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주 교수(교육학 전공)

자장가에서 장송곡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일상에서 항상 음악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일어나고, 등교 길에서는 물론 잠시 여유가 있을 때에도 음악을 감상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기술의 대중화로 핸드폰이나 MP3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지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기분이 침체되었을 때 듣는 감미로운 선율은 나의 정서를 위로해주고, 기쁨을 느낄 때 흥겨운 리듬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일상에서 욕구와 필요에 따라 그에 적합한 음악을 선택하게 되며, 음악의 긍정적 자극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한다.

 
이렇듯 음악을 찾는 현상은 의식적으로 학습된 행동이기보다는 본능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음악에는 선율과 리듬이라는 주요 요소가 있으며, 선율은 양수환경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리듬은 엄마의 심장박동에서 미리 경험된다. 이 두 요소는 엄마의 정서 상태에 따라 변하면서 태아로 하여금 그 정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안정된 상태에 있는 경우 엄마의 심장박동은 태아의 심장박동과 비율적으로 일치하는 패턴을 이루게 되고 목소리 음색 역시 안정된 강도와 부드러운 억양을 갖게 된다.

반대로 격양된 상태에 있는 경우 엄마의 심장박동은 빨라지므로 일치감을 상실하고 동시에 고조된 목소리 음역과 강도에서 부적 정서를 경험한다. 이렇게 경험된 리듬과 선율은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정서를 자극하고 조절하는 주 치료 매체가 된다. 인간의 정서를 변화시키는 “치료적” 기능을 음악에서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인간과 음악의 선천적 관계 때문이다.

출생 후 성장하면서 인간은 음악에 자발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걸음마를 배우면서 음악이 들리면 몸을 상하좌우로 흔들거나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크게 따라 부르는 등 어릴 때의 음악적 행동은 자유롭다. 이것을 “음악적 자아”라고 한다. 거리를 걷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춤으로 혹은 노래로 즐거움을 표현한다. 엄마나 주위 사람이 호응해주거나 격려해주면 더욱 즐거워진다. 음악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부분인 만큼 음악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음악에 동적인 반응 보다는 정적인 반응을, 노래하기 보다는 감상을 선호하게 된다. 음악의 수동적인 경험만을 추구하게 되고 음악적 자아를 표현하기 보다는 절제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특히 우리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목소리는 내재된 음악적 자아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이지만, 목소리를 음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더욱 타인을 의식하게 된다. 음악을 소리로 또는 몸으로 표현하고픈 충동을 머리에서 통제하게 되고, 어느새 타인에게 나의 음악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자연스러워야할 음악적 표현이 의식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음악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자기표현의 건강함을 상징하며 자긍심 혹은 자기충족감(self-sufficiency)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자긍심과 자기 충족감은 삶에서 자아의 독창성을 실현시키고 잠재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음악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자기 충족감을 경험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내 목소리로 만드는 나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면 이는 곧 나의 음악적 자아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음악을 감상하지만 말고, 크게 불러보는 것을 어떨까. 특히 혼자 있을 때 내 느낌대로, 감정 그대로 불러보면서 나만의 음악적 자아를 탐색해보자. ‘나의 음악’을 만드는 동안 내안에 숨겨진 또 다른 ‘사랑스러운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자아실현을 위해 한걸음 더 내딛는 새 학기, 자기의 음악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하자.


정현주 교수(교육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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