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다.

 추석이 지나더니 이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에어컨도 없고 서늘한 뜰도 가지지 못한 서민들에게 그다지도 고통을 주던 폭염이 드디어 끝났다. 빗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천막집에서, 또는 폭우에 떠 밀려가기를 가까스로 면한 구석방에서 마음 졸이고 밤새우던 악몽도 당분간은 간 셈이다. 이미 우리집에서는 베란다에 심은 돔부콩으로 추석날 아침밥을 지어 먹기까지 했으니 가을은 이미 왔다.

 나는 각별히 여름철에 가까운 사람들과 사별했다. 계절은 가고 또 올 것이 틀림없지만 한 번 세상 떠난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는 다시 오지 않는다. 대학교 이학년 여름, 방학하자마자 시골집에 내려간 나는 임종 직전의 할머니를 보았다. 외삼촌이 안 계셨기 때문에 우리집에 와 계셨고 그분의 유일한 꿈은 서울에 가서 외손자·손녀들의 밥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토록 소박한 꿈을 안고 계셨던 외할머니는 서울생활을 시작도 못해 보시고 서울 유학생인 외손녀 앞에서 숨을 거두셨다.

 나의「슬픈 7월」은 10년 후에 또 일어났다. 건강했던 셋째동생이 군대에 간 후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몸을 씻기 위해 개울에 뛰어들었다가, 장마 후 불은 깊은 물 속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줌의 재가 되어 국립묘지에 묻혔다. 이 사건은 집안의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4년 후 동생 제삿날, 그날은 유난히 더웠는데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입원하셨고 사흘 후 병원에서 세상을 뜨셨다.

 그 후 10여년 후 이번에는 외국에 살고 있던 친구가 역시 7월에 병사했다. 그와는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서 언젠가는 꼭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점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일도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부질없는 계획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한 나는 내 자신의 종말도 여름에 올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진다. 그리고 여름이 가면「휴우」하고 한숨을 쉬는 비밀스러운 버릇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커다란 꿈이나 계획이 없다. 이것은 대학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나이가 한참 든 후 하기 시작했고 그것도「직업」으로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관심은 한가지 분야에서 신실하게 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성격이나 능력에 맞추어 연구분야를 택했을 뿐이고, 조교·연구원·강사 등의 직업을 계속하다가 뒤늦게 대학교직에 오게 된 것이다.

 지금 나는 나의 삶을 뒤돌아 볼 나이도 아니고 그럴 시간 여유도 없다. 강의, 연구 및 학생지도로 꽉 차 있는 생활이며, 이 일로 매진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바쁜 생활속에서도 가을이 오면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했으면서도 나는 죽음을 비극으로만 생각지는 않는다.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생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계의 법칙이며 만일 인간이 과학으로 죽음 자체를 면하고자 할 때 인간종의 종말을 재촉할 뿐일 것이다.

 단지 희망하기는, 죽음에 대한 개인적 대비가 가능하도록 하는 텔레파시를 어딘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된다면, 예컨데, 나는 외할머니께서는 눈감으시기 직전이라도 서울생활의 무료함을 말씀드릴 수 있었을 것이고, 또 아버지께는 그 해에 내가 계획하고 있던 성지순례의 계획을 말씀드려서 장로이셨던 그분의 영성을 즐겁게 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젊은 시절에 겪던 이데올로기와 사랑, 조국과 학문 등에 관해 늙으막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친구들과의 노후정담을 그들이 세상뜨기 전 중년에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이 아닐까?

 죽음의 텔레파시까지는 어렵다고 치자. 자기의 마지막을 대강 알 수 있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생은 끝마칠 수 있음을 소망한다면, 즉 적어도 갑작스런 죽음이 몰고 오는 허무를 달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 그것도 죽음에 대한 거역으로서 노여움을 받게 될까?

 김주숙
62년 사회학과 졸업.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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