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 입문 후 1년…장상 전 총장 인터뷰

사진 : 주은진 기자
“중학교 2학년 이래 나는 줄곧 장학금의 혜택을 받으며 공부 했어요.  어머니는 종종 ‘너는 내가 아니라 사회가 키웠으니 크면 사회를 위해 일하라’고 하시던 말씀을 기억해요. 정치는 우리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택한 길이예요”

지난 해 5.31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시작으로 민주당 당대표·통합과 창조포럼의 대표 등 정치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장상 대표.

우리 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후 기독교 학과 교수·11대 총장 역임 등 이화와 반세기를 함께 한 장 상대표의 정계입문은 사실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 출발했다. 2002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석연치 않게 낙마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장상 대표가 정치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계에 입문하고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한 번 삶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장상 대표는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정치영역에 들어 온 이유는 내가 살아온 삶의 원칙을 정치에서도 실천해 보기 위함”이라며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 동안은 나 자신을 비우고 사회를 위해서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짧은 인생,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는 것이 삶의 지론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치도 하고 싶은 것이었나요.

“처음부터 정치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예요. 나는 이대 교수가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고, 교수가 되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신나고 즐거웠어요. 그러나 정년퇴임을 전후로 나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아직 건강과 에너지가 있고 꿈이 있기에 창조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지요.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했어요.  21세기 우리 나라가 글로벌 선진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우선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지요. 그리고 그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어요”

- 정치활동을 하기로 결심하는데 이화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요.

“물론 그랬지요. 퇴임후 1년 동안은 이화를 탈색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어요. 이화의 이미지에 행여 해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조심스런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체면과 위신 때문에 소신있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이고, 아무것도 소신있게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주변의 모든 가족과 친구들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영역에 들어가기로 한 결단은 나 자신을 내려놓고 뜻과 소신에 충실하고자 하는 실존적 결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것은 정말 힘든 결정의 과정이었어요”

- 정치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힘든 점은 없었습니까.

“민주당 입당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이름 두자를 빌려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 나는 실질적으로 할 일이 있어야만 입당하겠다’고 분명히 말했지요. 그리고 지난 해 5.31지방 선거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서 정말 열심히 뛰었어요. 아마 지난 한 해 동안 전국을 네 바퀴정도 순회한 것 같아요. 선거유세도 270여회는 했을겁니다. 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뛰었지요. 결과적으로 성적도 좋았고, ‘이화민국’에 있다가 대한민국을 발견하는 의미있는 경험을 한 시간이었어요. 최근 당대표 경선에서 2위를 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크게 상처받지는 않았어요. 1등과의 표차도 매우 적었지만 정도를 따라 선거운동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겼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정치영역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사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수없이 넘어집니다.

유대인의 글에 ‘인생은 마지막에 일어섰는가를 묻지, 그 사이에 몇 번 넘어졌는지는 묻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자신이 다치고 상처받는 일은 피하고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면 의미 있는 일은 할 수 없어요. 자신을 비워야 용기가 생기는 법이고, 미래는 용기있는 자에게 열리지요. 이화의 후배들도 용기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뜻을 품고 용기있는 노력을 하면 길은 열리지요”

-대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나는 이화에서의 학창시절을 아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한마디로 물을 만난 고기같이 신나고 즐거운 시절이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아침형 이기 때문에 새벽일찍이 일어나서 공부를 했고 도서관 문이 열리자 마자 들어가는 첫 번째 학생이었어요. 당시 헬렌관은 새로 지은 도서관이었는데 그곳에 앉아있으면 창으로 다람쥐들이 왔다 갔다 하는게 보였지요. 정말 에덴동산같이 아름다웠어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면, 수학을 전공하면서 신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요.

결국에는 수학과를 졸업한 후에 다시 신학을 하게 되었지요. 이를테면 복수전공 한 셈이예요”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화인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 하는 자유로움이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나는 이화인들에게 ‘자기 자신이되라(Be myself)’라고 말하고 싶어요. 언제나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며 자신을 자신있게 표현하도록 하세요. 여자이기 때문에 힘든 것은 있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은 없어요. 여성들이 저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할 수 있는 하나의 분야가 사라지는 거예요. 내일의 모습은 오늘 꾸는 꿈에 반영입니다. 항상 꿈을 크게 가지세요.

Upgrade your dream! Creat tomorrow! 사랑합니다. 이화인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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