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설명 10번 듣는 것보다 영상 1번 보는 게 더 낫죠.” 여성최초 축구 비디오분석가 박효진(체육·3)씨의 말이다. 그가 분석한 영상 자료는 선수들의 플레이 방식·공격 위치 등을 수정·개선하는 토대가 된다. 박씨는 남성이 독차지했던 축구 비디오분석계에 ‘여대생’ 신분으로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요즘 박씨에게는 축구장이 곧 집이다. 그가 몸담은 축구팀 ‘수원시청’이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밤낮으로 진행되다 보니 선수들의 플레이 분석일도 많아졌다. 덕분에 분석과 학교 수업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박씨. 특히 이번 리그에서 우승한 팀은 K리그 팀으로 승격되는 만큼 그의 의지는 남다르다. 그는 “제가 분석한 자료로 전략을 짜니까 팀의 승리가 곧 저의 승리죠. 중요한 경기인 만큼 분석에도 특별히 신경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박씨는 어김없이 축구장을 찾는다.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캠코더에 담기 위해서다. “처음엔 공격수 찍었다 수비수 찍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은 골키퍼 뒤에서 찍으면 수비수의 행동까지 한꺼번에 찍을 수 있다는 것도 터득했죠.”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은 음료를 들이키느라 바쁘지만 박씨는 가방에서 노트북부터 꺼낸다. 곧바로 경기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녹화된 영상을 분석하는 데는 한 경기당 5∼6시간이 걸린다. 3번 정도 꼼꼼히 돌려보면서 11명의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를 체크한다. 컴퓨터를 다루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비디오분석가에게 있어 영상 편집 기술은 기본이다. “선수들이 전략을 익히는데 필요한 장면만 뽑아서 새롭게 편집하는 것이 관건이에요. 선수들도 자신이 경기한 모습을 직접 보며 감독님께 설명을 들으니까 더 쉽게 이해하는 것 같아요.”


축구라면 모르는 게 없는 박씨는 사실 ‘농구선수’ 출신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올해 4월까지 선수활동을 했다. 하지만 1998년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02학번인 그는 2003년 축구를 공부하기 위해 과감히 휴학까지 했다. “2년간 ‘제주SK’프로축구팀 김세윤 비디오분석가 코치님을 무작정 쫓아다녔죠. 경기 분석가가 되고 싶어 많은 조언을 구했어요.” 이 외에도 ‘연맹 스포츠’ 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축구에 관한 전문 지식을 공부하는 등 농구선수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맹 스포츠 기자로의 활동은 오늘날의 그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마침 비디오분석가를 구하던 ‘수원시청’의 김창경 감독이 기자로 발 빠르게 뛰어다니는 그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씨가 찾아갔을 때 김창경 감독은 그를 흔쾌히 받아줬다.


하지만 비디오분석가의 길은 험난했다. 그에게는 ‘여자’와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녔다. 그는 “‘여자가 무슨 축구’라는 말과 ‘농구선수 출신이 축구에 대해 얼마나 알겠느냐’라는 말이 제일 힘들었어요. 게다가 여자로서 처음 도전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선배가 없어 분석에 대한 조언을 구할 곳도 없었죠. 하지만 저는 축구계에 필요한 ‘여자’이기보다 축구계에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어요.”


실의에 빠진 박씨에게 김세윤 감독과 김창경 감독은 큰 힘이 됐다. 김세윤 감독은 축구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김창경 감독은 여자인 박씨를 선입견 없이 대했다. “두 분 다 여자라서 안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선수 출신도 아닌데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의 목표는 여자 축구대표팀 등 더 넓은 영역의 비디오분석가가 되는 것이다. “여자 축구에 관심이 많아요. 언젠가 여자 축구대표팀을 맡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죠.”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승리를 책임질 박효진씨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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