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세계 곳곳에서, 사회도처에서 열광적으로 외쳐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과연 민주에 대한 소망은 한낱 이상에 불과한가? 사회체제의 거대화를 극복하고 과연 민주의 인민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민주가 공허한 낱말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진정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재와 같이 극히 혼란된 상황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플라톤은 그의「공화국」에서「민주주의란 내가 생각하기에 빈자가 승리를 쟁취하여 반대파의 일부를 처형하고 다른 사람들을 추방하여 나머지 시민들에게 시민권과 공직을 공정하게 부여함으로써 실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직들의 대부분은 추첨에 의하여 임명된다. 우선 그들은 자유롭지 않겠는가? 그리고 도시는 해방과 언론의 자유로 충만하게 되지 않겠는가? 또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와같은 방종이 일면을 극도로 진행하여 도덕적인 문란으로 미끄러지게 하고 결국 참주정치에 이른다고 비판하면서 귀족정을 찬성한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국가와 타락된 정치형태를 나누면서 민주주의는 타락된 형태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민주주의를「자유민이 다수이고 그들이 정부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이 민주주의다」라고 하면서 민주주의 하에서는 다수결의 원리와 모든 자유민의 공무참여의 결과, 가난한 대중들이 그 국가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고대사상의 고전적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가「다수의 빈자에 의한 통치」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말 민주주의란 다수의 통치를 의미하는가?
 원래 민주주의란 Democracy, 즉 그리이스어의 demos(인민)와 critos(지배)의 합성어로「인민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어떠한 개념으로써 정의되었든간에 민주주의는 초역사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구체적 삶의 산물이고 사회의 일조직 형태이다. 민주주의가 구체적 인간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역사적 성격과 사회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역사속에서 그 구체성을 획득하여 고찰, 검토되고 전망되어야 한다. 이에 필자는 봉건귀족에 대한 투쟁속에서 인간의 천부적 권리로써 민주주의를 외치고 나선 부르조아 철학자들의 견해를 살피면서 현재 우리의 정치적 삶을 에워싸고 있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그 철학적 배경과 본질을 탐색하고자 한다.

몸말
 철학이나 사상은 그 자체로써 분리되어 고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존재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견해나 사상, 또는 철학은 그 자체 독립적인 파악은 불완전하며 그것은 구체적인 인간 존재로부터, 당시의 역사적 맥락속에서의 사회적 존재로부터 도출되어 파악되어야 한다. 근세철학의 전개는 중세 봉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인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대한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 새로운 생산양식이 봉건제 속에서 발전하여 자본가들은 자기 존재의 반영인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구질서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것이 근세철학의 전개과정이다. 중세 봉건제는 공동체적 질서에 묶여있는 농노를 경제외적인 강제로 구속하여 착취했기 때문에 그들을 묶어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이에 기독교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세계관과 결합하여 신에 의한 세계의 계층적 지배, 그리고 신에 의한 모든 질서와 현상을 포섭하게 되고, 이것이 봉건질서의 이데올로기적 공동체 질서를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영주-농노간의 투쟁속에서 새로운 세계질서의 주역인 부르조아는 성장하고 있었고 이런 계급투쟁은 보편논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유명론(唯名論)의 승리로 귀결된 것은 근대적 주체인, 인격적·자립적인 개인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부르조아 성장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었다.
 봉건제의 해체와 자본제 생산양식의 등장은 생산수단으로부터, 그리고 인격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인(이중적 의미의 자유를 갖는)프롤레타리아의 배태를 가져온다.
 결국 자본제 생산양식은 자기가 갖는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 노동자와, 자본이라는 상품을 갖고 있는 자본가가 시장에서 만나야 하는 생산관계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상품교환관계로 나타나는 존재가 되고 서로 대등하게 시장에서 교환되어져야 하는 인격적으로 자유로운 주체로 되었다. 따라서 자본가는 상품교환의 주체이며 이를 통한 강력한 자본 축적의 욕망을 가진 욕망주체의 인간형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으로써 근대 부르조아적 철학자의 견해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한계를 낳고 있었는가를 살펴보겠다.
