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국문·3)

어느 날이었다. 미술시간에 그렸다며 이제 초등학교 4학년생이 된 사촌동생이 그림 한 장을 달랑달랑 들고 왔다. 하얀 도화지 위에는 몇 그루의 사과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나무기둥, 가지, 잎을 그린 것까지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과가 갈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의 그림을 본 이모는 사과를 이렇게 칠하면 어떻게 하냐고, 사과는 빨간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다.

“사과는 왜 빨간색이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느 누구도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사과는 빨간색인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사과에는 안토시아닌이란 색소가 들어 있어 빨간 색으로 나타난다는 사전식 설명은, 티 없이 맑은 아이의 눈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었다.

이어 아이는, 자신이 엄마와 아빠를 닮아 태어났듯이 사과도 나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무를 닮아 갈색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은 논술 열풍이 일고 있다. 2008년 대학입시부터는 논술의 비중을 강화하겠다는 서울대 등 주요 대학들의 발표와 함께,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취지하에 학교와 학원을 불문하고 논술 교육이 한창이다.

당장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고등학생들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대학의 입시정책 변화에 따라 교육방법도, 내용도 임기응변식으로 재빠르게 변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교육 현실에서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인격을 기른다는 교육의 본의미는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근원이 되는 개념조차 불투명해진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 깊이있는 사고가 요구되는 논술을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개구리도 옴쳐야 뛴다는데, 하물며 논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논술 실력이 입시에만 초점을 둔 교육 아래 얼마나 향상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대학 입시에 나올 법한 문제를 풀어보고,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과정에서 도대체 얼마만큼의 학생들이 ‘자기’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갑자기 늘어난 논술 학원의 간판을 볼 때마다 저 안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값을 치르며 책상 앞에 앉아 있을 학생들을 생각하면, 과연 그 학생들이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빨간 사과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든다.

물론 모든 논술교육을 비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대학도, 입시도 모르는 초등학교 4학년 짜리 꼬마의 생각이야말로 정말 신선한 논리가 아닐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창의적·논리적이라는 단어가 남발하는 사회에서 자식이 부모를 닮듯 사과도 나무의 색을 닮은 것이라는, 그야말로 자신의 눈에서 나온 주장을 그대로 표현하는 어린아이의 당돌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열풍처럼 교육의 한 가운데로 들어온 논술. 이제는 한 박자 쉬어가는 기분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살아갈 꿈나무들에게 어떤 색깔의 사과를 달아줘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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