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인 것이다.”어느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최후 법정 진술이다. 이 사람은 어린 시절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살해했다. 당시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자는 6개월 이내에 피해자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해야 처벌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고소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난 후였다. 법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직접 가해자를 살해한 후 현장에서 검거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3년 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3일(목) ‘반(反)성폭력 법제화 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 성폭력특별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폭력특별법이 마련되기 전까지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하는 형법에 의해 처벌됐다. 따라서 미성년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경우 직접 신고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소장은 “성폭력특별법은 미성년자일 경우 직접 신고해야 하는 친고죄가 아니고 고소기간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나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성폭력특별법은 형법보다 규제의 범위가 넓고 형량도 높다.

그러나 그는 성폭력특별법이 마련됐음에도 연간 5천여 건의 상담 중 80%가 비슷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어도 같은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씨는 “법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반드시 모니터링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 이소장은 피해자의 인격권·신변보호제도의 부재, 증거 확보를 위한 지원 제도의 미흡 등 성폭력 범죄에 관한 현행법·제도상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이미경 소장은 이러한 미흡한 문제를 사람들의 인식 개선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날 강연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직접 준비해 온 영상 자료를 보여주며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인격체’라고 강조했다.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 무엇일까요. 땅·열매·꽃이라고 생각하나요? 여자는 나무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나무’입니다.” 그는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옷차림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하고 후회합니다.” 이소장은 이런 자책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죄인으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의 선입관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이씨는 국가적 지원·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 시드니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예로 들었다. 이소장은“시드니 사람들은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는 피해 여성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그들이 행진할 때는 경찰이 경호를 하기도 한다고 말해 우리나라 국민의 인식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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