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반지
졸업반지
  • 이대학보
  • 승인 198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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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일을 대충 끝내고 볕 잘 드는 마루에 앉아 마악 아침신문을 펴드는 참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저어,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S여고 나오셨죠? S여고 동창 명부에 보니 이혜숙씨가 셋이나 되어서요. 혹시 K대 나온 이혜숙씨 아니세요?

 아녜요. 전 이대 나온 이혜숙이에요.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으려니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이들이 엄마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에요. 하고 놀려댈만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그 여자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어 대답한 「이대 나온 이혜숙」이란 한 마디가 삽상한 가을 꽃 향기처럼 계속 귓전을 맴돌며 가슴을 설레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보려던 신문도 접어 놓고「이대 나온 이혜숙」을 되뇌어 보니 벌써 아득한 이십년 전의 추억이 요술장이 소매 속에서 풀려 나오는 오색끈처럼 줄줄이 떠오른다.

 입학식 날엔 비가 내렸다. 거창한 돌계단 위에 우뚝 솟은 대강당 정문 앞에서 같이 입학한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서로 찾아다니며 교복을 벗은 모습이 조금 어색하면서도 신기해 웃기도 하면서 새로 시작할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로 가슴을 부풀렸었지. 그래서 난생 처음 신어보는 스타킹에 빗물이 튀는 것쯤은 개의치도 않았었다.

 그리고 곧 메이 데이 행사가 있었지. 그때 우리들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초록색 반바지를 입고 맨다리를 내 놓은 채 운동장 가에 빙 둘러 서서 인간 벽이 되어야만 했었다. 이유는 아름다운 우리들의 여왕(메이 퀸)을 사진 찍기 위해 기자나 일반인들이 마구 운동장으로 난입하는 걸 막기 위해서. 아 그땐 참 김이 팍 새었었지.

 이제 제복의 여학생이 아닌 지성적이고 발랄한 여대생임을 뽐내고 싶었던 우리들에게 똑같은 흰 셔츠 초록 바지를 입혀 축제의 들러리를 삼다니. 메이데이 행사가 메이 퀸의 대관식으로 절정을 이루는 것은 대학의 학구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근래에는 여왕을 뽑는 일이 없어졌다니 역시 후배들이 선배들보다 똑똑한거야.

 처음 입학해서는 축제다 미팅이다 하면서 들뜬 기분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던 우리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자신의 내부를 가꾸는데 충실해졌고 사계절의 변화를 골고루 보여주는 아름다운 캠퍼스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었지. 봄이면 여기저기 푸른 실을 늘어뜨린 수양버들 아래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허물없이 웃고 떠들던 즐거움.

 가을날 도서관에서 저녁늦도록 책을 읽다가 낙엽 뒹구는 석양의 휴웃길을 걸어 내려 올 때의 가슴 뿌듯함은 그때 이후로는 다시 느껴볼 수 없었다. 학생회 임원으로서 학내 행사 준비를 마치고 밤늦게 임원들과 함께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가로등 불빛에 비쳐 미역다발인양 일렁거리는, 바다밑처럼 고요한 캠퍼스를 빠져나올때의 잔잔한 흥분도 그러다 문득 안방 문갑 속에 고이 모셔둔 졸업반지 생각이 나서 찾아내 끼어본다.

 처음엔 가운데손가락을 겨냥하여 만들었던 반지가 이젠 새끼손가락에나 여유있게 들어간다. 어이없어 보고 있는데 또 전화벨소리, 이번엔 나보다 연세가 한참 위인 시누님이다.

 둘째 녀석이 그간 사귀던 아가씨를 오늘 집에 데려와 선을 보이겠다네. 그런데 그 아가씨가 이대를 나왔다고 선배인 자네더러 후배선을 꼭 좀 봐달라니 바쁘더라도 저녁에 좀 오게.

 그렇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도 어느새 조카며느리 선을 볼 나이가 되었구나. 그런데 후배라는 말만 듣고도 벌써 정이 드는 느낌이니 내가 과연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지 몰라. 나는 굵어진 손가락이 마치 내 삶이 그동안 그만치 살쪘다는 증거라도 되는 양 오래오래 졸업반지 낀 손을 들여다 보았다.

*작가 이혜숙
1967년 국문과 입학
1982년「여성동아」장편소설에「노을이 타는 나무」당선.
「매운바람 부는 날」등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