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하느님! 제발!』

 평소 유물론자를 자청하던 한 친구가 과룸 재산 중 가장 무거운 책꽂이를 옮기며 지른 소리였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마디씩 농담을 던졌을 다른 친구들도 얼굴이 새빨개진 채 오직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그리고 저려오는 손가락이 되도록 안아프기를 바라며 이를 악물 뿐이었다. 유난히도 초여름 햇살이 뜨거웠던 토요일 오후, 학생관 4층에서 학관 지하까지의 지옥같던 내리막길에서였다.

 끙끙거리며 내려와 새 과룸에 책꽂이를 옮기고, 우리는 더러운 바닥에 통나무처럼 내려 앉았다. 아직도 옮길 물건은 많았다. 학교에서 새로 만들어준 이상하게 무거운 철제 휴지통, 시끄럽다고 욕깨나 먹었던 진달래함성제 으뜸상인 기타, 그리고 버리기 아까워 쌓아두었던 각종 설문지, 유인물, 전공노트, 복사물 두 박스 등.

 모두 멍하니 앉아 저린 손가락을 주무르고 있을 때 한 명이 역시 학생장답게 벌떡 일어났다.

『다시 가서 옮기자』

 과룸 옮기기로 공고한 날, 적어도 20명은 오겠지 했던 기대가 철저히 무너져 내려 허탈에 빠졌던 그였기에 우리 5명은 순순히 일어났다.

 무얼 과룸을 5명이 옮기느냐, 관두고 신림부페가서 순대나 먹자던 다른과 친구 두 명을 눈을 부라려 내쫓고, 수많은 쓰레기에 투덜거리시는 용원 아줌마를 뒤로한채 우리는 오후5시경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

 새 과룸은 매우 넓었다. 하지만 학관지하라는 위치때문에 여름 장마때는 물이 무릎까지 찬다고 했다. 창문은 오래되어 열기 힘들고, 후문의 차소리가 무던히도 시끄럽다고 한다. 심이저 귀신까지 나온다고 어떤과 친구는 으름장을 놓았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희게 색칠한 벽과 넓은 공간에 압도된 우리과의 얼마 안되는 허름한 재산들이 한없이 왜소해 보였다.

 퀘퀘한 냄새와 기분나쁜 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밑도끝도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 황량한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할까. 그리고 한번도 과룸에 얼굴을 안보이는 과친구가 과반수인 이 공간은 무엇때문에 과룸인가. 또 학회원·비학회원으로 분리감만 조장하는 이 공간은 왜 필요한가.

 과룸을 새로 옮긴만큼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항시 친구들이 넘치는 공간으로, 새로움을 창출하는 공간으로, 음모가들의 세미나 장소가 아닌 너와 내가 함께 우리를 책임지는 공간으로 바꿔야한다.

 결국 우리는 새 과룸의 문을 나서며 희미하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도서관학과의 새 쇼파도, 영문과의 근사한 시계도, 철학과의 빨간 긴 의자도 우린 더 이상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우리 과룸에도 침대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몇 년 후 과룸 이삿날에는 현재의 6명이 아닌 우리과 240명 거의 모두가 이삿짐을 나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홍진아 (신문방송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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