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꼼히 열려진 문으로 초롱초롱한 눈을 들이밀고 있는 아이, 그리고 방안에서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내를 주먹과 발길질로 마구 때리고 있다」

 23일~25일동안「그림마당 민」에서 상영된 영화「굴레를 벗고서」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아내구타문제를 중심으로 한 성폭력문제와 직장에서의 성차별문제를 상담해온「여성의 전화」에서 지난 6년간의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상매체가 갖고 있는 좋은 조건, 즉 모든 계층의 여성들에게 폭력문제의 현실과 심각성을 쉽게 알릴 수 있고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여성의 전화 공동대표 노영희씨는 16mm영화로 제작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강제로 강간을 당한 후 결혼한 주인공은 7년동안 끊임없는 남편의 구타로 불행하게 살고 있다.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계속되는 구타는 그녀의 정신 생활의 파괴는 물론 철저하게 육체적으로도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경제적 자립을 시도하는 주인공의 끈질긴 노력들이 이 영화에서 보여지고 있다.

 특히, 영화 중반, 광주항쟁에서 저질러진 군인들의 무차별 폭력장면들이 남편의 구타장면과 겹쳐지고 있는 부분이 눈길을 끌고 있다. TV에서 방영된 광중항쟁장면들을 영화속에 삽입하므로써, 한 개인, 가정의 폭력이 결코 사회속의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무리하게 중간설명없이 급작스럽게 연결시키려는 단절감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폭력의 양상 즉, 군사문화가 판을 치고 힘을 통한 강압적 지배양상이 이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라면, 그것이 일개인에게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대한 제작자의 노력이 눈에 뜨인다.

 또, 그러한 폭력의 현장을 목격한 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모를 때리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폭력들을 조용하지만 섬찟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도 눈에 뜨인다.

 이 영화를 감독한 이현승씨(그는「안개기둥」,「칠수와 만수」등에서 조감독을 맡았다)의 솔직한 노력과, 구타당하는 아내의 무기력하고 무표정한 모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주인공 김부선의 모습도 돋보이는 영화였다.

 여성의 전화에서는 이 영화를 비디오테잎으로 담아 2만원씩에 판매할 예정인데, 남성의 해방을 위하여도 여성의 해방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의 틀을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영화상영 후 이루어진 토론과정에서 노영희씨는 강조했다.

 이 영화는 22일부터 28일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설정된「여성주간」의 각종 여성문제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들 중의 하나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주최하고 24개 단체들이 참가해 각종 여성관련행사를 집중적으로 벌이는 이번 89한국여성대회는「평등한 삶의 새날을 위하여」라는 큰 주제 아래 열리고 있다. 매년 9월말을 여성주간으로 정해 여성문제를 사회문제화하는 중요한 계기로 만들고자 하는 것.

 한편, 같은 장소에서 지난 22일부터 제3회「여성과 현실전」이 열리고 있다.

 차별과 억압의 사회구조 아래 있는 이 땅의 여성들이 건강하고 평등한 삶을 지향하는 모습들을 그림에 담아내려는 여성미술인들의 의지가 한 곳에 모아진 것이다.

 피의자조사실에서 경찰에 의해 강간당한 후 그 사실을 용감하게 고발하고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인순씨의 상황, 여성농민·노동자·철거민 등의 삶의 모습등이 솔직하게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그림들에 대해 전시회장을 찾은 한 중년부인은「무섭다」,「꼭, 이런 것들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나」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전시회를 주최하는 김인순씨(민족미술협의회의 여성미술연구회장)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한 반응은 아름다움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잘못된 현실을 폭로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변혁시키는 의지에 있는 것입니다』라며 여성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위해서는 여성이 처한 현실과 그 억압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이번 전시회의 내용처럼 소외된 여성의 삶의 현장은 고발하고(전성숙 작「농민」등), 그것의 극복방법을 제시하고자 하는(구선회 작「우리 이제 물러서지 않아요」, 그림패 둥지의「단결투쟁도」)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을 공부한 작가들이 안정된 계층이기에 자칫 관념적인 이해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표현되는 그림과 작가의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의 공허함과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번 전시회도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계속된 토론작업 등을 거치면서 진행되었다.

 제1회「여성과 현실전」당시「평등한 삶을 위하여」라는 대형 걸개 그림이 경찰에 압수되는 등의 수난도 겪고 있는데. 억압과 모순의 인식과 타파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행사들을 통한 문제인식의 확산작업이 더욱 더 필요함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89한국여성대회의 여성주간 나머지 행사들은 다음과 같다.

▲여성과 현실전: 9월22일~28일, 그림마당「민」(민미협여성미술연구회)

▲여성해방 대동굿: 9월30일 오후3시, 성균관대학교 수선관 (강당)

▲어머니 큰 잔치: 10월1일 오후1시, 홍익대체육관 (기독여민회, 지역탁아소연합회, 공부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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