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아저씨' 임명길씨 인터뷰

사진 : 김하영 기자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역사를 찍은 거죠”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으셨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배꽃아저씨’가 일침을 놓았다. 인터뷰 중에도 손에서 사진을 놓지 않는 ‘배꽃아저씨’임명길씨. 30여 년간 한결같이 학교 사진을 찍어온 그를 17일(목) 조형예술대학(조형대) 사진관에서 만났다.

젊었을 때부터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이화와 인연을 맺게 됐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던 일이 결국 그의 평생 직업이 되었던 것. 임씨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화의 역사적인 순간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사진에 담아 왔다. “사진 속에 있던 여대생은 교수님이 돼서 학교로 돌아왔고, 작품 만드느라 밤새 고생하던 학생은 이제 성공한 미술작가가 됐어요”

학생들이 그를 찾는 이유도 세월 따라 변했다. 지금은 조형대에서 학생들의 작품사진을 주로 찍어주고 있지만 과거에는 의대·약대·사범대 학생들의 발표 슬라이드를 직접 제작했다. “그때는 사범대 교생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이 사진을 첨부한 슬라이드로 발표를 했었죠. 사범대에도 사진관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논문을 제출하는 기간이 되면 새벽6시부터 학교에 와서 학생들의 논문에 사진을 인화해서 붙이곤 했다.

이화에 오랫동안 몸담은 그에게는 이화인이 재산이다. 단순히 사진 찍는 기술자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학생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찾는 그늘 같은 존재다. 6∼7년 동안 조형대에서 공부한 대학원생도 학업에 지칠 때면 어김없이 임씨를 찾아온다. 미국에 유학 간 학생도 작품사진 인화를 부탁할 만큼 학생들과의 친분이 두텁다. 그는 학업에 지친 학생들이 찾아오면 커피 한 잔과 함께“뭐든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라”고 격려해준다.

딸 같은 이화인들인 만큼 당부하고 싶은 점도 많다. 매번 도서관 사진을 찍으러 가 보면 7∼8년 전보다 도서관이 한가하다고. “디지털 세대라 그런지 학생들이 도서관에 자주 가지 않더라고요”그는 노력만이 성공의 열쇠라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앞으로 여성이 사회를 주도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위치에 서길 바래요”

조형대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보니 미술 작품을 보는 눈썰미도 수준급이다. 다른 작품에 비해 남달라 보이는 작품이 있으면 그 학생을 불러서 출품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는 “학생들이 큰 상을 받지는 못해도 나중에 잘 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긴 직업생활을 멋지게 마무리 지을 방법을 고민 중이다. 그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30여 년간 카메라에 담은 학교의 사진들을 새롭게 재구성할 생각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졸업생들의 사진과 역사적인 순간들을 복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동안 찍어 둔 내 사진을 다시 세상에 보일 수 있어 좋고, 학생들은 추억이 담긴 사진을 찾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에요” 홈페이지 제작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욕심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아요. 먹고 살 벌이 되고, 사진 찍는 일도 좋고, 그러니까 집에 못 있고 일년 내내 학교에 나오는 거죠”이화의 역사를 찍기 위해 수천 번 셔터를 누른 그의 손, 오늘도 그 손에서 새로운 역사가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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