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이상욱 교수(철학전공) 「과학의 지형도」서평 기고글

가뜩이나 위축되어 가는 우리나라 도서 시장에서 과학 관련 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참담할 정도로 작다. 이는 과학기술이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에 대해 애써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셈이다.

「과학의 지형도」의 지은이는 이러한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 삶과 미레에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볼 때, 과학이 과학 아닌 것과 어떻게 다르고, 과학지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평가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지은이, 고인석 교수가 제안하는 것은 과학의 ‘지형’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다. 최근 유행을 따라, 중국을 이해하는 것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우선 중국의 대강을 파악한 후 개별적인 특징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당신은 일단 중국의 역사와 문화, 사상적 배경과 현재 중국에서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는 쟁점에 대해 대강이라도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과학의 지형도」는 과학에 대해 이런 성격의 자료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과학의 역사와 철학, 사회적인 측면을 다루지만 그 어느 전문분야에도 속하기는 어려운 책이라는 지은이의 솔직한 자기진단은 이런 이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아직까지는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의 과학책 ‘지형’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게 해준다. 현재 국내에서 출간되는 과학책은 대강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과학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으로 흔히 교양과학서라고 불린다. 다른 하나는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성찰을 담은 책으로 학술적인 성격이 강한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책이다.

첫 부류의 책은 별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대신 과학에 대한 천편일률적이고 잘못된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이 많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천재적인 영감으로 만유인력 법칙을 깨달았다는 신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다수의 교양과학서가 이런 관점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과학기술학 관련도서는 너무 전문적이어서 대중이 쉽게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과학의 지형도」는 이같은 국내 과학도서의 ‘지형’에 중요한 ‘빈 자리’를 채워주려 한다.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에 ‘대한’ 메타적 고찰을 아르케 물음부터 시작하여 근대역학과 연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과학내용의 핵심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역할과 그것에 기초하여 보다 개념적이거나 성찰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지은이의 ‘그런데 이 질문은 어렵다.’는 식의 친근한 문체는 읽는이에게 보어 원자모형에 대한 어려운 설명조차 술술 지나갈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또 다른 큰 장점은 현대 과학에서의 중요성에 비해 과학에 대한 기존의 메타적 논의을 담은 책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화학과 생물학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다른 책들이 다루고 있는 물리학이나 천문학에 대한 논의를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 철학 초기부터 면면히 계승되어 온 자연철학의 전통에서부터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과학의 지형도>의 물리학과 천문학에 대한 서술은 남다른 깊이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문의 좌우에 작은 글씨로 배치된 상자 글에서 지은이가 독자에게 던지는 ‘딴지걸기’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고인석 교수의 지적 도전에 대응하다 보면 어느새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사유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과학의 지형도」는 현재 나와 있는 과학책들이 적절히 담아내고 있지 못하는 내용을 지은이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맛있게 버무려낸 친절한 과학 여행 안내서이다. 좋은 여행 안내서가 그러하듯 이 책도 과학의 내용을 충실하고 알기 쉽게 소개하여 현대 과학의 전반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일과 그러한 과학에 대해 다양한 추가적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일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구태여 한 가지 더 바라자면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져 재판을 찍을 때에는, 책 마지막의 참고문헌 부분을 지은이가 이 책을 쓰는 데 참고했던 비교적 전문적인 문헌에 대한 소개와 이 책을 읽고 특정 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파고들기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한 우리말로 된 ‘더 읽을거리’에 대한 소개의 둘로 나누었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이 책이 과학의 지형을 그려주고 보다 깊은 논의로 안내하는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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