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인기를 결정하는 것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재가 가지는 현실감이다. 최근 남성위주의 사회질서에서 여성들이 공유하는 상대적인 피해의식을 큰 주제로, 각각의 문제들을 조명하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며칠 전 그 중「맞벌이 부부」편을 볼 기회가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가정에서는 남편과 시어머니 심지어는 자식의 몰이해와 원망의 대상이 되고, 직장에서는 기혼녀라는 이유로 동료의 근거없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과 부인을 경제적 도구로만 여기는 남편과의 갈등을 적나라히 보여주고 있었다.

 평소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언제나 남자의 사랑과 증오에 의해 규정되는 정체성 부족의 존재였기 때문에서인지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여주인공의 의지가 새삼 든든했다.

 조사에 따르면 20대 한국 남자들의 88%가 맞벌이를 원하고 있으며, 원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교사, 약사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남성들도 이제는 여성이 사회의 생산노동에서 소외된 채 가정에만 안주하여 남편만을 의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셈이다. 즉, 현대판 현모양처상은 돈도 잘 벌고 살림도 잘 하는 수퍼우먼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동시에 완벽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표를 냈다는 부인에 대해 끔찍한 부담감과 환멸을 느끼는 남편이면서도, 정작 부인이 직장에 다닐때는 조금의 짐도 덜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남성의 지배와 독선을 발휘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드라마가 지닌 현실적 공감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즉,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파헤쳐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데는 어느정도 성공한듯이 보이나 여성이 고통받는 이유를 단순히 이 사회의 뿌리 깊이 박혀있는 남녀차별의 편견때문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뿌리 깊은 문제들이 어떤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나타나는지를 얘기해 주었어야 했다.

 한국사회는 자본제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며, 자본제 사회에서는 일하는 여성만이 여성문제의 올바른 해결의 전망을 가질 수 있다. 드라마는 계급적·성적 모순의 최전선에 있는 셈인 한국여성들이 왜 일하지 않으면 안되고, 어째서 가정에 돌아가서도 모든 일은 여성이 부담해야 하는지를 밝혀내지 못한 채 남성에 대한 적개심만 표출하면서 끝나버렸다. 그러나 주인공의 마지막 말은 우리를 공감시키기에 충분하다. 『나만이라도 지지 않을꺼야. 그래야만 내 딸 내 손녀들이 이 부당한 거미줄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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