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물도감 재편찬한 이영로 박사

사진 : 김하영 기자
산에서 들풀을 만났다면 이영로 박사의 이름이 붙은 식물일지도 모른다. 식물의 학명에는 발견자의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1986년 본교를 퇴임한 이영로(전 생물학과 교수) 박사의 영문 이름인 Y. Lee가 붙은 식물은 250여 종. 80평생을 식물 연구에 전념한 이영로 박사를 27일(화) 동숭동 한국식물연구원에서 만났다.

“좀 더 일찍 퇴임하고 식물연구에만 전념할 걸 그랬어요. 아직도 할 일이 많거든요.” 퇴임 후 20년이나 지났지만 그의 연구는 쉬어가는 법이 없다. 최근에는 강원도 영월 정선에서 ‘동강 고랭이’를 발견했다. “동강 고랭이는 할미꽃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처음에 사진으로 봤을 때는 할미꽃인 줄 알았지요. 직접 가서 보니 다른 식물이더군요.” 동강 고랭이는 암수가 분리된 식물로 오직 한국에서만 자란다. 환경청에서는 이 박사가 발견한 동강고랭이를 국가보호식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작년 10월, ‘한국식물도감 1·2’를 편찬하기도 했다. 1996년에 발행한 ‘한국식물도감’에 새로운 식물 800여 종을 추가한 개정판이다. 이 책에는 그의 70년 연구업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평생 연구했던 식물들을 집대성한 셈이다. 1천여 쪽의 방대한 분량에 실린 4천157종의 식물 사진 중 90% 이상은 이 박사가 직접 찍었다.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며 힘들게 찍은 사진이지만 마음에 차지 않아 개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책 속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좀 더 나은 사진으로 교체해 5월 경 재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식물과 함께 한 70년 연구 인생은 연구실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박사의 한국식물연구원에는 각종 식물 사진·자료·표본들이 가득 차 있다.

작년 12월에는 한국식물연구원보(報) 제6호를 출판했다. 이 책은 1년에 한 번씩 발행하는 논문으로 그가 새로 발견한 한국 식물의 설명과 사진을 싣는다. 이 논문은 영국·독일·일본·중국·미국 등 세계 각지의 식물 연구소와 대학에 연구 목적으로 보내졌다. 세계의 식물학자들과 식물로 교류하는 셈이다.

87세의 나이임에도 그는 식물 채집을 위해서라면 험한 등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3월21일(수)∼23일(금)에는 제주도 한라산에 다녀오기도 했다. 한라산에서 자라는 ‘갯쑥부장이’를 이와 비슷한 일본의 식물과 직접 비교해보기 위해서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끈기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두 식물 간의 정확한 차이를 밝혀내고자 자세히 찍어온 꽃의 꿀샘·잎사귀 사진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제까지 그렇게 ‘즐기면서’찍어온 식물사진은 연구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다.

한평생 식물 박사로 살아왔지만 아직도 식물은 그에게 미지의 대상이다.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연구하는 것이 내 목표입니다. 기자 그만두고 식물 연구해 보세요. 하면 할수록 정말 재밌거든요.” 기자에게 식물 연구를 권유하는 이영로 박사는 앞으로 우리나라 전국을 누비며 식물을 연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흙 묻은 등산화가 이영로 박사의 열정이 영원히 식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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