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900호 발간 총장 격려사

 이대학보가 지령 900호를 맞게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돌이켜보면 6·25 전쟁 직후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탄생한 학보는 35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질적으로난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이제는 원숙한 장년기를 맞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학보는 모든 이화인들에게 교내외의 소식들을 전달해주고, 장래의 희망과 비젼을 제시해주며, 또 이화의 지성이 살아 움직이는 문화의 공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의 좌절기와 60년대의 자아 모색, 그리고 70-80년대의 성장과 변혁으로 대변되는 급변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우리의 목표를 정립하고 이를 향해 매진해 나아가는 이화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기록하는 산증인이 되어 왔습니다.

 더우기 우리 학보는 대학인으로서 개혁정신을 십분 발휘하여 기성의 신문들이 금기시하던 가로쓰기, 한글 전용, 신문 체제 개혁 등을 과감히 시도하여 한국 언론사에 지대한 공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실로 1954년 2월 12일자 창간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대학보는『학문과 예술도 위축과 침체를 지양하고 쇄신과 부흥의 일로를 매진할 호기』에 태어나 모든 학도가『전공 분야에서 지적·합리적 연구』를 통해『민족 문화 재건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선배들이 남긴 이같이 영광된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과 이 속에서 학보가 수행해야 할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지 깊은 자기 성찰을 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고 하겠습니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며 따라서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이 그 역할이 간으할 것입니다. 이대학보의 사회란 일차적으로 우리 이화 전체이며 그 다음이 한국사회, 그리고 세계일 것입니다. 따라서 학보는 이화 공동체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함으로써 교수, 직원, 학생 등 모든 이화인이 찾는 신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들, 각 전공분야의 전문적 정보와 지식, 정치·경제문제 등에 대한 통찰력있는 분석을 통한 사회에 대한 관심의 제고, 그리고 생활의 여유를 위해 모두가 찾고 가까이 하는 학보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학보는 또 대학인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곳이어야 합니다. 대학인의 정신이란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사고를 통한 분석과 비판 능력을 갖춘 지성일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탐구라는 대학의 기본목표에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관점에서는 진리의 사회적 실천 바로 그것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언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명이자 역할일 것입니다. 학보는 이같이 대학의 정신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에서의 언론활동은 대학생활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성의 모든 이론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활동이 새로운 도그마를 창출하고 여기에 얽매이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연찬의 과정에 있는 학보로서는 이점에 특히 유의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대학보는 과거와 다름없이 앞으로도 이화라는 대학공동체를 선도하는 미래지향적인 역할을 담당해주길 당부하는 바입니다. 한국과 같이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사회에서는 모든 가치와 인간관계가 동시에 변모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지성은 이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사회적 사명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재정립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공동체 전체의 합의위에서만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대학보는 전문분야의 학자들이 망라되어 있는 이화의 자산을 십분 활용하고, 또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수행해온 이화의 구체적 역사적 역할을 함께 고려하면서 앞으로 이화가 나아갈 방향과 대학에서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과 가치관의 창출을 위해 모든 대학인의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개진되고 토론되는 대학 언론으로서의 선도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1989년 9월 25일

총장 정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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