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안은미(무용·86년 졸)인터뷰

현대무용가 안은미(무용·86년졸)
2003년 무용극 ‘춘향’은 한국인들의 뇌리에 젖가슴을 드러낸 빡빡머리 신(新)춘향을 새겼다. 신(新)춘향은 지난해 유럽 5개국 순회공연도 했다. 이는 한국무용은 정적이고 단아할 것이라는 유럽인들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계기가 됐다. 동·서양을 신선한 충격으로 몰아넣은 주인공은 바로 ‘빡빡머리 무용가’ 안은미다. 그는 2월14일(수)·15(목)일, 스페인 국제미술제 ‘아르코 아트페어’에서 가진 축하 공연으로 다시 한 번 한국의 이름을 외국에 알리고 2월 말 귀국했다. 빨강·파랑·핫핑크. 강렬한 그의 무용만큼이나 원색적인 색상으로 꾸며진 이태원 자택에서 개성 만점의 그를 만났다.

 

 “정말 대단했어. 관람객들과 스태프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었지.” 안씨의 목소리에서 당시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아르코 아트페어’는 세계적 미술박람회로 1982년 시작된 이래 매년 20만 명의 미술 애호가가 방문하는 미술시장이다.

 

올해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된 자리였다. 안씨의 무용단은 이 행사에 초청돼 스페인 Circulo De Bellas Ardes 극장에서 ‘Let me change your name’ 공연을 선보였다. 여기저기서 안씨의 이름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들이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4명의 한국인과 3명의 서양인이 함께 공연하는 무대였어.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몸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든 무대가 서양인들에게도 새로웠나봐. 다들 안은미식 무용에 반했지 뭐.”

 

그의 말처럼 ‘안은미식 무용’은 파격적인 안무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첫 장면부터 전라의 무용수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넓은 무대도 부족할 만큼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이고 현란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관객들도 어느새 그 흥분에 동화되고 만다.

 

‘안무가 안은미는 동양의 피나 바우슈라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유럽의 무용전문지 ‘댄스 유럽’은 그를 현대무용계의 세계적인 거장과 견주었다.

 

무용에서 드러나는 안씨의 개성은 충무로 감독들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비트’의 김성수 감독의 단편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의 여주인공을 맡았고, ‘다세포 소녀’에서는 무당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내 이미지가 워낙 강하니까 주로 강렬한 역을 맡게 돼. 어떤 감독이 그러더라. 은미씨는 멜로가 안 어울린다고.” 20년이 넘는 공연 생활로 배우의 끼가 다져진 그에게 영화 촬영은 전혀 낯설지 않다.

 

무용에서처럼 영화에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어 즐겁기만 하다. 독립적이고 강한 여자. 도발적인 무용의 대명사. 이런 개성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이뤄낸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나리오를 짜서 소꿉놀이를 하고, 옷장 안의 옷을 바꿔 입어가며 모노드라마를 연출했다. “1인 다역을 하며 놀았지. 그때부터 나한테 제일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기 시작했어.”

 

4년간의 본교 재학 시절은 자아 형성에 목말라하던 그에게 의미있는 시기였다. “철학, 여성학 등의 수업은 빼놓지 않고 들었어.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거고.” 특색 있는 무용을 만들기 위해 신촌 카페 DJ를 찾아가 음악에 대해 묻고, 좋아하는 미술가나 무용가가 생기면 줄기차게 쫓아다녔다. “누구랑 똑같아지는 게 싫어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많이 고민했어. 심지어 옷도 기성복은 안 입는걸.”

 

그러나 정체성을 정립하기까지의 여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한국의 전통적 여성상과 대조되는 ‘안은미식 스타일’ 때문에 비난도 감수해야만 했다. 그가 추구하려던 캐릭터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많은 반발을 받았다. 안은미는 ‘여자가’로 시작되는 말에 다 걸리는 사람이다. “여자가 다리를 벌리면 안된다. 여자가 머리를 밀면 안된다. 여자가 목소리가 걸걸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말들이 어렸을 때부터 날 구속했지.”

 

그래서 그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즉 ‘안은미’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여자라는 것을 포기하는 계기로 머리를 밀었다고 볼 수 있지. 이것 때문에 부모님과 숱하게 싸웠어. 여자가 빡빡머리라니까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고.”

 

그렇다.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해 준 캐릭터는 가만히 앉아서 얻은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이어진 번뇌, 그리고 부모와 사회와 싸워 얻은 결실이다. 가족과 사회와 싸워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한 사람. 세계에, 현대 무용계에 ‘안은미’ 세 글자를 강하게 박은 사람. 앞으로도 그렇게 온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정체성을 찾을 그는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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