 자연법의 관념은 그리이스 말기 이래 서구사상의 전통을 이루어 온 것이었는데, 한 마디로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자연의 세계에는 초월적인 하나의 보편적인 이법이 있고 이것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사고이다.
 그런데 고대의 자연의 이법은 중세에 오면 교회적 질서에 의한 신의 법으로 되고, 이는 다시 근대에 들어오면 자연의 세계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객관적인 이성의 법칙으로 그대로 사회생활의 규범이 되어 개개인의 개인적 권리까지도 보장해주는 것으로 전환된다. 홉스가 바로 이「자연법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룩한다. 홉스는 평등한 권리주체 상호간의 입장의 교환을 상정하고 여기서 자연법을 도출한 것이다.
 홉스는 인간의 권리평등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립적·원초적인 욕구를 가지고 자기보전을 행하려는 인간들이 자기보전을 위해 자기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권리가 자연권이고 이것이 펼쳐지고 있는 상태가 자연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립되고 평등한 욕구 주체들의 행동은 공통의 대상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인간은 인간에 대한 늑대」가 된다.
 이리하여 자연상태는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와「고독하고 빈약하며 혐오스럽고 짐승과 같으며 더우기 단명」인 상태로 전환된다.
 이에 자기보존의 욕구와 모순되지 않으며 정열보다는 더욱 장기적이고 현실적인「이성」의 지시에 따라 자연권을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파기하고 평화적 조약을 체결한다. 이것이 자연법이다. 이는 갈등과 혼란의 자연상태로부터 평화로운 국가상태로의 이행을 말한다.
 이러한 계약, 신약은 항상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되면서, 그들의 행위를 공통의 이익으로 이끌기 위한 공통의 권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리하여 홉스의 국가는「리바이던」즉 절대적이고 무제한적 권력을 가진 절대군주에 의해 통치되는 절대군주제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홉스의 자연법은 너와 나의 위치 전화, 입장의 교환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교환의 계약은 만민평등에 입각하며, 자연인으로서의 권리를 자신이 저버리는 것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원자론적 개인들의 쌍방적인 사회성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계약자의 정의가 사회의 구성원리가 되고 정의의 실현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홉스의 체계는 부르조아적 질서의 시민사회에 있어서 교환계약관계의 존재를 그 전제로 하여 그 위에서 질서와 평화를 얻기 위해 원자적 개인들의 계약을 신탁한 국가의 정치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러므로 홉스의 국가는 계약과 교역에 입각한 시민사회 유통의 질서유지기관으로써 시민국가의 본질을 체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권력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자연권 실현을 위해 자연권의 포기라는 역설적 모순으로 나아간 것은홉스가 본 시민사회와 시민사회인식에 대한 미성숙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성숙은 부르조아적 세계상의 표현은 존 로크에 이어져 자유민주주의의 고전적 원리로써 완성된다.
 로크는 홉스의 자연권과 그것의 실현을 위한 절대군주제에 대한 모순을 지양하고 근대화된, 완전히 자기규제능력까지 갖춘 개인을 설정한다. 즉 그는 자연상태를「평화와 선의와 상호부조와 보존의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 자연인은 단지 욕망을 가진 이기적 인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성을 가진 존재로서 나타난다.
 로크는 자연권을「소유」라고 보았다. 이는 근대 부르조아적 생산관계의 요청에 의해 기존 홉스의 소유근거를 생존의 필요, 관계 내지 관계자의 동의에서 찾던 제한적인 소유론에 대해 반대하고「그의 노동을 투하하는 것」에서, 즉 재산의 획득, 증대의 자유에서 소유를 찾았다.
 따라서 그의 국가, 정치론은 소유론에 근거하여 전개된다. 로크의 정치는 근로의 산물을 보호하고 소유와 교환의 증대로부터 나타나는 무질서를 재제하기 위한 것으로써 표현된다.
