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
  • 이대학보
  • 승인 200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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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2일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삐에르 신부(Abbe Pierre)가 향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본명은 앙리 그루에쓰(Henri Groués). 1912년 8월 5일 리용(Lyon)의 한 부유층 집안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1931년 필립(Philippe)이라는 이름으로 수도사 생활을 시작하였고, 1938년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이듬해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하사관으로 징집되었다. 1942년 드골(de Gaulle) 휘하의 최연소 신부로 스위스로 건너가 독일에 저항하는 지하애국단체 결성에 일조하였다. 그의 주된 임무는 독일에 협조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다. 이 시기에 지금의 ‘삐에르 신부’라는 이름을 얻었다. 1944년 피레네 산맥에서 독일군에 체포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하여 알제리에 있던 드골 휘하로 돌아갔다. 이런 경력으로 그는 지금도 프랑스의 주요 저항운동가들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종전이 되자 그는 정계에 뛰어 들었다. 정치인으로서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1949년 엠마위쓰(Emmaüs)를 창설한 일이다. 불우한 사람, 특히 노숙자를 위한 이 단체는 못 쓰는 물건들을 고쳐 염가로 판 다음 그 돈으로 노숙자를 위한 집을 지었다. 당시 혈기왕성했던 삐에르 신부는 언론매체를 통해 엠마위쓰의 이런 취지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프랑스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54년 겨울이었다. 이 해 겨울은 전례 없이 추웠다. 매서운 추위로 수많은 노숙자들이 얼어 죽자, 삐에르 신부는 1954년 2월 1일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한 여인이 오늘 새벽 세 시에 쎄바쓰또뽈 인도 위에서 얼어 죽었습니다.”로 시작하여 “여러분의 도움만 있으면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어린이도 오늘밤 빠리의 강가나 아스팔트 위에서 잠자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그 다음날 프랑스 국민들이 보여 준 반응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5억 프랑이나 되는 거금이 모였고, 후원과 격려의 전화가 쇄도하여 라디오 방송국의 전화는 한때 완전 불통되었고, 보내 준 물품을 정리하는 데만 수 주일이 걸렸다. 삐에르 신부는 이런 열광적인 후원에 힘입어 같은 해 3월 23일 프랑스 전역에 엠마위쓰 조합을 결성했다.

1980년대 말 내가 유학한 후앙(Rouen) 시에도 엠마위쓰 지부가 있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좀 한가한 날 오후면 한 번씩 들러보곤 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사용한 손 때 묻은 엽서로부터 골동품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풍스런 침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물건이 없었다. 모든 물건이 중고라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층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벤츠나 BMW와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들리는 부유층 사람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엠마위쓰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에서 찾을 수 있었던 물건이나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그들은 다 사회적으로 불우한 사람들로, 그곳이 아니면 오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표정은 당연히 어두울 것으로 짐작하겠지만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낯선 동양 학생과 농담도 주고받고, 좀 비싸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하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몇 프랑 깎아주는 여유도 있었다. 그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자신의 가난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못 쓰는 물건을 고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염가로 제공한다는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

난 그들이 그처럼 밝고 행복해 한 이유를 정문 현판에 적혀 있는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Aimer n'est pas donner mais partager)”라는 구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난한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주기는 어려웠지만 다른 사람과 뭔가를 나눌 수는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누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프랑스 삐에르 신부의 타계를 계기로 진정한 사랑은 주는 사랑이 아니라 나누는 사랑이라는 그의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장한업 교수(불어불문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