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영어강의가 지난 학기 48개에서 이번 학기 106개로 2배 이상 늘었다. 최근 3년 간(2004년∼2006년) 한 학기 평균 55개의 영어강의가 개설된 데 비하면 급격한 증가다. 2007년 입학생부터는 졸업하기 전까지 영어강의 4개를 의무 수강해야한다는 수업 규정도 새로 생겼다.

본교만 발 벗고 나선 것이 아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올해 신입생부터 1학년 강의를 전부 영어로 실시한다. 고려대도 2010년 내에 영어강의 비율을 6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국제화’는 2007년 대학가의 공식적 화두다. 대학들은 서로 같은 말을 하기로 단합이라도 한 듯이 연초부터 “영어강의 증가, 외국인 교원 채용, 글로벌 캠퍼스 건설”을 외쳤다. 그 중에서도 영어강의 증가는 각 대학이 가장 의욕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대학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영어강의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우리는 영어가 명실상부한 세계 중심 언어이며, 인터넷 정보의 70% 이상이 영어로 이뤄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강의 수를 ‘몇’ 퍼센트 이상, ‘몇’ 개 이상 등의 기준을 정해 한꺼번에 끌어올리기보다는 그간의 대학 국제화 수준을 냉정히 판단해 점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본교는 작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국제화 부문에서 26위를 차지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학기의 영어 강의 확대는 충분한 준비 없이 서두른 개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로운 커리큘럼의 강의를 신설하기보다 기존에 한국어로 하던 수업을 영어 강의로 둔갑시킨 데 그쳤기 때문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 등 주요 대학평가기관의 평가 항목에 영어강의 비율이 있고, 2010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하는 본교의 입장에서는 영어강의 수를 늘리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다가는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영어강의는 전공지식의 전달 효과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수업과 연구는 언어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 영어가 부족한 학생들의 이해 능력을 고려하다 보면 수업의 깊이가 얕아질 수 있다. 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 총장은 작년 말,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하는 만큼 자칫하면 영어강의 확대가 교육의 질을 저하시킬 염려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학교는 영어강의 수 늘리기에 급급하지 말고 강의의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하길 바란다. 학생들은 그들의 수준과 요구를 고려해 탄탄하게 준비한 영어강의를 원하고 있다. 또 전공 강의를 영어로 개설 시에는 한국어 강의를 함께 열어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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