이에 전혀 손대지 못한 원고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영의 존재가 훨씬 힘이 되었다.

 하영은 대학시절 만난 사람이었다. 2학년이 되던 해 제대 후 복학한 그를 만났다. 강의 내용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느냐고 투덜대던 짧은 머리의 멋적은 웃음이 따뜻했다. 졸업 후 취직이 안되어서 바둥거리는 내게 번역 일을 알선해 준 것도 그였다.

 한 달 전에는 하영의 집에 갔었다. 차고와 정원, 그리고 깨끗한 거실에서 그의 부모님은 차갑게 웃고 계셨다. 유리 탁자 위에 놓인 후르츠 칵테일 잔을 보면서, 평생을 손님에게 절하는 것으로 지내시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작은 구멍가게를 하셨다.

 예전엔 번창하기도 했다는 가게가 슈퍼마켓이 동네 어귀에 들어선 다음부터는 아이들의 코묻은 돈으로만 버팅기게 되었다. 그래도 궁색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 날 따라 형형색색의 과일 조각까지도 나를 압박해 들었다. 그리고,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영씨. 문득 그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님이 세린이를 좋아하시진 않지만 곧 좋아하실거야. 그 말과 함께 엉뚱한 생각이 고리를 엮어가기 시작했다. 신원조회. 혹여 그의 부모님이 사람을 사서 내 뒷조사를 한 것은 아닐까. 작은 꼬투리라도 잡힌다면 우리의 만남은 깨어지게 될지도 몰라. 아니다. 이런 불순한 생각이 떠오르다니. 그럼, 무엇때문에 저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는 걸까. 학교다닐 때 전투경찰이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 반응을 일으켰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가깝게 지내던 후배에게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 녀석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아마 이집 저집 피해다니고 있겠지, 혹시 그 녀석 때문일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온갖 생각들이 조금 잠잠해졌다. 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안에서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의 얼굴은 안스러울 정도로 창백해졌다. 일단 그들의 정체를 캐내자고 말하는 그의 뒤를 따라 조심조심 집 밖을 나섰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가게들은 거의 문을 닫고 있었다. 골목을 두 번 꺾어들자, 차츰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나와 하영의 발자국 소리외의 또 다른 구둣발 소리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큰 길로 나가자는 내 말에 하영은 아무 말없이 뚜벅뚜벅 걷기만 했다. 어느새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나타났다. 좁은 길쪽으로 숨어들어가 검은 대문에 바짝 기대어 서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기둥에 가려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듯 푸른 자켓을 입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하영은 재빨리 그 사람의 뒤로 갔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목을 한 팔로 걸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그 사람은 놀라긴 했지만 곧 반격에 들어갔다. 갑자기 하영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무방비로 누워있는 하영과 그 사내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니, 몇 번의 주먹질이 오고갔고 하영은 아까 떨어진 충격때문인지 먼저 지쳐 누워 있었다. 그 사내는 그때까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새파랗게 질려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디밀었다.

『문옥주씨, 경찰입니다. 같이 가시죠.』

『네? 저, 저는 이세린인데요』

『신고받고 왔어요. 한 달 동안, 잠적한 당신을 찾아다녔습니다. 당신을 시위 주동 혐의로 연행하겠습니다』

 그때였다. 또 한 명의 사내가 허겁지겁 골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안 형사. 문옥주가 K대 집회에 나타났대. 빨리 가자구.』

 두 사람은 허둥지둥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두 사람이 꽁무니를 뺀 이후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하영에게로 다가갔다. 얼굴이 온통 부어있는 그를 보여 이제는 내가 그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감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후배 녀석이 생각나서 나의 자유가 부자유스러웠다.

 김은하(국어국문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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