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제기
 오늘날 우리가 공해로 인하여 당하고 있는 피해의 정도를 간단한 경제적인 수치로 나타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공해현상으로 인한 피해정도가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해문제는 왜, 누가, 어떻게 가져오는가? 그리고 그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정치 및 과학기술 등 사회 각 부분과 전체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공해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즉 공해는 계속하여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소멸되기 보다는 오히려 누적되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피해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하면서 민중 일반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한편 공해 피해의 발생과 심화의 이면에는 그것으로서 이득을 보는 집단과 해를 입는 집단이 나뉘어져 있다. 초과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공해방지를 하지 않는 기업주 및 그를 비호하는 특권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돈으로 공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대다수 민중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피해자로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해문제에 있어서 생성되는「가해자」와「피해자」의 대별은 가해자를「억제」하고 피해자를「구제」한다는 차원에서 법제도상의 대응을 강요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국가기구에 환경문제를 다루는 부서를 설치하고 환경관계법령을 제정함으로써「가해자」와「피해자」간의 분쟁을 통제, 조절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가해자를 억제하고 피해자를「구제」한다는 것이 역전되어 가해자를「구제」하고 피해자들의 반발을「억제」할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환경법률의 모순을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법률이 얼마나 가해자들의 편에 서 있을 수 있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제도가 차지하는 정치경제학적 의의에 대해서는 상술하지 않기도 한다. 다만 자본주의 법률 자체가 지니는 지배자적 본질과 또 한편 긍정적인 측면 양자를 공히 인정하는 한에서 우리나라 환경법률의 모순구조를 지적해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환경법 제도의 변화와 문제점
 우리나라에서 공해문제에 대한 정책적 차원에서의 대응은 1963년「공해방지법」의 재정으로 시작된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정력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시점에서「공해방지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쨌든 당시의 법률 제정은 법 자체가 지니고 있는 형식성과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정정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다만 껍질만 있었을 뿐 시행령조차 마련되지 않았고 대책기구 하나 없었다는 것은 실질적인 공해대책은 거의 부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후 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정책들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공해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것으로 지극히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결국 1972년에 가서야 비로소 공해방지계획이 최초로 마련되었으나 그것도 부분적인 오염도 측정 및 공해로 인한 손해배상에 있어서 분쟁조정이 당시 공해대책의 전부였다. 이 결과 성장우선정책에 밀려 공해의 확산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즉 70년대 초반에는 공단주변에서 문제가 되었던 공해문제가 점차 도시주민의 일상적인 생활에까지 피해를 업히기 시작하여 중반에는 국부적인 현상에서 차츰 지역이 일반화되고 피해내용이 다양화된다. 이 시기 공해의 확산에는 경제규모의 확대와 함께 신공업지역의 형성이 주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 공해피해로 민중의 생존권 요구가 격화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환경정책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나 유례없는 군사독재장기집권의 귀결로서 상하수도시설 등 도시기초시설의 미비, 공해방지기술에 대한 무관심, 재정 및 행정력의 위약성 등이 크게 노정되어 대책은 공해 발생 후 응급조치에 그치는 저급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해문제는 더욱 심화되어 피해주민 생존권투쟁이 빈발하는가 하면 전 국토가 죽음의 그림자로 덮이게 되었다.
 70년대와 비교해볼 때 제5공화국의 환경정책은 형식적인 틀에서만 본다면 괄목할만한 수준이었다. 제5공화국의 주체들은 가장 먼저 헌법33조에 국민이 인간다운 환경을 향유할 수 있다고 하는「환경권」을 새로이 설정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환경보전법의 개정을 통해「환경영향평가」의 실시조항과「공해배출부과금제」의 실시조항을 삽입하는 등 법내용상의 확충을 기했다.
 또 환경보전 전담기관인 환경청과 자원재생공사의 설립 및 국립환경연구소의 체제개편이 이루어졌다.
 이제 제6공화국은 수질오염파동을 계기로 현행 환경보전법을 개정하려는 듯하다. 보도에 의하면「환경정착기본법」,「환경오염피해심사 및 분쟁조정법」등 5개법률로 기존의 환경보전법을 대체할 생각인 것 같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적어도 60년대 이후 법제도상의 대응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법제도의 형식적 확장에 있다기 보다는 다른 곳에 있다. 법제도의 보완이 형식적으로나마 그 기능을 발휘했다면 공해문제의 해결 전망이 더욱 밝아졌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해로 인한 피해는 더욱 악화일로에 있고 그 해결의 전망이 어두워가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환경정책, 좀 더 구체적으로는 환경법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다수 위한 환경법 절실
 공해문제의 해결은 사후 미온적인 대책을 세움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간의 공해문제는 단순히 환경정책과 법률제도상의 미비점에도 원인이 있으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계 및 소수독점재벌을 위시한 기업위주의 제반 경제정책에 기인한 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여타 기본권들이 실질적으로는 거의 묵살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환경권」도 단지 형식적인 구호나 민중의 눈을 가리는 기반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환경보전법상 실시하도록 되어있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민중의 참여를 배제하도록 고안되어 있어 제도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은 좋은 예일 것이다.
 실제로 이제까지의 환경영향평가보고서들은 현지 피해주민들에게 불리한 형태로 작성됨으로써 환경오염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민중을 탄압하는 수단으로서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편 환경업무의 중요성과 절박함에 부응하지 못하는 환경청과 관련 정부기관들의 문제점도 반드시 지적되어야 한다. 환경청은 80년 설립 이후 퇴행적이고 기만적인 행정조치를 수없이 저질러 왔다.
 뇌물을 받고 폐수를 불법방류케하는가 하면 조사반이 미리 기업에 통보하고 조사하러 가는 기형적인 행정이 존재하는 한, 법제도상의 보완은 그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새로이 개정될 현행 환경법이 어떠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를 원칙적인 수준에서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맺도록 하겠다.
 첫째, 정부가 지난 5월에 스스로 백지화했던「공해 건강피해보상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환경오염을 일으킨 자가 오염된 환경의 회복과 피해구제 등에 소요되는 경비를 부담케하고 피해자의 건강피해에 대해 사회적으로 책임지게끔 하려면 이 법이 반드시 누락되어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환경분쟁을 심사하고 조정하는 기관의 구성원들을 친정부적인 과학기술자 등으로만 구성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받는 민중들은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의해 좌절감을 맛보기 일쑤였다.
 따라서 과학기술적인 인과관계를 가리는 일에 있어서도 법이론상의 개연성이론을 도입하는 한편 주민의 편에선 과학기술자들의 참여를 봉쇄해서는 안된다.
 법률이 만인을 자유케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오직 생산하며 투쟁하는 민중의 실천적 운동만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안병옥 (공해추방운동연합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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