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약도 남녀에 따라 효능 달라...성차 고려해 치료하는 임상시험센터 설립 예정

‘성인: 식후 30분·2알, 소아: 식후 30분·1알 복용’


어떤 약을 먹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복용 지침이다. 당신은 이 안내를 읽으면서 혹시 ‘남녀에 상관없이 똑같이 약을 먹어도 될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는가. 남녀의 신체 조건에 차이가 있음에도 주류 의학은 남성을 위주로 연구돼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의학 연구는 여성의 특수성을 배제한 채 표준 인간(Men), 즉 ‘70kg 남성(men)’ 중심으로 진행됐다.

성차를 적극 고려한 ‘성인지의학(性認知醫學, Gender Specific Medicine)’이 본교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본교 의과대학에 설립된 ‘성인지의학 연구센터’는 국내 성인지의학 연구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현재 연구센터에서는 뇌신경계(알츠하이머병)·대장 종양·위장질환·성 비뇨기과 등을 연구 중이다.

올해 초 완공을 목표로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성인지의학 임상시험센터’또한 국내 성인지의학 연구의 허브가 될 예정이다. 이 임상시험센터는 국내 최초로 성차를 직접 반영해 진료를 하는 곳이 된다. 본교는 이미 여성에게 특성화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임상시험센터가 설립되면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본교 심기남 교수(내과 전공)·우소연 교수(미생물학 전공)는 임상시험센터 설립을 앞두고 선진 기관을 벤치마킹하고자 성인지의학의 창시자 컬럼비아의대 메리앤 J. 리가토(Marianne J. Legato) 박사의 뉴욕 클리닉을 시찰하고 오기도 했다. 우교수는 “리가토 박사는 성공적인 클리닉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녀의 차이를 인식하는 ‘프로토콜(protocol:연구·치료 실행을 위한 치료 방침)’을 바탕으로 진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또 오늘 5월에는 매해 유명인사가 강연해온 ‘김옥길 강좌’에서 여성 건강, 성인지의학에 관한 특강도 열릴 예정이다.

성인지의학이란 남성·여성이 다르다는 전제하에 여성의 특수성을 보다 심도 있게 고려하는 의학 분야다. 이는 젠더에 맞는 치료를 위한 새로운 의학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인지의학의 개념은 1997년 컬럼비아 의대 심장내과 리가토 박사가 정립했다.

권복규 이화성인지의학 연구센터장은 “20세기까지 여성의 몸은 소위 ‘비키니 존(bikini zone)-유방과 자궁’을 제외하면 남성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며 “때문에 현재 약의 용법은 성차가 아닌 체중만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같은 체중이라 할지라도 여성은 남성보다 체지방이 많아 약효가 다르다. 권센터장은 “성인지의학이 성공적으로 연구되면 소아·성인을 나누는 것처럼 여성·남성도 세분화해 보다 과학적으로 약을 처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80년대 하버드 의대에서 이뤄진 실험에서도 동일한 약품임에도 성별에 따라 다른 효과가 나타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이틀에 한 번 2만2천71명에게 소량의 아스피린을 먹은 사람들은 심장마비가 현저하게(44%)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실험의 피험자는 전원 남성이었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1990년대 10년 동안 3만9천876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본 결과는 매우 상이했다. 피험자들의 심장마비 발생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고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다소 낮아졌을 뿐이었다.

성인지의학은 생물학적 성(sex)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gender)도 연구 대상으로 포함한다. 이 때문에 성에 대한 사회문화·의료계 자체에 내재된 편견도 연구 범위에 속한다. 권복규 연구센터장은 히스테리는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hystera’에서 유래돼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증상으로 간주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여성의 경우 ‘관상동맥질환’증상이 초기에는 우울증이나 히스테리로 오진 되기 쉽다”고 말했다.

서현숙 한국성인지의학회 회장은 “성인지의학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개개인 맞춤의학’에 도달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차·나이·체중 등 개체의 특성 모두를 고려하는 첨단의학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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