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그 해 여름
  • 이대학보
  • 승인 200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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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생명·05)

기말고사와 함께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대학생에게 방학은 학기를 버티는 힘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방학 동안 살이 찌거나 영어실력이 느는 등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룬다. 나는 WISE 여성과학자 인터뷰(www.wise.or.kr)를 계기로 2006년 여름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 학예사로 인턴 활동을 했다. 그 때의 생활을 잠시 소개해 볼까 한다.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 박물관이다. 다소 비싼 입장료임에도 국가지원이 없어 입장료 수익으로는 박물관 유지비의 10%도 낼 수 없다. 하루 몇 번씩 3층이나 되는 전시실을 목이 찢어지고 다리가 부서지도록 반복해 걸으면서 개인의 힘으로 그렇게 많은 전시물을 소장해 왔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부자들이 장식으로 하나씩 달고 다니는 미술관, 박물관이 아니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참된 실천이었다.

박물관 설립자 故 이기석 박사는 평생 환자를 위해 봉사, 헌신하는 심의셨다. 마음을 다하는 의술로 병원이 유명해지고 돈이 많이 모였고 40여 년에 걸친 준비 끝에 자연사 박물관을 짓겠다는 그의 숙원이 실천되었다. 현재는 이기석 박사의 며느리인 조한희(이대 지구과학교육 73)관장이 박물관을 맡고 있다.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은 모퉁이를 돌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박물관이다. 사람의 마음은 화장으로도 가릴 수가 없다. 30만점이나 되는 전시물, 그보다 더 많은 표정. 박물관을 찾아온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쓸모없는 놈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치고 외롭고 짜증도 났다. 박물관에서 공휴일은 空休日이었다. 학예실 창문은 닫혀 있어도 계곡물 흐르는 소리는 막지 못했다. 반복되는 전시 관람안내를 마치고 돌아와 다리를 주무르며 들었던 소리다. 자연환경이 아름다우면 마음속은 더 복잡해진다고 시시각각 비장하게 변하는 하늘의 색을 바라볼 때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서글픔을 동반했다. 예기치 않은 말의 칼날에 어린 마음은 여러 번 베어졌다. 죽을 만치 힘든 일, 마음이 상처받는 일이 끝난 후 값만 비싼 밥 한 끼로 위로받아야 하는 서글픔이었다. 미소 뒤에 감춰진 피로를 누군들 모를까? 바쁜 사람의 공허한 눈빛을 주기 싫어 관람객의 눈을 보지 않고 말한 적도 있었다. 서러움과 기쁨이 묘하게 공존하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상황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명제가 손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만남이 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굵직굵직한 분들을 만나 뵐수록 그 분들은 확실히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 실천이다. 그 실천은 노곤한 몸과 뿌듯한 마음이 말해준다. 착한 것이 선인가, 독한 것이 선인가. 어디에나 적용되는 결론은 최선最善을 행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곳에서 임무를 갖게 되겠지만 내가 했던 사회 첫 경험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06년의 여름방학은 그렇게 해서 어느 때보다도 농밀한 방학이 되었다. 시험공부에 지치면 저마다 여름방학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