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의 미소
소피마르소의 미소
  • 이근영
  • 승인 198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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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남들은 천고마비니, 독서니 하면서 이 계절에 대한 식상한 설을 풀어놓기도 하지만 여성들(이화인을 포함해서)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을 화장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가을 날씨에 거칠어질 피부관리법,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는 색조화장이 심심찮게 화제가 되는 걸 보면 더욱 그러한다. 그래서인지 가을철이면 각종 화장품회사의 광고경쟁이 가열된다. 그 중 특히 최근에 물의를 빚는 것은 불란서 여배우 소피마르소의 등장이다.

 호수에서의 환상적인 모습, 찰찰한 햇빛을 받으며 흘리는 요염한 미소. 이런 소피마르소가 화장품 좀 팔아달라고 속살거리면 아마도 많은 여성들에겐 미적욕구와 구매충동이 한꺼번에 방망이질 칠른지도 모른다. 게다가 뭇남성들과 청소년들은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TV 앞에서 서성거린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지난 여름 홍콩배우 주윤발, 왕조현이 음료수 선전을 한 뒤 이런 유행은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외국인 모델에게는 개런티를 더 많이 준다고 한다. 특히 미국 가던 길에 잠깐 들러 속도전으로 CF를 찍은 소피에게 지불한 돈은 국내 최고모델의 그것에 몇갑절이라 하니 과연 사대주의의 무분별한 발동이 아닐 수 없다.

 서구취향의 국민심리를 악이용해 서구지향적 미의식과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그리고 국민이 피땀흘려 모은 외화를 고스란히 외국에 갖다 바친 광고주들은 「한르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가 반성해볼 일이다.

 또한 방송사도 정신을 차려야 할 듯 하다. 몇 주 전 KBS 프로그램 「자니윤쇼」에 소피 마르소가 나왔을 때 한 진행자는 미사여구를 총동원해 그녀를 찬미하면서 볼에 입을 맞추고는 온갖 「방정」을 떨어 지켜보는 이를 떨떠름하게 했다. 그의「철없는」행동이야말로 민족자존심을 실추시킨 것은 물론이려니와 서구우월주의에 젖어있는 대중매체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겠는가?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이 가을에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소피의 미소가 자신을 여왕처럼 받드는 한국인들에 대한 비웃음임을 깨달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