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대국을 꿈꾸며
뮤지컬 대국을 꿈꾸며
  • 장재원 기자
  • 승인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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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화관 가자”는 말 대신 “뮤지컬관 가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듯하다. 지난 10월28일(토) 국내 최초로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씨어터’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뮤지컬춘추전국시대. 급성장한 뮤지컬 시장의 크기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분명 반길만한 일이건만, 샤롯데가 종영일을 정하지 않은 채 개막작으로 공연하고 있는 일본극단 ‘시키’의 뮤지컬 ‘라이온킹’까지 두 팔 벌려 환영하기에는 영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명색이 국내 첫 뮤지컬 극장인데 그 자리를 외국 뮤지컬에게 내주는 게 어쩐지 억울하다. 더군다나 8월 티켓 판매를 시작한 ‘라이온킹’은 1차 판매분인 12월31일까지 좌석 중 가장 비싼 S석(9만원)의 80%가 이미 판매됐을 정도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1년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볼거리 많은 해외 뮤지컬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공연이 오를 때마다 언론의 관심도 집중됐다. 그 결과 작년 한 해 수입 뮤지컬은 700억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뮤지컬이 ‘돈 좀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기업들, 눈에 불을 켰다. 공연계의 성수기인 이번 연말을 겨냥해 몰려오는 대작뮤지컬만 대여섯 개. 이중에는 국내 창작 뮤지컬도 물론 있지만, ‘예술의 전당’·‘LG 아트센터’ 등의 대형무대는 역시나 ‘에비타’·‘돈 주앙’같은 해외 라이센스 공연의 차지다.

외국 뮤지컬의 무대 점유는 국내 뮤지컬 시장을 오싹하게 만든다. “블록버스터 형 외국뮤지컬이 대형극장에 몇 개월씩 장기 공연되니 창작뮤지컬은 극장 대관조차 힘든 실정”이라던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의 말은 좁아진 창작 뮤지컬의 입지를 드러낸다.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이 궁극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내 창작뮤지컬의 육성이 시급한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활성화 방안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문화산업의 발전이 곧 나라 발전인 시대. 일단 살이 붙은 한국 뮤지컬계의 뼈를 튼튼히 할 때가 됐다. 한국 뮤지컬을 단단하게 다지는 노력 없이 무분별한 수입이 계속된다고 치자. 해외로 나갈 로열티가 제일 먼저 눈에 밟히리지만, 수입 열풍 속에 질 낮은 공연이 슬쩍슬쩍 끼어 들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걱정스럽다. 만약 실패작이 많아진다면 우선 자본이 빠져나갈 뿐 아니라, 작품에 실망한 관객들까지 빠져나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수준 높은 외국 공연을 유치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뮤지컬 시장이 보다 확고하게 자리 잡고 발전을 거듭하려면 국내 뮤지컬을 보호하고 키우는 대책은 필수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계에 불고 있는 반성의 바람은 환영할 만하다. 10월23일(월)에 열린 ‘대한민국 뮤지컬 페스티벌’ 기자간담회장에서 윤호진 뮤지컬협회장은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서로 경쟁하느라 외부의 적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뮤지컬 발전을 위해 창작 인력 양성·창작뮤지컬 육성책 입안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화관광부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내년에는 창작뮤지컬에 10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또 국공립 공연장을 대상으로 창작뮤지컬 무대할당제(스테이지 쿼터)를 도입하는 계획안도 연구 중이라고 한다. 이 제도가 제대로 실행된다면 국내 뮤지컬이 큰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후반 ‘다이하드’ 등 외국영화가 소위 대박이 나면서 외화 열풍이 일던 시기에 도입된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산업이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든든한 지지대가 돼 주지 않았던가.

정책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당연지사다. 특히 문화산업의 주 향유층인 대학생들이 균형 있는 뮤지컬 식단을 짜야 한다. 지갑이 홀쭉하다면 티켓링크 사이트를 보며 울상 짓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대학로 등의 거리로 나서자. 비록 화려함은 덜할지라도 내실 있는 여러 소규모 뮤지컬들이 언제든지 대기 중이다. 설사 공연의 질이 조금 떨어진다 해도 어떠랴. 개개인의 애정 어린 투자는 언젠가 더 수준 높고 더 저렴한 창작 뮤지컬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녹록치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국 뮤지컬은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9월에는 순수 창작품인 ‘마리아 마리아’가 브로드웨이 린치극장 무대를 화려하게 채웠다. 뮤지컬 ‘겨울연갗는 일본에서 한류의 중심에 서 있다. 이처럼 잠재력이 큰 한국 뮤지컬시장을 ‘사상누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최고의 자재(資材)는 업계와 관객 모두의 ‘애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