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200m 안나푸르나를 향해
해발 4200m 안나푸르나를 향해
  • 이대학보
  • 승인 200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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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태 교수(화학 전공) 히말라야 등반기

언젠가 히말라야를 가본다는 것은 일생에 한번은 시도해 보고픈 유혹이요, 바램이었다. 높은 산과 눈을, 바람에 흩날리는 룽가(5색 깃발)와 고산족이 연상되는 히말라야 트래킹을 통해 내 몸과 정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수년전에 혼자서 약 한달 간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이 큰 힘이 되어 가까운 친구와 함께 1월20일(토)에서 2월10일(토)까지 3주간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확정하였다.

한겨울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한(大寒)날 아침, 네팔로 향했다. 방콕에서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고 8시간의 비행 끝에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다. 인구 200만의 수도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초라하고 먼지에 찌든 거리들은 매연으로 가득 차 목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안개와 소요사태로 며칠간 시간을 낭비하다 나흘째에야 겨우 택시를 대절해 카트만두 탈출에 성공했다. 험난한 절벽과 계곡을 지나고, 겨우 1차선만 포장된 국가 제 1고속도로 길을 평균 시속 30Km로 달려 7시간 만에 목적지 ‘포카라’에 도착했다. 도시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채워진 호수를 끼고 있는 아담하고 정돈된 관광명소로, 등산용품점?기념품점?여행안내소 등이 늘어서 있는 곳이자 트래킹과 등산의 시발점이었다.

드디어 트래킹이 시작되는 날, 새벽 5시부터 정리해둔 짐을 다시 확인하고 호텔 앞에서 출발을 기다렸다. 해가 떠오르자 하얀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가 저 멀리 황금빛으로 광채를 머금고 살짝 얼굴을 내 밀었다.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는 짧았으나 하늘 높이 우뚝 선 영봉의 모습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 ‘나이아폴’에 내리니 8시30분. 드디어 트래킹이 시작됐다. 강과 절벽, 바위와 폭포, 계곡과 개울위의 구름다리, 산허리를 몇 번을 돌고 오르고 내리고를 거듭하니 시간이 절로 흘러갔다. 목적지인 ‘울레리’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막상 오르기 시작하니 너무나 힘들었다. 300보 오르다 5분 쉬고 하기를 거듭, 약 3000보를 올라 해발 2000m 고도의 숙소에 4시 경 도착했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틈이 손바닥만큼 벌어진 창틀사이로 바람이 휭휭 들어오는 오두막(lodge)의 마루에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숙소에서 주는 초 한 자루는 30분도 못가서 꺼지고, 추위에 온몸이, 특히 얼굴이 시렸다.

이튿날 약 3000m 고도의 ‘고레파니’에 도착하니 앞이 탁 트인 저 멀리로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닐기리, 바라시클, 히운줄리 등의 준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숙소에서 태양열 보일러로 데워진 미지근한 물 반 양동이로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온 몸이 상쾌해져 기분 전환은 만점이었지만 잠자리에 드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 밤새도록 한 숨 잘 수가 없다. 이러다 중도 하산하는 것 아닌가 걱정됐다.

3일째 아침, 3200m고도의 '푼힐' 전망대에 일출을 맞았다. 새벽 산행에 손발이 얼얼하게 얼고,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일찍 일어나 움직이니 간밤의 고산증과 불면의 피로는 사라졌다. 3000m대의 능선에서 2300m까지 수직하강하다 다시 수직상승 하여 2700m의 ‘다다파니’에 도착했다. 저 멀리 오늘 지나온 길을 보니 동양화 속에 나오는 구름위의 아득한 천상과 구름 아래 만길 낭떠러지의 오지를 넘어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다다파니’에서 최종 목적지인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가 좀 더 가까이 보이는 해발 2000m의 ‘참롱’까지는 ‘이제 내리막길이라 쉽겠지’하며 위안으로 시작하였지만 여전히 산길은 돌고 또 돌고, 저기 보이는 코너가 마지막 오르막 언덕이 아니고, 계속되기를 거듭한다. 인생역정도 이렇게 스스로 최면을 걸어 속고 속임을 이겨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참롱’의 로지에서 새벽 4시에 잠이 깨 뜰에 나가 하늘을 보니 반달과 조화를 이룬 별들이 쏟아진다. 희뿌연 은하수는 하늘에 우유를 뿌려 놓은 것 같고, 나는 우주의 일부분이 된 것 같다.

??속을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새소리가 유난히 아름답게 많이 들린다. 때옥때옥-때옥때옥-, 뚜찌찌찌,휘-르 휘-르.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그대로 마음에 새기고 싶어 하나하나 적어도 보고, 일부 녹음도 해 보았다. 여기 히말라야의 계곡은 곳곳이 천리향의 향기가 진동하여 우리를 취하게 하고, 바위틈과 등산로에 노랗고 파랗고 빨간 고산 식물의 무리들이 새들과 함께 우리를 반겨 준다.

계속해서 꾸준히 3일을 하루 6-9시간씩을?더 올라 뱀부, 도반, 히말라야 로지, 데우라기, MBC를 거쳐, 드디어 해발 4200m의 ABC에 도착하였다. 나는 1분에 한발 옮기듯 한 발짝 한 발짝을 겨우 겨우 옮기며 앞이 빤히 보이는 ABC lodge를 향해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먼저 도착한 친구는 뜨끈한 물을 페트병에 담아 가슴에 품고 급히 내려와 나의 원기를 부추겨 주었다.

ABC lodge에서의 밤. 추위와 눈보라, 고산병에 잠 한숨 못 자고 캄캄한 방에서 긴긴 밤을 넘기자니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새벽4시, 한자는 쌓인 듯한 눈을 밟으며 밖으로 나와 천지를 보니 하늘은 깜깜하고 산과 들판은 막막하다. 나와 산 사이에 아무 장벽도 경계도 없다. 8000m급의 산들이 병풍을 치듯 빙 둘러 웅장하나 조용하게 자연의 은밀한 비밀을 나에게만 속삭이듯 서있다.

희고 검게 또 황금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를 흡수하며 서 있는 너. 나는 너를 향해 이렇게 죽을 뚱 살 뚱 오로지 앞만 보며, 모든 걸 잊고, 잠 못 자고, 허덕거리며, 추위와 고통을 참고 달려왔구나. 사람을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과 안 다녀온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데 그 이유를 알만하다.

히말라야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고통을 스스로 선택해 극복하고 기쁨을 만끽해본 사람, 일상의 반복된 생활을 벋어나 강력한 자극에서 새로운 변화를 얻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