 즉 화폐의 발명과 교환, 상업의 발달이 소유의 확대와 축적을 가져오고 이에 따라 분쟁이 발생한다. 이러한 소유를 둘러싼 시민상호간의 분쟁해결기관이 정치사회로서의 시민사회이고 전제 권력에 대항한 자유로운 정부의 확립이었다. 이는 로크의 논적 필미의 전제권력에 대한 반론이고 두 계급 즉 부르조아와 구봉권 귀족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다. 이러한 자연상태에서 사회계약에 의한 사회상태로의 이행이 이루어진다. 즉 자연상태에 이미 자연법이 실현되어 있고 소유권도 그 안에 있지만 교환과 소유의 증대는 분쟁을 가져오고 분쟁이 일어나면 공통의 권위있는 판정자가 없기 때문에 분쟁을 쉽게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명확히 밝혀진 법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 성원의 동의에 있어-사회계약은 자연상태에서도 이미 불가침으로 되어있는 소유권의 확보와 조정, 보다 좋은 안정과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권력이 이루어진다. 로크의 정부는 자유롭다. 그러나 법과 정부의 존재는 상업교환체계의 질서와 소유권의 옹호에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 안에서는 강력한 강제력을 지닌 존재이다. 결국 로크의 국가는 부르조아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부르조아 계급의 국가였던 것이다.

맺는 말
자본제 생산관계 속에서 부르조아적 질서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던 홉스와 로크의 정치론은 결국 교환·상업체계를 옹호하고 소유를 지켜주기 위한 소유자의 국가였고 소유자의 질서였던 것이다. 이들이 본 인간은 시장에서 상품으로 만나는 자본가와 노동자였다. 이들은 교환질서를 세우고 소유의 체계를 세워야 했다. 중세의 비인격적이고 비자립적이며 공동체의 종속물인 개인들이 아니라 자유롭고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자본주의적 인간, 즉 인격적이고 주체적인 근대적 인간이다. 이것은 그들이 역사에서 수행한 진보적 전진이다.
 그러나 홉스에게서나, 로크에게서나 통치질서는 소유자의 질서였고 불평등을 공히 인정하고 있으며 그들이 소수라고 치부하는 것은 동맹자 프롤레타리아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소유자의 참여권이 있는 민주주의였다. 즉 우매하고 비천한 사람(노동자)은 정치질서에서 배제되어야만 했고 이성적이라고 인정되는 사람, 즉 부르조아 질서를 옹호하는 사람만이 권력에 대한 참여의 자유가 주어질 수 있었다. 이들의 철학이 오늘날 부르조아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틀과 그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그들이 제기하고 있는 인간형-고립적이고 개별적이며 주체적인 존재, 상호계약을 행하고 자기보존을 추구하는 욕구적인 존재, 가장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이성적인 존재, 사회조직- 분업과 교환을 자유롭게 전개하여 자기의 욕구를 해결하는 사회, 욕구의 전개를 통한 충돌로부터 자기보존을 추구하기 위하여 맺어야 했던 사회계약, 생명의 보존이 재산의 소유로 전화된 사회, 국가-소유, 교환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강력한 조직을 가진 조직체, 국민 주권의 적법성의 원리적 정당화와 현실적인 심한 괴리, 국민의 직접 통치의 허구성, 저항권의 심한 무력 등등에 대해 결론을 대신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마무리를 짓는다.
 과연 인간은 이성적으로, 가장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인가? 과연 여기서의 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노동으로부터의 소유가 정당하다면 부르조아적 소유는 정당한가?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평등은 과연 무관한가? 사회권력에 의한 권력의 등장은 과연 그러한가? 국가의 본질은 사회질서 유지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국가의 발생이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이행인가? 이러한 관념적인 구상은 과연 현실적인가?

좌미애 외 2명 (정치외교학과 3)


◇참고문헌◇
플라톤,「공화국」,「민주주의 혁명론」, 한울, 1987.
칼 마르크스, 김영민 역,「자본론」, 이론과 실천, 1987.
홉스, 이정식 역,「리바이던」, 한울, 1985.
존 로크, 이극찬 역,「통치론」, 삼성,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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