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말은 안기부가…

 우리는 헌법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은 그야말로「그림의 떡」이다. 이러한 사례는 특히 애국민주인사에게 더욱 두드러진다. 신체의 자유를 위해 보장된 묵비권은 잠고문·물고문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고, 변호인 접견도 고문흔적이 없어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주어지는 권리이다.

 그뿐인가! 이제 통신의 자유도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전화도 세사람이 함께 해야한다. 전화를 건 사람과 받는 사람은 대화를 주고 받고, 안기부 요원은 그 내용을 엿듣고 녹음하는 것이다. 결국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 순박한 시대는 가고 이젠 낮말이고 밤말이고 모조리 안기부가 듣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고 가는 편지도 먼저 뜯어볼 수 있는 안기부의 막강한 통신점령력을 생각한다면 전화도청은 별로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사실 재야단체·노동단체·학생운동단체까지 뻗쳐 있는 안기부의 당나귀 귀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공개된 비밀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를 열흘 앞둔 안기부의 블랙박스 일시철거지시는 정권의 부도덕성을 전국민앞에 스스로 폭로해버린 셈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야비한 탄압의 방법을 모두 보여준 정부. 그렇기에 이젠 왠만한 충격적 사실로는 놀라지도 않는 우리이지만 그래도 이번 사건에서 받은 기분나쁜 충격을 무마시키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런 방법은 작년 국정원 감사 때『전화국마다 설치돼 있는 블랙박스가 뭐냐?』라는 야당의원의 질문에 대해『아닙니다. 그런일이…』라고 강하게 도리질을 치던 전기통신공사사장의 답변에 충분한 변명이 되지 못할 것이다. 또 그간 열심히 도청해주었다는 이유로 전화국원에게 표창까지 내린 안기부의 장한 업적에 대한 해명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버린 자식(?) 정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청방지라는 명목으로 도청을 합법화하는 특별법을 만들려는 야당의 태도에도 분노를 느낀다.

 국보법혐의자 기타 범죄혐의자의 도청을 가능케하는 법률을 놓고 어떻게「통신비밀을 위한 특별법」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 그들의 상식이 의심스럽다.

 이젠 그 어느 나라의 헌법보다도 가장 이상적이라는 우리의 헌법 좀 지키며 살고 싶다.「제18조(통신의 비밀) 모든 국민을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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